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2월 2010-12-01   1513

에세이-숙제를 끝내고

숙제를 끝내고

이해숙 회원

 

“시원섭섭하시겠어요.” 요즈음 보는 사람마다 내게 하는 인사이다.

“아니요. 전혀 안 섭섭하네요.”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갸웃거린다. 내가 비정상인가.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마음이 홀가분하다 못해 날아갈 것 같으니 말이다.

  밤늦게 일터에서 돌아와 제 방을 들락거리는 과년한 딸을 보며 그 허송세월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조카를 끔찍이 예뻐하는 것도 애처로웠다. 저 모습이 제 자식과의 어울림이면 얼마나 좋을까. 도대체 언제쯤 짝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될까. 아니 하기는 할까.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딸에게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까봐 그 앞에서는 짐짓 안 그런 척 허세를 떨곤 했었다.

  이제 멋지고 착실한 사람을 만나 그림 같은 결혼식을 올리고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소꿉놀이하듯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있다. 무슨 섭섭함이 있단 말인가. 흔히들 자녀가 장성하면 출가를 시켜야 숙제를 다 했다고 하지만 이 숙제는 내가 할 수는 없는 내 숙제여서 늘 마음 한 구석이 묵지근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숙제도 못하고 몇 년째 미루고만 있었다. 중간에 산행후기를 모아 책을 엮었을 뿐, 내 컴퓨터의 이 구석 저 구석에 지난 10년 동안 써 놓은 글들이 잠자고 있는 것이었다. 슬펐거나 기뻤거나 한 순간의 간절함이 있어서 써 놓은 글들인데, 책을 내자니 왠지 쑥스럽고 나를 더 이상 세상에 내 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까짓 지난 세월의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자니 마치 앨범을 통째로 쓰레기더미에 던져 버리는 것 같아 그럴 수도 없었다. 원고 정리를 대강 해 놓은 채로 3년이나 지났다. 해마다 올해는, 올해는 하다가 올 초 과감하게 탈고를 하고 출간 했다. 홀가분했다.

  책을 내는 것은 단순히 원고뭉치만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기쁘고 아픈 내 10년 세월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내 삶도 정리가 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바로 치유이고 정화이다. 내 안에 있어 슬프고 괴로운 마음은 글로써 세상에 나올 때에 그 사연들도 함께 나와서 세상과 소통하고 화해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아픔과 슬픔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다. 사실 지칠 만큼 슬퍼야 슬픔이 사라지고 죽을 만큼 아파야 상처가 치유되었다. 그러느라 10년 동안 껴안고 있었던 사연들을 다 털어내고 나니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맑아지고 밝아졌다. 책에 대한 반응은 역시나 조용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흡족했다.

  2010년을 보내는 마음은 내 묵은 숙제를 다 끝내서 참 홀가분하고 느긋하다. 또 평안하다. 인생은 숙제의 연속, 새해에는 또 어떤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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