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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2월
  • 2010.12.01
  • 1354
  • 첨부 1


fishing boat by Leppre


 

연평도와 황금투구



이태호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참조기와 굴비가 명절 때에나 구경할 수 있는 희귀하고 고급한 생선으로 인식되기 시작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50~60년대, 심지어 70년대만 해도 조기나 굴비는 명태나 꽁치처럼 부자나 서민 모두에게 익숙하고 흔한 먹거리였습니다.
옛이야기 속 자린고비가 대들보에 매달아 둘 생선으로 청어나 명태가 아닌 굴비를 선택한 것만 보더라도 조기가 구두쇠 영감에게조차 가장 만만한 생선이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파시波市’, 생선을 가득 잡은 만선이 항구에 모여들어 형성되는 바다 위의 시장을 일컫는 이 말은 조기와 가장 잘 어울립니다. 서해에서는 4월과 5월에 각각 형성되는 영광 근처의 칠산 파시와 연평열도의 연평 파시가 가장 유명했는데, 특히 연평도 파시는 한반도 3대 파시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참조기는 입술이 홍색이고, 몸 전체 빛깔이 황금빛이 감도는 흰색인데, 배 부분은 특히 노랗습니다. 그래서 황黃조기라고도 불립니다. 조기의 외모도 이름도 황해의 대표적인 물고기답습니다. 조기란 놈의 머리는 꽁치나 고등어처럼 금속성의 매끈한 느낌이 들기보다는 뭉툭한 형상에 섬세한 작은 비늘로 덮인 아가미 덮개의 모양이 현란하고 이마에 다이아몬드형 문양이 선명하여,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은 이를 두고 황금투구를 썼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만나 형성된 연평도와 해주 사이의
영양이 풍부한 얕은 바다를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떠들썩하게 회유하는
수억~수십 억 마리의 화려하고도 장엄한 행렬이 눈에 선합니다.  

   

연평어장을 끼고 마주보고 있는 해주와 연평도는 이 황금 물고기로 인해 번성한 마을입니다. 주민들은 황금투구를 쓴 거대한 무리들을 해마다 이 섬으로 불러오는 해신의 보호와 음덕으로 수천 년, 대를 이어 이곳에 터 잡고 살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연평도를 만들고 지켜온 것은 어떤 군대보다도 조기군단이었습니다. 어떤 내우외환도 이 거대한 생명의 이어짐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의 주요 조기 산지에서 최근까지도 임경업 장군이 전수해주었다는 재래식 어살을 사용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임경업이 명나라로 탈출할 때 선원들이 식량이 모자란다고 불평하자 그가 가시나무 가지를 갯벌에 꽂아두었더니 모든 가시마다 조기가 걸려들어 그것으로 식량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병자호란의 풍운아 임경업 장군은 몰락하는 명의 세력과 연합하여 신흥패권국 청에 대항하려 했던 인물입니다. 청과 화해하려 했던 최명길과는 대척점에 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복잡한 지정학적 해석은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도서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이들에게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다만, 임경업은 모든 만신과 어민들에게 조기의 신, 풍어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을 뿐입니다.

 

주강현은 저서 『조기에 관한 명상』에서 왕조의 시간과 민중의 시간이 서로 다르며,
왕조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로서 사물을 이해하면 사태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역설합니다.
연평도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볼 때, 이 탁견의 의미는 더욱 새삼스럽습니다.
놀랍게도 연평도 조기어업이 가장 번성한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였다고 합니다.
아직 경계조차 확정되지 않은 서해바다, 지금까지도 남측에서 정한 ‘NLL(북방한계선)’이 옳은지 북측이 주장하는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이 옳은지를 두고 서로 다투며 군사적 충돌을 빚기 일쑤인 해역, 북한이 점유한 해주를 10km 내외로 마주한 그 삼엄한 공간에서, 연평도의 황금기가 열렸던 것입니다.
민중들의 삶은 전쟁과 죽음보다 질긴 것임을 새삼 절감합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며칠 전 연평도에 대한 북한 측의 포격으로 천 명 이상의 연평도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등지고 피난 나와 인천의 임시숙소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이 포격은 1999년 이래 지난 10여 년간 연평도 대청도 인근에서 3차례에 걸쳐 해상교전이 오갔던 것을 배경으로, 가깝게는 지난해 11월 대청도 인근에서 남북해군간의 교전으로 인해 북한 해군이 크게 당한 지 만 1년여 만에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번 북한의 대응은 연평도 해병대의 포사격 연습에 대응하여 북한 해안포대가 연평도 군부대와 심지어 민간인 주거지역까지 포격한 것으로, 기존 교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공격행위로 비난받고 있습니다.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했으니 더욱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방부는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 전투기 또는 다연장 로켓포1)를 이용하여 ‘충분한 수준의 응징과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공약하였습니다. 영해와 영토의 안보를 향한 의지가 거칠게 충돌하여 군사적 갈등의 수준이 점점 더 확대되는 형국입니다.  

   

남과 북의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더라도, 아마 연평도의 주민들은 기어이 그들의 터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그들은 왕조나 체제의 시간이 아닌 자신들의 시간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조기도 청어도 연평도를 찾지 않지만,
여전히 꽃게와 까나리가 그들의 고된 삶을 이어주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서해상의 분쟁지대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로 선포하기로 했던 2007년 남북정상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다.
안보 논리에 의해 체제의 시공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그것대로 순서와 절차에 따라 다투도록 하되, 적어도 민초들에게 만큼은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갈 수 있게 하자는 절묘하고 현명한 합의였던 까닭입니다.

이 글은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의 「조기에 관한 명상 - 황금투구를 쓴 조기를 기다리며」(한겨레출판, 1998)를 인용하거나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사실상 주강현 선생의 책에 대한 서평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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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한번에 12개의 로켓을 순차적으로 발사하는 무기체계. 로켓탄 한발만으로도 축구장 하나 정도의 면적을 초토화시킵니다. 이 로켓의 화력이 이렇게 강력한 이유는 집속탄(Cluster Bomb)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집속탄은 공중에서 1차 폭발을 하여 수류탄 크기의 수백 개의 자탄들을 지상에 흩뿌립니다. 집속탄은 평균 25%에 이르는 불발탄에 의한 2차 피해도 심해 대표적인 비인도무기로 지목받아 왔습니다. 집속탄으로 인한 사상자의 98%가 민간인이며 그 중 1/3은 어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2010년 8월 1일 108개국이 서명한 집속탄금지협약이 국제협약으로써 정식 발효되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아직 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벨기에,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집속탄 생산업체 한화와 풍산을 투자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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