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6월 2010-06-01   1378

칼럼-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태호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저는 지금 광주에 와 있습니다.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아시아 민주주의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주로 오는 길에 국가보훈처가 ‘방아타령’을 5·18기념식에서 정운찬 총리 퇴장 때 틀려고 했다가
광주시민들과 네티즌들의 반발로 급히 취소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늘 불러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했다는 사실도 씁쓸했는데 이 소식까지 들으니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를 지내신
김중배 선생님이 즐겨 부르시는 노래입니다.
주당으로도 잘 알려지신 선생은 2차 장소로 즐겨 찾던
청진동 해장국 집에서 그날의 술자리를 마치곤 하셨는데,
새벽이 다 되어 일어서시면서 늘 이 노래를 선창하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만취하신 선생은 언제나 이 노래의 유명한 후렴구인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부분만 반복해서 부르곤 하셨지요.


선생은 그렇게 과음을 하신 뒤에도 반드시 새벽의 독서시간만큼은 엄수하시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아마도 그분이 술자리를 파할 때 부르시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새벽에 늘 깨어 있기 위한 그분 스스로의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금주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청진동 그 술집에서 저희 상근자들에게 “참여연대가 이름만 연대지 연대엔 소극적”이라시면서 ‘손톱 깎은 식의 (깍쟁이 같은) 운동’을 하려면 그만 두라고 질타하시던 모습이 특히 요즘 같은 때엔 더욱 그립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를 이명박 정부 보훈처가 부르지 못하도록 한 것은 편협하고 몰역사적인 소치입니다. 이 노래를 금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광주의 희생자들, 더 나아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함께 할 의사가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여 년간 프랑스 국가로 불리고 있는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혁명가)’에 비하면 온건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자, 조국의 아이들아  / 영광의 날이 왔다  / 우리에 맞서 전제정專制政이 들어섰다
피 묻은 깃발이 올랐다  / 피 묻은 깃발이 올랐다  / 들판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리느냐
이 잔인한 군인들의 포효가 그들이 바로 우리 곁에 왔다 / 너희 조국, 너희 아들들의 목을 따기 위해서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 너희의 부대를 만들어라. / 나가자, 나가자!
 그들의 불결한 피를 / 우리 들판에 물처럼 흐르게 하자. (라 마르세예즈)


사실 저 개인으로는 이 노래의 가사가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너무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용어 때문에 거부감마저 듭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이 모두 호전적이어서 이 노래를 대를 이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함께 부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겪어온 역사, 모든 시련과 시행착오를 뚫고 소중히 가꾸어온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그리고 그 과정의 지난함을 함께 새기고 공유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내친 김에 방아타령에 대해서도 찾아 봤습니다. 과거에는 이 경기민요를 부르지 못하게 했던 적이 있었더군요. 조선시대에는 상갓집이나 그 이웃집에서 부르는 것을 금기시했고, 대한제국시대인 1910년 1월 한성 중부서는 연흥사 같은 당시의 상설극장에서 방아타령을 비롯한 ‘난봉가’, ‘창부타령’ 등이 공연되는 것을 금지했는데, 그 이유도 역시 방탕하고 음란한 가사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미 5·18 기념식에서의 해프닝으로 이미 많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노자 좋구나 / 오초동남吳楚東南 1) 너른 물에 / 오고가는 상고선商賈船 2) 은 / 순풍에 돛을 달고 / 북을 두리둥실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감는 소리 / 원포귀범園圃歸帆 3) 이 에헤라이 / 아니란 말인가 에헤에헤~ / 에헤야~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반 넘어 늙었으니 / 다시 젊기는 꽃잎이 앵도라졌다…


그런데 이 ‘방탕한’ 노래의 가사에도 오늘의 현실에 대한 은유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순풍인지 북풍인지 무언가로 돛을 달긴 했지만 반 넘어 늙었다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인데… 5·18기념식만 아니라면 현 정부 총리의 퇴장 노래로는 그만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6월이면 현 정부 임기의 반이 지나는 셈입니다. 
게다가 보훈처가 급히 선택한 퇴장 음악이 ‘마른 잎 다시 살아나’라니, 이 선곡도 기가 막히게 절묘합니다. 어제 떨어진 꽃이 다시 피어난다는 뜻이고, 사라진 희망도 다시 생겨나며, 심지어 터전을 잃고 시들어가는 단양쑥부쟁이도 다시 소생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보훈처가 5·18에 보내준 메시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말장난이자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우리가 며칠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우리의 뜻을 투표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리고 지금은 어렵지만 이 길을 함께 걸어온 우리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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