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6월 2011-06-20   1601

아주 특별한 만남-‘백인보’로 사람을 노래하는 느티나무 지킴이

 

‘백인보’로 사람을 노래하는 느티나무 지킴이

 

박현아 회원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객원기자

 

장미의 계절 6월이다. 사방에서 장미 아닌 꽃들도 때를 만난 듯 피어난다. 해당화, 꽃창포. 원추리, 비비추, 황금붓꽃…. 도심의 공원은 애기 같은 얼굴들로 울긋불긋하고, 산천은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중이다. 그 사이를 가르며 보라색 오동나무 꽃은 아련히 솟아오르고 등나무 넝쿨에는 보랏빛 등불이 밝혀진다. 층층나무, 쪽동백, 이팝나무, 아카시, 때죽나무, 같은 큰 나무들은 하얀 꽃을 피우며 긴 침묵으로 계절에 맞선다.

  계절을 예찬하고 환호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은 서늘하다. 한가하게 언제까지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읊조릴 수 있을까. 이웃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환경재앙에 속수무책인 정책과 ‘강 건너 불’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재앙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닌지. 우울한 초여름이다.

  연신 침울한 분위기에 갑자기 폭죽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신문의 만평이 촌철살인의 언어로 점입가경의 세태를 그려냈다. 삽 한 자루와 책 두 권(교인명부와 동문명부)을 들고 난코스로 하산하는 MB의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유머, 해학, 재치는 마음의 여유와 지성 없이는 생기는 않는다는 말을 실감나게 그려낸 한 컷이었다.  

  이런 유머를 지닌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주변이 갑자기 환하고 향기로워진다. 장미향일까, 이팝나무 향내일까, 아카시 향기일까? 싱그러운 사람들의 향내가 카페 통인에 가득했다. 

인터뷰어를 인터뷰하다

향기의 진원지는 박현아(38세)회원이었다. 카페통인으로 들어서니 그가 먼저 와있었다. 반갑게 손은 흔들었지만 그 앞에는 한사람이 앉아있었다. 그 역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은 인터뷰의 날인 셈이다. ‘인터뷰어를 인터뷰하다’라는 콘셉트가 절로 잡혔다. 그는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수강생들을 인터뷰하는 ‘백인보’의 작가이다. 지난 2월부터 월 2회 아카데미 느티나무 소식으로 글을 올리고 있는 다多작가이다. 그 사이트는 수강생들의 작고 소소한 일상과 여러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숨 가쁘게 전하고 있다. 물론 그는 아카데미의 수석자원활동가요,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직함만 화려하다고 멋쩍어 해서 덩달아 같이 웃었다.

  여태껏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긴장하고 설는데 이번에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병상련이랄까, 모처럼 지음知音(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만났다고 할까. 그럼에도 세대의 벽이 쉽게 허물어질까 하는 두려움도 일었다. 때문에 먼저 너스레를 떨면서 말문을 텄다. 내가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대 같은 딸을 두었다고. 서로 마주보고 깔깔 웃는 사이 벽은 스르르 무너졌고 우리는 단숨에 얼싸안는 사이로 가까워졌다.

  귀여운 헤어스타일과 시원스런 이목구비가 단정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몇 마다 말이 오가자 ‘백인보’ 속의 자유로운 문장이 바로 ‘말빨’로 이어졌다. 솔직하고 유쾌한 인터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백인보’를 쓰게 된 계기부터 물었다.

  “회원 가입을 하면서 자원활동을 원한다 했더니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활동을 권했어요. 수강생 출석 체크하고, 강의 자료, 간식 챙기고, 강좌에 필요한 여러 준비를 했으니 스태프가 된 셈이었죠. 철학 강좌를 처음 듣고 수강 후기를 사이트에 올렸던 게 계기가 되었어요. 그 후 주은경 선생님이 수강생을 인터뷰 하는 글을 써보라고 해서 시작한 게 ‘백인보’입니다.”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말하는 어투에는 바람 한 자락이 스쳐가는 듯 시원했다. 글을 읽고 쓰기보다는 영상과 이미지가 대세인 세상에 수강후기를 직접 올린다는 건 될성부른 수강생임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누가 이런 재능 있는 수강생을 찜하지 않으랴.

“요식행위를 거부합니다”

인터뷰를 앞두고 느티나무 사이트로 들어가서 ‘백인보’를 읽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고, 정형화된 인터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써나가는 필력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런 자유로움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어요. 한 번도 인터뷰 형식의 글을 쓴 적이 없으니 우선 남의 글들을 많이 읽어 보았어요. 그런데 하나같이 재미가 없더라고요. 인터뷰어Interviewer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를 바라보는데 인터뷰어는 빠지고 일종의 요식행위처럼 묻고 답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내가 느끼는 데로 쓰자 싶어 틀을 깨어버렸죠. 인터뷰를 떠나 유쾌하게 대화했어요.”

  그러기에 ‘백인보’를 읽다보면 항상 한 사람이 따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복선인가 전략인가, 싶었는데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작가란 일상을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회원 가입은 2009년이다. 의식으로 보나 열정으로 보나 늦은 감이 없지 않아 갸우뚱하자,

  “애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죠. 늘 마음은 애들이 조금 더 크면 시민단체에 나가 자원활동을 해야지 하면서 기다렸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때를 기다릴 일이 아니란 생각에 한 시민단체에 메일을 보내 그 단체의 활동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다고 했죠. 당연히 나는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답 메일이 왔죠. 자기네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보다는 다른 단체들을 추천했어요. 그 중 제가 택한 곳이 참여연대였죠. 낙선·낙천운동처럼 제가 원하는 일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어서 가입했죠.”

  전업주부로서 가사에만 몰입했을 리가 없는 사람이다. 일상에서 의식의 칼날을 벼리며 때를 기다렸지 싶다. 그러나 오지 않는 미래를 준비하느라고 현재의 삶을 비루하게 만들 수는 없으리라. 삶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이 아닌가. 분연히 털고 일어난 그의 용기와 치밀한 준비에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 행사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후문이 의아했다.

  “제가 간사들과 개인적으로 친하다보니 이러저러한 쓴소리를 많이 했죠. 그런데도 여전하더라고요. 새내기 회원일 때는 열심히 했어요. 한번은 행사 음식 준비를 위해 집에서 칼이며 도마, 재료까지 내 돈으로 사와서 적극 나섰죠. 주먹구구식 행사 진행에 화가 나서 좌충우돌도 많이 했지만 저는 제가 선택한 일을 쉽게 포기하지는 못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죠.”

  큰 웃음소리와 함께 말을 끝맺으며 머뭇머뭇 여운을 남겼다. 활자화되는 지면이 부담스러운지 말을 아끼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궁금증은 기어이 상대의 말문을 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송년회 때였어요. 내가 그 장소에 들어서자 한 간사가 반갑게 맞으며 나를 어느 구석 진 곳으로 데리고 갔어요. 혼자 나온 여자 회원 앞에 앉히고는 가더라고요. 아마 그를 상대하고 대접(?)하라는 의미였나 봐요. 물론 처음 나온 회원이 서먹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이지만 그걸 내가 왜 맡아야 하는지…. 그들은 그들끼리 모여 앉아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더라고요.”

  회상하는 순간이지만 얼굴은 금세 발갛게 달아올랐다.

  “제가 가장 염려한 건 그 사람이 시민단체에 처음 나왔다면 그런 분위기에서는 자발성을 갖고 참여하기가 참 어렵다는 거였어요. 첫 경험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 모두 알잖아요. 용기 내어 나온 사람이 시민단체에 등을 돌리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 가버릴까 봐 염려되는 일종의 사건이었어요. 오죽하면 참여연대에서 ‘참여’라는 말은 빼어야한다고 항의를 했겠어요?”

  이렇게 뼈아픈 소리를 내부에 무수히 했지만 관철되기보다는 ‘그러다 안 나오겠지’로 여겼으니, 장미를 가시만 보고 향기는 없는 꽃인 줄 알았던가. 이제는 날카로운 가시보다는 장미향 그윽이 풍기는 느티나무의 수석 지원활동가가 된 것을.

“왜 세시봉만? 힙합 강좌도 있어야죠”

이야기는 참여연대의 애정 어린 비판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외부에서 권력화된 시민단체라고 말하죠. 회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 보다는 비정례화된 시위위주의 조직, 전문가만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하고, 회원 자체는 움직여지지 않는 단체, 싱크탱크 역할만 하는 단체…. 너무 심하게 말했나?”

  쓰는 기술보다는 줄이는 기술이 필요한 인터뷰요, 이렇게 강렬한 인터뷰어를 만나긴 처음이다. 폭탄선언을 듣고 있자니 연신 진땀이 났다.

  “이런 소리를 하고 나면 내 스스로도 많이 상처를 받아요. 그런데도 안 고쳐지니 태생적으로 안티 유전자인가 봐요. 비폭력 대화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느티나무 수강생들을 많이 만나니, 그들과 일반 회원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요점 정리를 청하자,

  “참여연대 회원이라면 단박에 강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수강생들 대부분은 내적으로는 강함을 지녔지만 부드럽고 자유로움을 찾는 이들이에요. 강좌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참으로 다양하죠. 에로스, 신화, 심리학, 대중가요, 아시아의 민주주의, 꿈작업, 여성의 몸·여성의 지혜, 남자·40대, 나대로 사는 법, 우쿨렐레… 정말 좋은 강의가 많아요. 개강 공고와 함께 마감되는 강좌도 있고, 강의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긴 많은데…”

  에피소드는 ‘백인보’와 같은 다른 기회를 통해 들을 수 있길 기대하며, 마무리 질문으로 아카데미 강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길 원하는지 물었다.

  “진보 인문학 강좌이잖아요. 인문학이란 결국 자신에 대한 생각을 넓고 깊게 하여 내가 사회 안에 있고 모든 관계의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하는 학문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스스로 점화되어 빛을 발해야 하지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 장작으로 군불 때듯 은근히 데워가면서 계속되길 바랄 뿐이죠. 희망하는 강좌? 왜 ‘세시봉’만 들어야 해요? 힙합 강좌도 있어야죠.”

  역시 새로운 감각의 인문학을 열고 나갈 채비이다. 콧노래와 함께 어깨가 들썩했다. 유쾌한 모드로 기습 질문을 던졌다. 어떤 세상을 원하느냐고? 총알 답변이 나왔다.

  “단시일 내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 되는 세상!”

  허황한 민생이 아닌 실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답변이다.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리라.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계절에 풍요로운 세상까지 온다면 오죽 우리는 행복할까.

   뉘 가슴에 맺혔던 피망울인지 모를 장미꽃 향기가 은은히 통인으로 스며들어 오는 오후, 장미를 닮은 사람은 가시마저 부드럽게 하는 마술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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