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4월 2010-04-01   1346

칼럼_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태호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1.
지난 주말에 섬진강에 다녀왔습니다.
매화랑 산수유는 활짝 피었는데, 길가에 벚꽃은 필락 말락 하고 있었습니다. 화개 여울에는 아직은 제법 맵싸한 바람이 불더군요.
바다에서 갓 올라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황어 몇 마리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산란기에 길고 노란 줄무늬를 지니게 되는 이 아름다운 회유성 물고기는 사람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어나 은어와는 달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
매화와 산수유의 화사함에 가려져서인지 진달래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진달래는 봄을 대표하는 꽃인데도 패키지관광 따위의 이벤트와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른 꽃들에 견주어 볼 때 진달래가 덜 과시적이고 수줍음 많은 부류인 까닭입니다.
아직 잿빛이 지배하는 이른 봄, 저물어가는 산기슭에서 이 사연 많은 반투명의 연보랏빛 꽃잎들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점점이 흩어져 처연하게 깜박거릴 따름입니다.

쓰다 보니, 새끼손톱만한 꽃부리조차 쑥스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는 제비꽃에게 미안해지네요. 


3.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그 꽃’


4.
대학 다니던 시절에 ‘쐬’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줍음이 많고 차분한 성격의 그 친구에게 그런 우악스러운 별명이 따라붙게 된 이유는 본명이 ‘철’이었던 까닭이죠.

91년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몇 개월을 저는 그 친구와 ‘공장’에 다니며 보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함께하던 동료들이 저희에게 “잠시 피해있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길래, 내친 김에 용돈도 벌 겸 공장체험을 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위장취업’을 한 셈이죠. 그런데 ‘쐬’는 별명과는 달리 영 맥을 못추는 것이었습니다. 공장에만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서는 손끝 하나도 움직이기 싫다는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적잖이 실망한 저는 그 가을 내내 그에게 까칠하게 굴었습니다. “운동권이 근성 없이 저렇게 엄살을 부려서야…”하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친구, 폐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참여사회> 편집위원이자 제 친구이기도 한 박철 회원이 최근 몸이 안 좋아져서 편집위원 일을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진작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도 저는 그 친구가 쉬겠다고 말하기까지 안부인사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했습니다.

“쐬! 미안하다. 빨리 나으렴. 그리고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더라. 이번 기회에 바삐 살아온 40년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는 것도 좋지. 그리고 아플 때 바라본 세상은 어떻든지 나중에 얘기해 주렴.”

 
5.
올해 참여연대는 故 허세욱 회원을 명예회원으로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故 허세욱 회원이 가신 지 벌써 3주기가 되었습니다. 회원행사나 집회장 맨 뒷자리에는 늘 수줍게 웃으시던 그 분이 계셨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늘 그렇게 계셨지만 우리는 가끔씩만 그분을 발견했다고 말해야 옳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선생이야말로 내려올 때나 눈에 띄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1주기 추모식을 위해 썼던 글 일부를 다시 옮겨 적어 봅니다.



故 허세욱 선생님,

시린 눈 가눌 길 없는 화창한 봄날입니다. 긴 겨울 삭풍으로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어쩌면 저렇게 고운 꽃잎들이 장하게 돋아났을까요? 산들바람에도 제 몸 가누지 못하는 저 여린 풀잎들은 어떻게 언 땅을 뚫고 솟아올랐을까요?

4월의 햇살, 바람, 꽃잎, 풀잎, 그리고 먼 아지랑이…

뭇 생명의 고요한 아우성에 둘러싸여 어지럼 타는 우리들을 당신은 그저 조용한 웃음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봄날의 화사함과 적막함, 치열함과 허무함을 넘어, 삶과 죽음을 넘어, 당신은 닿을 듯 말듯 저만치 누워 계십니다.

선생을 여읜 것을 실감하는 이 봄이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늘 소중한 것을 잃은 후에야 그것을 깨닫습니다.

숱한 죽음을 넘어 풀들이 일어서고 다시 바람에 흔들립니다.
무수한 생명들이 일어나고 스러지지만, 어느 목숨 하나 헛되이 오고 가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일깨워 주셨습니다.

어두운 새벽, 박토 한 줌 움켜쥐고 피어나는 민들레 꽃 한 송이를 온 우주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까닭을 당신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故 허세욱 선생님,
부디 당신을 닮아 이 땅에 나온 뭇 목숨의 하나로 제 향기 잃지 않고 살다 가게 하소서.
삼천리 방방곡곡 더불어 피고 지는 저 들꽃들처럼 욕심 없이 생명의 길, 진보의 길을 이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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