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2월 2010-12-01   1042

에세이-오래 삭힌 묵은지처럼…

오래 삭힌 묵은지처럼…



박진호 회원

 

친구야! 오늘은 아침 일찍 어머니와 인왕산 등산로를 거닐면서 아침 해를 보았단다. 어머니는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마치 시인이 되신 듯 “오 찬란한 태양~”을 외치셨어. 그러고 보니 인왕산과 가까운 종로구로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네. 너도 통인동으로 이사한 지 3년째구나. 그러고 보니 너를 만난 지도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세월 참 빠르다. 어느 후배가 참여연대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물어왔을 때 무심코 ‘친구’라고 대답했어. 아마 이사를 온 후 너를 찾아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껴진 걸 거야. 2010년 어떻게 지냈니? 누군가로부터 ‘한 해를 정리하고 지내는가?’하는 질문을 갑자기 받으니까 참 당혹스럽더라. 새로운 일 년 계획을 세우면서도 지난 일 년을 평가하는 데는 소홀한 나 자신을 발견했거든. 그래서 지난 2010년을 정리해보니 네가 내 삶의 일부더구나. 별 다른 일이 없으면 네가 부르자마자 바로 달려갔고, 반성촛불 1인시위 경험도 해보았지. 사실 1인시위 할 때 좀 무서웠어. 그래도 동료들이 주변에 있어주어 위안이 되었지.

  지난 3년 동안 운영위원을 지내면서 너와 더욱 친밀해진 것 같아. 네가 그동안 해 온 일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평가하는 시간, 또 다가올 1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하는 시간이 참 좋았어. 그랬기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런 경험을 해보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올해는 운영위원 자리를 맡지 않은 거야. 그런데 그 후에도  자꾸만 너에게 관심이 가더구나. 퇴근 후 네가 있는 곳을 종종 들르곤 했거든. 어떤 때는 불이 꺼져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밤늦게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 그럴 때는 뭐라도 사들고 가서 격려하고 싶기도 했어. 집이 가까우니 이웃집 넘나들 듯 사무실에 들렀지. 그 덕에 활동가들의 질문이 달라졌어. 전에는 ‘오늘은 무슨?’, ‘청년마을모임 때문에?’하던 질문이 이젠 ‘강좌 들으러?’, ‘밴드연습 하러?’이렇게 폭이 넓어지더구나. 우리가 친해졌다는 증거겠지.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올 한 해 워커홀릭 생활을 했어. 짬 날 때 메일함을 보면 확인하지 못한 메일이 가득하더구나. 날마다 메일을 체크하던 나도, 며칠 바빠 일 처리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더라.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주어진 일에 급급하다 보면 일상적으로 서로 챙겨주던 사람들 사이도 점점 소원해지는 거 같아. 매년 넌 ‘시민과 함께’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하곤 했지. 또 그 방안을 모색했었고. 정말로 ‘시민과 함께’하려면 열어보지 못한 이메일처럼 친구들이 서서히 잊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거야. 나는 가끔, 네가 일대 다의 관계가 아닌 일대 일의 관계로 나에게 다가와 주길 바랐어. 내가 그랬듯이, 네가 다가와 주길 바라며 연락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표현을 해보는 건 어떨까. 올해가 지나기 전에 말이야.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하더구나. 선배, 후배 이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묵은지’ 같은 친구, 울고 불고 추태 부려도 민망하지 않은 친구,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친구,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그래, 우리도 오래오래 삭힌 ‘묵은지’처럼 우정 변치 말자. 함께하는 2011년, 더 좋아질 거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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