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 인 간 전 망 대 가 본 오늘의 세상 ] ‘전문가 중심 운동’ 비판에 대한 변명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흔히 이런 질문에 접하게 된다. “시민운동이 지나치게 특정 전문가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니냐”고. 우려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론 질타나 비판일 수도 있는 이런 지적은 어쨌거나 들을 때마다 매번 아프고 시리다. 시민운동이 과연 전문가 중심이냐 아니냐는 논쟁이나 규명까지는 굳이 안 간다 하더라도, 우선 이런 지적들이 시민운동의 안팎이나 지근거리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시민운동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착잡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과연 시민운동이 전문가 중심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일 터이고, 반대로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 중심 운동이라는 말의 함의는, 아마도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시민적 참여나 그에 기반한 시민주체의 운동’이 현실의 시민운동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란 부인할 수 없이 명백한 사실이다. 우선 현상적으로만 보아도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시민적 참여’는커녕, 여전히 대개의 시민단체들은 그 규모나 영향력 측면에서 영세하기 짝이 없는 형편에 처해 있는 게 현실이다. 참여연대만 보아도 한국사회에서 마치 대단한 위세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나 한 듯이 사람들에게 비춰지고 있지만 그 실상이란 냉정히 말해서 이제 겨우 회원 9천여 명을 막 넘어선 주제에 불과하다.

단순히 양적인 비교만으로는 볼 수 없겠으나, 우리사회 인구 대비 참여연대 회원 수의 비중이 바로 참여연대가 갖고 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정상적인’ 영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참여연대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그 이상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좋게 말해서 시너지 효과랄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해서 과잉활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시너지, 또는 과잉활동의 현상은 회원들의 유달리 높은 의욕과 참여의식, 그리고 활동가들의 명석함이나 기민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이를 지휘하고 통솔하는 리더십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 못지 않게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는 역시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전문가’집단의 결합이다.

회원-활동가-‘전문가’ 집단이라는 삼각축이 없다면 참여연대의 이런 시너지, 활동과잉 현상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엄청난 사건들이 부지기수로 터져 나오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시민단체가 자신들의 역량을 고려해서 운동을 취사선택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여유란 사실상 없다. 문제들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는 판에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거니와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달려온 게 우리 시민운동 판의 속사정이기 때문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지만 회원-활동가-전문가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이다. 특히 늘 회원 늘리기에 골머리를 싸안고 씨름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감안한다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는 결국 어떤 특정집단의 한정된 노력으로 풀어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시민참여의 항상적인 결핍상황을 탓한다고, 또는 이런 결핍을 마치 주술사가 주문이나 외는 것처럼 이상적이고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언제나 시민운동은 당시 시민들의 참여와 의식수준 만큼만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준에 전적으로 규정되기 마련이다.

특히 오늘 우리의 시민사회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시민적 참여나 그에 기반한 시민주체의 운동’과 대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민운동이 ‘전문가 중심운동’이라고 그리 자조하거나 비판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형완 참여연대 협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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