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6월 2011-06-20   1403

경제, 알면 보인다-금융과 경제의 ‘내 탓이오’ 이데올로기를 벗자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경제적 실패에 대한 과도한 ‘내 탓이오’

상담에서 만난 김 모 씨는 택시 기사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주로 야간에 택시 영업을 하면서 어떻게든 생활비를 벌어 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소득은 200만 원을 넘기기 어렵다. 과거 사업 실패로 짊어지게 된 채무로 인해 매월 이자만 150만 원이 넘는다. 부채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부채의 종류가 악성대출이 많기 때문이다. 카드 대출과 중개인을 통한 사채(중개 수수료도 크게 부담했다)가 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시 사업을 재개할 수도 없고 정규직 취업도 불가능하다. 당분간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김 씨에게 현재의 부채는 원금 상환은커녕 이자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다. 상담을 통해 개인회생을 제안했다. 그러나 김 씨와 그의 부인은 개인 회생에 대해 부정적이다. 자신이 잘못해서 빚을 냈는데 빚을 탕감 받는 것이 옳지 않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고 상담을 받는 것조차 여러 날 고민해서 어렵게 결정했다고 한다. 현재 재정 상태에 대해 자신이 무능하고 잘못했다는 부끄러움을 갖고 있다.

‘내 탓이오’는 이데올로기다

저소득 계층을 상담하다 보면 김 씨와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과도한 빚을 타인에게 드러내야 하는 것에 큰 부담을 갖고 있다. 그 부담의 이유가 바로 ‘부끄러움’이다.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 구조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하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만든다. 부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이고 따라서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의식이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에 비해 빈곤층은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으로 패배자로 몰아붙인다. 이렇게 경제적 결과에 대해 과도한 자기 책임 의식은 의도했던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소득과 자산의 축적 정도에 따라, 소비 여력의 정도에 따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패배감을 갖고 살아간다. 패배감은 재무적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관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빚이 늘어나 한계 상황에 직면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패배감과 자기 책임 의식은 금융 앞에서 극에 달한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금융의 ‘내 탓이오’의식은 거의 이데올로기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일 드러나는 사안으로 볼 때 저축은행 사태는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온갖 부정부패와 부조리, 권력과의 결탁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부산 저축은행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다. 관리감독기관의 결탁 수준이 거의 사기 공모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저축은행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 뻔하다.

이번 사태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한 시민들 중 후순위 채권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후순위 채권은 저축은행이 파산에 이르면 원금 전체를 손해 볼 수 있다. 감독기관의 눈감아 주기 행태 속에서 영업행위의 부정부패와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음에도 채권 투자자들은 투자의 피해를 고스란히 다 떠안아야 한다. 이자 몇 푼 더 챙기겠다고 위험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신중한 투자를 하지 않은 투자자 개인의 ‘내 탓이오’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시스템 전반에 투자의 자기 책임 믿음은 우리나라가 유독 극단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환헤지 통화 옵션 상품인 키코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입은 중소기업들의 경우 불완전 판매에 대해 은행을 고소했다. 이와 관련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은행의 책임 문제에 대해 미국당국의 의견을 참고용으로 문의 했다고 한다. 미국의 답변 내용은 ‘만일 키코상품이 미국에서 판매 됐더라면 판매 은행들은 사기죄로 기소됐을 것’이었다. 은행의 키코 상품 판매를 사기죄로 인정하게 되면 중소기업들은 투자 피해 금액 전체를 보상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피해 보상까지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원은 투자자 책임으로 결론을 내렸고 그에 따라 나름대로 탄탄하던 중소기업마저 도산에 이르기도 했다. 게다가 여론 또한 환헤지 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투자 실패는 투자자의 몫이라는 관념이 법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 사람들에게도 상식처럼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투자 상품에 있어 불완전 판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내 탓이오’ 논리는 그간 금융회사들이 언론을 이용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학습시켜온 결과이다. 금융권 스스로 불완전 판매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사람들에게 ‘내 탓이오’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투자 상품의 불완전 판매로 인한 위험성은 키코에서 후순위채권 더 나아가 펀드와 회사채, 각종 대출 상품 등 개인들의 자산운용 내용 전반에 광범위하게 잠재되어 있다. 금융사에게만 철저히 유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투자 실패의 책임을 과도하게 지게 만드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금융소비자들은 자신이 저축은행 후순위 채권이나 키코 같은 상품의 피해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젠가 화살이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음을 자각하고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 금융사가 망하면 큰일이라는 학습된 의식을 버리고 금융사 이전에 금융소비자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은 길게 보면 금융사의 건전성에도 이바지한다. 소비자의 과도한 자기 책임의식이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당장 멀쩡해 보이는 자신의 금융 상품부터 살펴보자. 제대로 알고 가입한 것이 몇 개나 되는가? 내가 선택한 금융사는 과연 파산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알고 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금융의 ‘내 탓이오’이데올로기 앞에 잠재적 피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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