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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12월
  • 2011.12.05
  • 1851

우리를 살리는 소중한 한 표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기본적인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직접선거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특히 투표가 민주주의 기본 원칙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직접·평등선거가 진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사회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민주정치 대명사로 불리는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기원이라고 하는 아테네에서도 선거는 어려운 과제였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00여 년경 아테네는 전체 24만 명 중 노예와 여자, 미성년을 뺀 성인 남자 3만5천 명만이 유권자였고 스파르타는 22만 명 중 성인 남자 1,500여 명만이 유권자였다. 그야말로 소수 남자들만의 직접민주주의였다고 볼수 있다.


  이로부터 2천여 년이 지난 후 민주주의가 가장 앞서 있다는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제도가 시작되고도 평등한 선거는 이루어지지 않아서 무려 백 년에 걸친 차티스트 운동을 통해 평등선거권을 획득했다.


  처음에 영국은 1689년 명예혁명 때 선거법을 만들었는데 선거구 기준은 성과 읍 중심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구의 이동이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상황이 크게 바뀐다. 1832년에 이르자 인구가 줄어든 지역은 50명이 한 의원을 뽑는 일까지 생겼다.


  산업혁명으로 인구지도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엔클로저 운동으로 농촌 인구가 크게 감소하자 이러한 50명짜리 선거구까지 생겨난 것이다. 반대로 인구 10만이 넘는 멘체스터와 버밍햄 등에서는 1명의 의원도 선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통이며 합법이라는 이유로 정치인들은 이런 우스운 선거를 진지하게 진행했다.


  1831년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며 집권한 휘그당도 마찬가지였다. 의원들 자신의 이익과 충돌하자 선거법 개정을 미적거렸다. 당연히 시민들은 분노했다. 교회의 종을 울리면서 항의하며 파업하고 시청을 불태우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 밀려서 의회는 선거법을 개정하게 되고 이러한 비상식적인 선거구들은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재산을 가진 자본가 계층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때 투표권을 쟁취하지 못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선거권 쟁취운동이 시작되는데 이것을 차티스트 운동이라고 한다. 이후에 차티스트 운동이 시작되어 1867년에는 도시 임금노동자들도 투표권을 가지는 등 투표권자가 25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 차티스트 운동에 영국 성인 남자의 반이 넘는 570만 명이 서명했으니 운동 규모를 짐작하고 남는다.


  여기에서고 제외되었던 여성들은 1928년이 되어서야 참정권을 획득했고, 1948년에는 복수투표제까지 폐지함으로써 마침내 선거법 개정을 완성했다. 여기에 복수투표제라는 것은 한사람이 여러 장의 투표권을 가진 것을 이야기한다. 재산과 권력을 중심으로 1인 1표의 원칙도 얼마 전에야 생긴 것이다. 


  300여 년에 걸친 영국의 선거법 개정은 시민과 노동자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직접 이해가 걸린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익을 포기하고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서 선거법을 올바르게 개정하는 선한 마음씨를 가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유권자의 책임성과 판단 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득권 세력의 방어 논리였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프랑스나 미국도 소수 부유한 자들을 중심으로 투표권이 인정되었고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된 것은 러시아혁명 이후였다.


  한국에 참정권이 도입된 때는 일제시대다. 일본은 3·1운동이 일어난 후 이른바 ‘문화정치’라는 개량화 정책을 편다. 교육이나 언론 등 지식층과 지주계층에 대한 회유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이 ‘지방자치제’ 실시였다. 병합 이래 참정권획득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해온 친일세력과 개량주의자들의 불평불만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1920년부터 지방제도를 대폭 개편하여 부(附)·도(道)·면(面)에 의회나 협의회 같은 의결기관과 자문기관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진정한 본질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배계급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지방세 5원을 납부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었기 때문에 유권자는 전체 조선인 중 1.17%(1920년)인 1만 여 명에 불과했다. 선거 결과 1931년 결과 부회(14개 부)는 일본인이 62%, 읍회는 일본인이 49%를 차지했다.


  당시 민족운동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참정권 문제였다. 1922년 에이레가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이양받고 1919년부터 인도의 스와라시(자치)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여기에 영향 받은 민족주의 일부 진영이 자치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이것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좌우파로 분열했고 서로 격렬하게 논쟁했다.


   당시 자치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참정권 도입이 일본의 영구 지배 음모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2차세계대전 중에는 조선의원 23명을 제국의회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내선 일체를 완성시켰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일제시대 내내 참정권 획득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건국 이후 참정권을 확립해나가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이제 다수의 선택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여전히 대중민주주의를 부정한다. 대중의 판단 능력을 문제 삼는 것인데 자신들은 대중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이 실로 어처구니없다. 이렇듯 평등한 참정권을 부정하려는 이데올로기는 계속 얼굴을 바꿔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직접민주주의로 인해 도움을 받는 다수 시민들에게도 적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현실을 깨달은 아쉬운 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정치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천없는 비판은 불평에 불과할 것이다. 열심히 욕만 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욕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별로 두렵지 않은 욕을 먹고 더 오래 살게 되는 역설이 성립되지는 않겠는가.


  이제 선거의 계절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평가와 FTA에 대한 평가는 이제 우리의 소중한 한표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 공동체인 국가의 흥망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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