가평군 두밀리 두밀분교 학부모회 회장 황종설

가평군 두밀리 두밀분교 학부모회 회장 황종설

산간벽지의 국민학교가 폐교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평군에 위치한 두밀분교도 그 한 예일 뿐이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와 조직적인 대응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많은 외부의 지지자들을 얻었으나, 닫혀진 교문이 다시 열려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참여사회」는 그간의 이야기를 두밀분교 살리기 학부모회 왕종설 회장으로부터 들어 보았다.

두밀분교가 두밀리 주민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밀분교는 주민들이 직접 지었다고 들었다는데,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두밀분교는 아이들 공부하는 장소일 뿐만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영농교육을 하는 장소, 투표장소, 경로잔치, 동창회, 동문회, 마을 체육대회 장소로 쓰이고 아이들의 탁아소-농촌의 일손이 바쁠 때 맘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언니·오빠와 놀기 때문에)- 역할이기도 하다. 60년대 우리 아버지 되시는 분들이 학교부지만 있으면 분교를 지을 수 있다는 교육청의 말을 듣고, 일부는 땅을 희사하고, 동네 전체 주민은 돈을 걷어서 땅을 확보하였다. 교실을 지을때도 모래와 시멘트만 정부가 제공하고, 주민들이 벽돌을 직접 찍어 만들고 쌓고 해서 거의 대부분의 학교 건물을 만들었다. 운동장도 삽과 괭이로 다듬어 만들고 담도 쌓았다.

4년전 흰건물 하나만 교육청에서 지었다. 땅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그대로 존속시켜 달라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농촌의 많은 소규모 학교들이 폐교되었다. 그러나 행정소송까지 하면서 끈질기게 반대한 사례는 없었다. 현재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물론 많은 학교가 폐교되었지요. 농촌에는 사실상 노인들만 있고 젊은이들 없는 곳이 많아서 섭섭하긴해도 따르기 쉬웠을 겁니다. 그러나 두밀리는 가구수가 매년 10% 정도씩 증가하고 있고-현재 110가구- 20대부터 40대가 40%로 젊은 학부모가 많아,현실적으로 학교가 필요하므로 찾아보자고 하는 의욕과 힘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소송은 판정 2-3일을 남기고 판사가 3번째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5월9일 최종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적 여건에서 평범한 국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은데, 어떻게 하여 소송까지 하게 되었는지요?

처음부터 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니고 교육부, 도교육청, 가평교육청등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교육부의 회답은 도교육청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다는 거였고, 가평교육청은 주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부시책이므로 협조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어요.

힘 센 기관을 찾아보다 1백50명 전체 주민이 국회로 가서, 조순형 교육위원회 위원장님을 만나 뵙고 사정을 말씀드렸는데 그분은 조그만 민원으로 생각하시고 교육부등에 알아본뒤 하자가 있을 때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뒤 두밀리를 한번 방문하셨지만 별 진전이 없었어요.

민자당사도 방문하여 지역구 안찬희 의원과 행정 담당자를 만났는데 민원담당자가 몇몇 주동자들에 동조하지 말라고 야단을 하는 바람에 어른들이 노하여 언성이 높아지고 속만 상했었습니다.

두밀분교는 1968년에 제정된 도서벽지학교 진흥법 대상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된후 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도의회 조례에 따른 폐교 결정은 상위법에 위배되므로 엄연히 실정법 위반이라는 말을 듣고 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뒤 가평국교장, 가평중학교장, 읍장, 군수, 경찰서장등이 모여 수습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주민들을 개별 방문, 일도 못할 정도로 매일 찾아오다시피 하며 회유를 했습니다.

마침 MBC PD수첩 담당자 정성후프로듀서가 촬영을 해 가지고 가서 방영을 한 뒤, 각 신문사가 기사로 다루어주자 교육개혁 단체들이 협조해 주겠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교육민회, 전교조, 학부모연대, 참교육 시민모임등이 『두밀학교살리기 연대모임』을 만들었어요.

대부분 산골분교는 주민들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힘없이 폐교되었으나 두밀리 주민들은 당당하게 싸워왔습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왔는지요?

더 이상 정부가 농촌을 망쳐놓는 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다는 생각에 전주민이 똘똘 뭉칠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폐교철회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체주민회의인 대동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민주적으로 일을 처리해왔기 때문입니다.

두밀리 주민들간의 의견차이는 없었는지요?

처음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3달 정도 경과뒤 집중적으로 수습대책위원회 소속의 사람들이 불이익등을 들어 설득하는 바람에 몇몇 이탈자도 생겼습니다만, 현재도 몇몇분외에는 전체 주민들이 함께 행동하고 있습니다.

두밀분교 아이들은 1년동안 교사가 아닌 학부모와 공부해 왔고, 이제는 일단 상색국민학교로 재판 종결시까지 등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두밀리 아이들 성적이나 학교생활에 이상이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실력있는 엄마와 동네주민의 동생되는 젊은이들이 가르쳤는데 운동장을 넓게 못쓰고, 과학실 사용을 못하는 것등이 아쉬웠으나 학과목등은 별문제가 없었어요. 현재 상색국민학교 학생들보다 학업성적이 우수합니다.

재판에서 지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두밀분교 폐교가 확정된다면 두밀리 마을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는지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가평으로 방을 얻어 나갈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색국교도 학생수가 줄고 있어 머지않아 분교될 것이고, 학교를 또 바꾸느니 아예 가평국민학교로 전학을 시켜 졸업시키자는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방을 얻어 어머니가 나가거나, 아니면 서울 친척집에 얻혀 지내도록 애만 보내거나, 아니면 농사일을 버리고 배추장사라도 할까 하는 생각들이 많아요. 그래서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자식교육 때문에 도시로 옮겨 갈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두밀분교의 폐교는 두밀리 마을 전체의 붕괴를 가져올 것입니다.

두밀리 주민들이 폐교반대를 하고 난 후 교육감, 국회의원등 많은 정부측 사람들이 두밀리 주민들을 설득하려고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주민들을 설득했습니까?

국회의원이 왔을 때 기관장들이 마을 주민 20여명 앞에서 학교 찾는 것 이외의 것은 무엇이든 요구하면 다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4km에 달하는 도로포장이 그것이었습니다. 학교 예산절감을 위해서, 1년 몇백만원의 돈의 절감을 위해서 학교 폐교를 한다며 수억원이 들어갈 도로포장을 해주겠다는 것은 마을 사람들을 더욱 분개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농촌(마을) 살리는 길은 학교를 살려 달라, 학교 없어져서 젊은 사람 다 떠나간 뒤 도로만 포장되어 있으면 무얼 하느냐고 주민들이 답했습니다.

지역에서 뽑은 군의원이나 도의원, 교육위원들은 두밀분교와 같은 자기지역 학교의 폐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

처음엔 전혀 모르고 있어요. 우리가 찾아가서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군의원, 도의원, 교육위원들이 중재에 나섰는데 별 성과가 없어요. 오히려 이 사람들은 두밀리 사람들 때문에 행정부에서 욕을 먹고 있다, 민원이 발생한 지역으로 이미지가 나빠졌다는둥, 엉뚱한 소리만 했습니다. 군수는 자신은 정부에서 녹을 먹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난처하다고 하고, 읍장은 왜 정부시책에 반발하느냐며 주민들이 나쁘다고 해요.

두밀분교 폐교문제가 언론에 보도된후 “두밀학교살리기 연대모임”이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전교조 선생님들과 대학생들이 여름방학때 학생들을 가르쳤고, 법정투쟁에 드는 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음악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 법정경비로 사용하고 있는데, 두밀분교 이야기를 많이 홍보 해주었습니다. 힘을 내서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학교를 찾으라는 말에 용기도 얻기도 했어요.

두밀분교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동안 가장 좌절했던 순간은 언제 입니까? 두밀분교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적은 또 언제인가요?

좌절 여러 번 했습니다. 경찰서 형사들이 친하니까 이야기 해준다며 일부 주동자들이 구속 대상이라며 주민들에게 겁을 주었습니다. 학부형중에 마음약한 사람을 찾아가서 만약 계속 고집하면 부모 구속되니까 그런줄 알라고 말하자, 학부모들이 겁먹고 자신을 잃었을 때… 농사도 못짓고 무슨 망신이냐고 했을 때… 좌절했습니다. 주민들이 구석구석 산재해 살고 있는데 이번일을 기화로 동네 주민들이 단합되어 대동회때 잘 모이고 노인네들을 위로해 줄 때 보람되고 힘이 납니다. 학부모들도 친형제처럼, 집안같이 친해져 소송에 지더라도 보람으로 남을 것같아요.

농촌지역의 교육은 도시지역의 교육과 달라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람직한 농촌지역의 교육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교육을 복잡하게 생각 안합니다. 우리에게 피아노학원, 미술학원등은 그림의 떡이고, 도시의 교육열 따라 갈 수 없어… 옛날처럼 기역, 니은부터 배워 나가고 국민학교에서 만이라도 자연속에서 인간적인 교육을 받게하고 싶어요. 바란다면 영어 교육을 심화시키고, 농촌은 자기의 특기를 찾기 쉬우므로 국민학교, 중학교하고 연결지어 특별한 기술 전문교육을 받게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학원비, 과외비등으로 10조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부담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농촌지역의 학부모로서 자녀 교육비지출은 어떤 상태입니까?

저희는 그런 돈을 마련할 형편이 전혀 안됩니다. 다행이 벽지학교라 공책도 보내 주고, 선생님들이 옷,신발, 가방등 갖다 주곤 했습니다. 점심도 무료급식이고, 한국통신이 벽지학교라고 컴퓨터를 6대 기증, 피아노도 있고 교육 잘 받았습니다. 여름방학등에는 서울에서온 단체 손님을 학교에 수용하여 그 수익금으로 박람회, 고궁등에 아이들을 무료로 여행 보냈어요.

정부의 농촌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정부가 농민을 위해서 가장먼저 해야할 일이 무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농촌에 4십2조원을 투자하여 농촌의 세계화를 시도한다고 하는데 교육에도 투자를 했으면 좋겠어요. 교육 때문에 이농현상도 있는데… 보건소등 복지시설에도 신경쓰고…

일부 군청, 읍사무소에서 영농 자금을 풀고 있는데 안면위주의 선정이 아닌 농업에 전념할 사람들에게 대출해 주어야 하고 대출이후에도 관리 지도를 체계적으로 해야 합니다. 전농자금, 후계자자금, 영농자금등의 자금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농산물 수입 개방 이후 농민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두밀리 주민들의 지난 한 해 농사는 어떠했습니까?

학부모들 대부분 학교일 때문에 쫓아 다니느라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했습니다. 논농사, 밭농사는 자급자족 수준입니다. 과수를 재배하고, 축산으로 대부분 가정에서 소 1-2마리 기르고, 임산물로 봄에는 산나물과 가을의 호두, 밤, 잣등의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산골 농사입니다.

우리의 농촌이 어떻하면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UR등으로 정부에서는 기업화(기업화, 기계화, 대규모)하는 농민을 밀어주어 현재 8백만 농촌 인구를 3백만으로 줄인다고 하는데 8백만 인구는 가져야 대한민국 전체의 식량, 부식, 과실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농촌인구가 줄지않도록 농촌예산을 현재의 10%에서 20%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논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식량안보의 차원과 환경보전의 차원에서도 농촌을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40여년의 군정후 갑자기 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민 자신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힘센데 붙어야 먹고산다”는 의식이 있는데 선거때 같은 경우 더욱 두드러져서 정치적으로 선출 하는등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국민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국민의식교육을 담당하는 곳을 두어 자신을 갖도록, 기본적 자세를 지니도록 교육하는 교육기관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여사회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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