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3월 2010-03-01   1088

칼럼_이 땅의 발자국에 입맞추며



이 땅의 발자국에 입맞추며 


이태호 「참여사회」편집위원장/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그 시를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한 참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빌려 읽다가
‘유관순’이라는 그다지 눈이 가지 않는 제목의 연작시들을 엮은 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냥 건너뛰어 다른 장의 시들부터 읽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책장을 넘겼는데,
그만 첫 시구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그리운 미친년 간다
햇빛 속을 낫질 하며 간다

날 저문 백성들 강가에 나가
칼로 불을 베면서 함께 울며 간다
…….
간다. 그리운 미친년 기어이 간다
이 땅의 발자국마다 입 맞추며 간다



순간, 늘 ‘열사’라는 접미사와 함께 불리던 유관순이라는 이름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싹 가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친년! 얼마나 다정하고 애절한 호명인가요?
이제 갓 17살이 된 이화학당 운동권 여학생 유관순이 떠올랐습니다. 젖살이 빠지기 시작한
상기된 볼에서 묻어났을 약간의 긴장과 피로감,
깊어지기 시작한 눈매에서 가끔씩 낯설게 이글거렸을 티 없이 맑은 눈동자,
뭇 소녀들처럼 까르르거리다가도 저도 모르게 딱딱하고 생경한 단어를 곁들여
‘날 저문’ 조선의 현실을 토로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그 소녀…….


사실 제게 ‘그리운 미친년’에 대한 상념은 그보다 더 복잡 미묘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에 가담할지 말지를 정하지 못하고 어정쩡했던 저와는
도저히 인연이 닫을 것 같지 않았던 어느 운동권 여학생에 대한 설렘,
당시 제게 막 싹트기 시작했던 가부장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나 자신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
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채로 ‘미친년’에 대한 그리움에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그지없지만, 당시 제겐 편두통과 빈혈을 달고 사는 운동권 여학생들에 대한
동경과 연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매달 겪는 생리통에도 콤플렉스 비슷한 게 있었습니다.
그 섬세한 정신과 육신에 가해질 군부독재의 폭력에 대한 상상이
어쭙잖은 저의 연민을 더 자극했겠지요. 반면, 데모 한 번 나가는 것에도 온갖 비극적 상상과
걱정을 다 하면서도 식욕, 수면욕, 성욕만큼은 전혀 줄어 들이지 않았던 저 자신이
당시에는 너무나 속물적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이 콤플렉스는 제가 “그리운 누군가까지는 못 되더라도
‘날 저문 백성’의 하나로서 먼발치에서 뒤따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스스로를 정리한 후
소위 ‘운동권 서클’에 가입하면서 조금씩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아버지로부터 ‘미친 놈’이라는 욕을 얻어듣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싯적 운동권 학생은 최근 한 달에 서너 번 찾아오는
‘운동부족으로 인한 두통’도 체험하게 되었는데 이 지긋지긋한 걸 젊었을 때는 왜 부러워했는지
실소를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참여연대에 들어오기 전 한동안 신도림역 근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인파로 붐비는 신도림역 환승구간에서 어느 젊은 여자가
웃통을 벗은 채 알아듣지 못할 말로 중얼거리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미치려면 곱게 미치라는 얘기도 있는데,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 여자는 이 붐비는 역에서
벌거벗는 방식으로 미치게 되었을까?’
문득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하얀 속살이 어쩌면 그리도 멀쩡하게 곱던지…….
               
수년 뒤 ‘자우림’이 부르는 ‘일탈’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는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지루해…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이라는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가는 그 날의 그 일을 보았던 것일까요?
어쨌든 이 노래는 슬픔과 인고의 정조보다는 도전과 전복의 에너지 같은 걸 담고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햇볕 속을 낫질 하며 가는 것 같았던 그 여자가 자꾸 떠오릅니다.


최근 평화박물관 건립 운동에 참여하고 계신 한홍구 선생이 한국인의 트라우마trauma에 대해
강의하시는 걸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트라우마란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라고 하네요.
우리 역사에서 날 저문 백성들이 겪어야 했을 충격적 경험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리고 그 와중에 그리움의 대상이랄 것도 없는 얼마나 많은 미친년 미친놈들이
그 험한 세상을 살아 냈을까요? 


3·1절에 신도림역 그 여자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걸어간 저문 발자국들에 엎드려 입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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