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4월 2010-04-01   1036

최성각의 독서잡설_솔직담백한 노학자의 인생론에 담긴 깊은 우려


솔직담백한 노학자의 인생론에 담긴 깊은 우려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인생』│지셴린│이선아 옮김│멜론│2010년


작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의 한 대학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지체 높은 이들부터 하층민까지 온 중국 인민이 깊이 애도했다는 기사를 본 것이. 연예인도 아니고 스포츠맨도 아닌 일개 학자에게 어찌 대국의 온 국민이 하나같이 애도를 했단 말인가, 하는 호기심도 일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어떤 분인지 몰라도 필경 ‘존경’과 ‘사랑’을 같이 받았던 분이셨던 모양이구나, 그리곤 잊었다. 그런데 유난히도 폭설이 자주 내리던 지난 봄날, 그래서 시골 연구소에 난로를 다른 해보다 오래 피워야 했던 얼마 전, 우연히 그의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제목이 『인생』이었다. 지은이는 지셴린季羨林. 깡마른 인상이지만 혈색 좋고 피부 팽팽하고 눈매가 부드러운 한 노인네가 푸른 반팔 셔츠를 입은 채 오른손을 귀 가까이에 올리면서 뭔가 말하고 있는 사진이 표지에 박혀 있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아하, 이 분이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바로 그 분이구나”,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남색 중산복 차림의 추레한 부총장

『인생』이란 제목의 인생론이라? 하기야 좋은 책들 중에 인생론이 아닌 게 어디 있을까? 철학책들도 알고 보면 모두 인생론이라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인식론의 얼굴을 띄고 있든, 존재론의 모습을 취하고 있든, 관계론을 역설하는 목소리든, 그것들 모두 우연히 목숨 얻어 여기 잠시 살다 갔던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뭐라 부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첫장에서부터 나는 망치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도 몰래 탄식이 배어나왔다.

1970년대 말, 베이징대학교 캠퍼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시골에서 이 학교에 입한 한 새내기가 고향에서 짊어지고 온 가방을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마침 길을 지나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네가 있길래, 노인에게 “가방을 좀 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곤 학교 사무처에 입학수속을 밟고 동향의 친구를 만났던가, 베이징대학 여학생들에게 한눈을 팔았는지도 모른다. 이 젊은이, 가방을 맡긴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헤매다가 점심시간이 다 지나서야 가방 생각이 났다. 부랴부랴 달려가 봤더니, 땡볕에 그 노인네는 아직도 가방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마도 그 새내기는 손이 발이 되도록 노인네에게 사과를 했을 것이다.

이튿날, 입학식 때 이 새내기, 단상을 보니 주석단 자리에 어디에선가 본 듯한 노인네가 앉아 있었다. 어제 그가 가방을 맡겼던 추레한 차림의 노인네는 베이징대학의 부총장, 지셴린이었다.

이 일화는 다른 영웅설화와 달리 윤색과 과장이 그리 심할 수 없는 것이 일어난 사건 자체가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책의 머리말에서 이 일화를 만난 뒤, 나는 나도 모르게 잠시 책을 덮고 탄식을 했다. 왜 한숨을 내쉬었을까. 내 나라에는 왜 이런 인물이 없을까, 아마도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대학의 속물교수들

내 나라 대학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 ‘김예슬 선언’이 나온 직후 같은 학과의 한 학생이 지지글을 썼는데, 거기에 바로 우리나라 대학에 있는 인물이 나온다

“2003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 입학한 저는 학교에 다닌 3~4년 내내 수업 하나 제대로 들은 적 없는 못난 대학생이었습니다. 하나의 공포가 대학 시절 내내 저를 지배했는데 현대기업경영 첫 수업날, 교수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겁에 질렸던 겁니다. 그는 “고대 경영대 정도 나왔으면 벤츠나 아우디 정도는 타줘야지”라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고대 나왔으면 벤츠 정도는…”교수님 얘기에 섬뜩했습니다.

모두들 웃었는데 왜 나는 웃지 못했는지요. 그 말이 너무 무서웠고 섬뜩했습니다. 나는 남보다 뻔지르르하게 살겠다고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한 게 아닌데, 고작해야 외제차 하나 타겠다고 살아온 게 아닌데 말입니다.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홍명교, 「김예슬 씨의 선언, 당신도 보여주세요」, 오마이뉴스, 2010. 3. 12)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영원한 명문대’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고려대, 거기 ‘들어왔다 나가면’ “벤츠나 아우디 정도는 타줘야지”라고 말하는 교수가 바로 내 나라에 계신다. 이 교수님도 어쩌다 학생의 짐을 맡았는데, 학생이 돌아올 때까지 땡볕에서 학생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고대교수 정도’인데, 그럴 리가 있을까. 말이 나왔으니 이야기지만, ‘타 줘야지’라니? 고대 정도 나왔으니 외제 명품차 정도를 타주는 게 예의라는 뜻일까? 아 젠장, 필경 이것은 농으로 한 말이겠지만, 농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 사람의 의식구조를 본다. 아니다. 어쩌면 농을 통해서만 진짜 그의 의식구조가 노출될 것이다.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인생론

곰곰 생각해보면 아주 없지야 않겠지만, 멋진 인물이 얼른 안 떠오르는 데 대한 깊은 자탄과 고려대 속물교수의 참혹하고 저속한 농담 때문에 탄식으로 시작한 지셴린의 『인생』은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사람을 웃겼다. 대부분 쿡, 하고 웃었지만 어떤 때에는 소리 내 웃었다. 노학자의 천진성과 종횡무진으로 발휘되는 뛰어난 유머감각, 단순소박하면서 결코 허투루 넘기기 힘든 글의 맛과 아흔 살 정도 치열하게 잘 살아낸 노인네만이 펼칠 수 있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인생론의 깊이와 기품이 거기 있었다. 10대 때에는 소설을 쓴 적도 있는 이인지라 그는 무엇보다도 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가 이룩한 독보적인 학문적 성취와 달리 그는 글을 아주 쉽게 쓴다. 누구나 읽으면 알아듣게 말하듯이 쓰는데 그 경지가 높다. 자신이 써놓고도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난해한 글쓰기가 우리 학계에는 만연해 있는데 지셴린의 글은 달랐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내 나이 어느새 아흔을 바라보니 인간 세상에서 이미 여든 번이 넘는 봄,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나 같은 늙은이가 매일 시시각각 대면하는 인생을 논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니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인생』, 17쪽).

그러므로 이 책은 식은 죽을 천천히 떠마시듯이 읽으면 된다. 어차피 식은 죽이라 찬장에 넣어뒀다가 천천히 떠먹어도 된다. 지셴린이 바라는 게 바로 그런 독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광대무변한 우주 어디에도 “그들이 존재할 만한 곳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아득한 저 어딘가에 ‘운명의 신’과 비슷한 어떤 존재가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은 희미하게 한다. “우주와 자연은 자애롭지 않아서 만물을 하찮게 여긴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비롯해 여러 동식물들이 지구를 다 뒤덮지 않은 데 대해 안도한다. 그렇지만, 노년에 접어들수록 그는 인간에 의해 절멸되어 가는 동식물들에 대해 분노하고 우려한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업적을 이룩한 원로학자로서 그 인격과 그가 한 일로 인해 ‘나라의 스승’이라는 월계관을 쓴 지셴린은 90이 넘어 남긴 『인생』과 『병상잡기』(뮤진트리)에서는 ‘천인합일론天人合一論’을 거듭 거론하면서 거의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있다.

누구인가. 연보에 의하면, 그는 1911년생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머리 영특해 다행히 칭화대 서양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내다가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인도 고대 언어를 공부하고 철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10년간 유학 후 귀국해 베이징대학에 부임해 동방학부를 창설한다. 80년대에는 중국 둔황敦煌 유적의 잔해에서 인도의 제당법製糖法에 관한 단서를 발견하고 중국과 인도의 고대문화 교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1996년에 『당사糖史』를 완성했다. 이 방대한 책은 고대 중국과 인도, 페르시아, 아랍, 이집트, 동남아의 문화교류사에 관한 책으로 그의 역저다. 그뿐 아니라 영어, 독일어는 물론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토하라어 등 고대에 사용한 사어死語까지 연구해 수많은 고대 문헌과 서양 및 인도 문학을 번역하고, 『중국대백과전서』, 『사고전서존목총서』, 『신주문화집성』, 『동방문화집성』 등 총서의 편집을 주관했다. 문화대혁명 때에는 학내정치투쟁에 휘말려 린치와 강제 노동은 물론 지식인을 가둬놓는 외양간을 뜻하는 ‘우붕’의 수감생활 등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때 그는 외양간에서 방대한 양의 인도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를 번역한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지 16년이 지나서야 최초로 그 누구도 쓸 엄두를 못낸 당시 이야기를 『우붕잡억』에 담아 펴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이데올로기와 집단적 광기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한편, 자신을 핍박한 이들에 대한 복수심을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지셴린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은 거의 공경 수준이라고 한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전설이 되어 있다고도 한다. 2003년부터 투병생활에 들어가 99세 생일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2009년 7월에 타계했다. 병상에서도 그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학문(공부)은 칠십쯤 되어야 절정에 이른다”라고 말하는 이 슈퍼 에너지의 노인 앞에서 일찍부터 호텔에서 퇴임논문집 잔치 한 차례 뻑적지근하게 치른 뒤 오로지 건강과 장수에만 죽어라 하고 전념하는 우리 사회의 조로학자들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 노인네의 연보를 보면, 벤츠나 아우디 정도나 ‘타주는 데’에 생을 바친 학자들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노년에는 생태위기를 가장 걱정해

“세상 일의 십중팔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일은 한두 가지밖에 없네”, 이 시는 남송시대의 방악의 시다. 지셴린은 그러면서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아서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지셴린은 시를 좋아한다. 소동파도 좋아하지만, 도연명의 시가 그의 좌우명이다.


선한 일을 하면 기쁘다 하나
누가 있어 그대를 알아줄까?
깊은 생각은 삶을 다치니
마땅이 운명에 맡겨야지
커다란 격랑 속에서도기뻐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게나
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
더는 걱정하지 마시게.

아흔이 넘도록 공부하고 글을 쓴 지셴린에게 이 시는 참 잘 어울린다. 그의 바람은 극히 소박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삼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 간단한 이치를 백 년 가량 열심히 살아온 한 노인이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세 가지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이고, 둘째는 인간관계이며, 셋째는 생각과 감정 사이의 갈등과 균형의 관계이다. 그런 지셴린이 나이 들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첫 번째 관계다. 이미 시작된 대자연의 분노와 보복에 대한 노인의 우려는 아주 깊다.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오존층 파괴, 종의 멸종, 인구의 폭발적 증가, 담수 자원의 고갈, 새로은 질병의 창궐 등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의 생존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인생』 (40쪽).

사실 지셴린이 펼치는 소박한 지혜는 잘 살아낸 다른 노인들한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살았기 때문에, 바로 보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생태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른 노인들보다 깊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나라에서 노인들이 생태위기에 대해 우려하는 소리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노인들은 이 나라를 풍요롭게 만드느라 뼈 빠지게 일했으므로 대접해 달라고 한다. 자신들이 흘린 피땀 때문에 너희들이 오늘날 넘치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으니 감사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도 쳐부숴야 할 ‘좌파집단’이 있다고 기염을 토한다. 최시중 같은 노인네는 “그저 여성들은 집(구석)에서 애나 낳아야 한다”는 소리도 한다.



“시간을 허비하면 죄 짓는 것 같다”

물론 지셴린에게서도 아쉬움은 느껴진다. 이 노인네는 인류의 장래를 염려하면서도 중국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에 대해선 둔감하다. 티베트 문제나 위그르 자치독립에 대한 언급이 도통 없다. 그들 소수민족 모두 ‘중화민국의 일원’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중국 최대의 지성이라 일컫는 한샤오궁韓少功과 다르지 않다.

“하루가 48시간이 아닌 것이 애석하다. 1분 1초도 긴장을 풀고 편히 지낼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비한 날엔 죄를 지은 것 같아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건 내게 만성 자살과도 같다”

이 말은 문혁기간 동안 외양간에서 번역한 『라마야나』후기에 쓴 글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죽음에 대해서도 그는 도연명의 충고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흔이 넘자 도서관에 매일같이 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고, 산더미같은 책을 다 펼쳐볼 시간이 없는 것을 슬퍼했지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가 위선적인 한 태도를 매우 닮고 싶어 했으니, 청나라 문인 정판교의 시에 나오는 ‘난득호도難得糊塗’가 그것이다. 난득호도는 곧, “똑똑해 보이기도 어렵지만, 어리석게 보이기도 어렵다. 똑똑한 이가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 어렵다”는 뜻이다. 똑똑한 이가 어리석게 보이려는 것 또한 위선이되, 그런 아름다운 위선을 그는 실천해낸 것이다. ‘인간 국보’, ‘국학 대사’, ‘중국 동방학의 대가’ 등의 칭호를 평생 거부한 지셴린이지만, 스스로를 ‘난득호도파’라 부르는 것만큼은 사양하지 않았다.

베이징대학 신입생의 가방을 붙잡고 땡볕에 서 있던 남루한 남색 중산복中山服 차림의 지셴린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넘치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를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인생』과 함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산문집 『병상잡기』도 일독을 권한다. 아흔 노인네가 남긴 글이지만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취해 얻을 게 있다. 이런 인생론은 사실 젊었을 때 접하는 게 더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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