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6월 2011-06-20   1476

참여사회가 눈여겨 본 일-‘국가테러’로 치닫는 테러와의 전쟁

‘국가테러’로 치닫는 테러와의 전쟁

양영미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장

 

5, 60년대 냉전의 시기를 지나 국제적으로 데탕트가 확산되고 90년대 초에 이르러 동구 및 소련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전쟁은 지구상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역사의 종말’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분쟁은 한반도를 위시해 곳곳에서 확산되어가고 있었고 2001년 9월 11일은 국제사회 안보개념의 전환점이 되었다. 프랑스혁명 시기에 등장한 ‘테러리즘’은 냉전시대의 ‘반공’을 대체하는 새로운 안보의 위협으로 국제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키워드가 되었다. 더 이상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테러집단이라는 비국가적 행위자에 대한 전 지구적 전쟁이며 분쟁지역이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의 국내화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전세계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벌어진 비행기의 충돌과 이어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을 생생한 보도를 통해 접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알카에다에 의한 미국의 심장부 테러공격이라는 충격적인 보도와 수많은 희생에 놀란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2001년 10월 26일 애국법Patriot Act:Uniting and Strengthening America by Providing Appropriate Tools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을 제정하며 동시에 국제사회가 미국의 심장부를 공격한 테러집단을 응징할 수 있도록 대 테러전쟁에 공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며 자국 내의 테러행위라 믿어지는 활동뿐만 아니라 테러집단을 이롭게 한다고 여겨지는 자금의 흐름을 차단하는 등의 테러행위 억지를 위한 제반 조치들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2011년 5월 국제사회는 다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테러극의 배후이며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소식이 그것이다. 테러집단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은 지구상의 테러의 종식을 가져오게 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알카에다는 미국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한다. 방위태세를 갖추지 않은 상태의 빈라덴에 대한 사살작전에 대해 핵무기 동원을 운위하는 처절한 응징과 복수를 선포하게 된 것이다.

테러 개념 규정조차 없이 ‘테러와의 전쟁’

테러란 과연 무엇인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아직 테러의 개념은 무엇이고 테러집단은 누구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비행기 하이재킹이나 납치, 핵무기에 의한 살상, 폭탄을 사용한 살상행위 등에 대해 테러행위라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국제협약이 이미 제정되어 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반테러법의 제정에 대해 명분으로 삼고 있는 UN의 테러관련 법령제정 권고는 왜곡되어 차용된다. 유엔 안보리는 9·11 이후 결의안 제 1373호를 통하여 반테러협정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the Financing of Terrorism 등에 각국 정부가 조속히 가입하고, 테러자금의 차단 등을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하도록 했지만, 이 과정에서 인권과 시민의 자유권을 대폭 제한하는 ‘반테러법’ 체계를 구축하라고 권고한 적이 없다. 또 유엔은 2002년 11월, 제57차 유엔총회에서 대테러조치로 인해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의한 바 있다. 따라서 반테러법의 제정은 당연하거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테러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의가 확정되지 않고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제외한 다른 집단에 대한 테러집단 규명 논쟁 중에도 테러와의 전쟁은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이에 의한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침해가 보고되고 있다. 네팔의 경우 이미 1996년부터 네팔공산당인 마오이스트들과 내전을 치르고 있었으나 9·11 이후 10월 갸넨드라 국왕이 마오이스트를 테러집단이라 뒤늦게 선포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관타나모 수용소는 각 지역에서 죄도 없이 영문도 모른채 끌려온 무슬림들에 대한 잔혹한 행위이고 대테러조치 중 오용의 대표적 사례로 보고되었고 폐지되기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국경을 넘는 수많은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은 피부색과 출신국 때문에 차별과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또한 각 개별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정부의 호소에 따라 국제사회가 2001년 이후 취한 사법적 조치는 광범위했으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반테러법이나 혹은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거나 기존의 보안법이 강화되며 인권상황의 후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80년대부터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Globalisation에 따라 강화되고 있는 경제적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경쟁의 강화, 무한 이익의 추구, 환경생태의 파괴들이 가속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데 이용되었다. 즉 각 국 정부는 자국민들의 빈곤과 고용과 실업문제, 환경파괴 등 사회문제의 저항에 대해 대테러 전쟁을 핑계로 침묵시키고 길들이는데 이용하게 된 것이다.

‘안보지상주의’ 대 ‘시민적 자유’의 전장

참여연대는 광주 5·18기념재단과 함께 아시아 각국의 회원단체를 가진 아시아 민주화운동연대SDMA : Solidarity for Democratisation Movement in Asia의 공동사업으로 방콕소재 지역인권 네트워크인 포럼아시아와 더불어 <테러와의 전쟁과 아시아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지난 5월 17일 국제워크샵을 열었다. 이 워크숍의 취지는 전술한 바대로 아시아의 각국에서 9·11 이후 대테러전의 명분아래 어떤 인권침해가 일어났는지 밝혀보자는 것이며 이후 각국의 사례를 모아 포괄적인 보고서를 공동으로 제작해 국제인권기구와 각국 정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반테러법과 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차별 인명을 살상하는 테러행위는 당연히 반대하고 이의 근절에 목소리를 모아야하겠지만 만일 테러집단이나 테러리스트에 대한 제제조치로 인해 테러와 무관한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워크숍에서 보고된 각국의 사례는 예상대로 ‘진짜’ 테러집단보다는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집단이나 자결권을 요구하는 소수민족의 저항이 탄압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잘못된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저항을 막는데 쓰인 사례들이 각국에서 보고되었다.

  기조 발제자였던 방글라데시의 파하드 마즈하르Farhad Mazrhar는 반테러법과 정책들이 △표현과 사상, 이동,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법의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자유권을 수호하는 인권활동가나 노조활동가 혹은 정치적 반대자 등과 같이 법을 준수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적용하고 있으며, △무죄로 추정 받을 권리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국제인권기준을 훼손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2차 대전이후 유엔을 설립하고 냉전을 거치며 국제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인권과 민주주의가 가진 원칙들을 훼손하고 보편적 인권인 기본권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기조 발제자인 인도네시아 인권변호사 풍키 인다르티Poengky Indarti는 테러와의 전쟁이 아시아국가에 미치는 일반적 영향으로 △안보적 접근이 증가하고 있고 △ 법규제가 가혹해지고 있으며, △대테러전쟁관련 예산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이로 인한 부패와 갈등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또 △테러집단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서 공적 및 사적 폭력이 합법화되고 있으며, △시민사회의 인권옹호활동이 탄압을 받고 있고, △결국 이런 것들이 안보지상주의 대 시민적 자유라는 대치선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보안법 능가하는 무소불위 법 예고

실제로 일반 형법에서 이미 처벌 가능한 몇 개 유형의 범죄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강화된 법으로서 반테러법은 각국에서 아래와 같은 인권침해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태국과 파키스탄의 예방구금(재판 없이 피의자를 구금하는 것 -한국의 보안관찰법과 같이 단지 범죄의 가능성만으로 구금하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시행 중인 통제명령,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영장 없는 수색, 신속하고 장기간 구금과 같이 정상적인 형사절차를 무시하고 있는 조항들이 이에 해당된다. 남아시아 지역의 법에서 논쟁중인 것은 첩보정보가 사전 증거로 사용될 수 있도록 허용되어 범법자가 아닌 용의자를 체포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심지어 테러단체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형을 선고할 수 있어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용의자를 장기간 기소 없이 변호사 접견이 차단된 상태에서 구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종교적 불관용과 반다원주의의 증가로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보통의 이슬람집단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1962년 이래 지금까지 장기간 군사정권의 폭압아래 놓여있는 버마의 경우 테러방지법의 제정이 없이도 정부에 대항하는 반군이 곧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어 억압적 조치를 정당화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테러와의 전쟁이 국가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버마에서는 특히 카렌족과 샨 족 등 소수민족의 저항을 억압하는데 악용되고 있으며 사소한 범죄에 가혹한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2011년 2월 스물두 살의 블로거 까옹 맛 흘라잉은 정치수감자 석방을 위한 포스터 캠페인을 벌였다는 이유로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같은 시기 버마민주화의 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기자 마웅마웅 제야는 전자거래법 불법단체 조합법에 의해 13년 형을 선고 받았다.

  한국의 경우 2001년 11월 국정원에 의해 정부입법안으로 최초로 테러방지법안이 상정된 후 10년 째 아직 입법은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정부와 국회,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간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테러방지법(안)은 국정원장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는 대테러센터의 실질적 수장으로 전 국민에 대한 통신감시와 정보업무를 도맡아 무소불위의 비밀기관으로 될 것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을 능가하는 법의 남용을 예고하는 것 때문에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정보수집과 접근의 권한을 가진 국정원이 테러위협에 대해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자명하며 이 정보를 바탕으로 비상상황이 선포되나 국회의 동의 없이 군대의 동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들로 법안은 시민사회단체 뿐만 아니라 경찰과 같은 일반 치안조직의 완강한 반대에도 부딪혔었다. 국제공조의 일환으로 테러자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입법은 한국 내 이슬람계 이주노동자의 원활한 자국 송금에 장벽이 되고 있다.

“높은 사회적 비용만 치르게 될 것”

테러집단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분으로 2001년 9·11직후 미국과 영국 등의 연합군에 의해 침공을 당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테러와의 전쟁이 아프간 국민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탈레반 세력은 광범위하게 지역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지속되는 전쟁으로 전후 복구나 국가 재건은 질질 끌고 있어 2004년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에 의한 통제력은 아직 약해 정국의 안정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런 불안한 사회분위기 때문에 아프간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다. 아프간의 시민사회단체에서 온 파잘 가니 카카르Fazal Ghani Kakar는 무엇보다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인 아프간에서 이슬람에 대한 문화의 몰이해와 지원이 없을 뿐 아니라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슬람 집단이 배제되어 종교 내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것은 나아가 이슬람 국가의 이해관계에 대해 서방세계가 이중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으로 종교에 대한 무시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등 지역 내 테러리즘의 토대를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말한다.

  전세계 적으로 멈추지 않는 ‘테러’는 대테러 전쟁을 선도하는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이를 지지하고 추종했던 각국 정부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9·11 이래 지속적으로 테러와의 전쟁Countering Terrorism관련 결의안을 내오고 있으며 2005년에는 타스크포스팀 Counter-Terrorism Implementation Task Force을 설치해 유엔 기구내의 대테러 정책의 통합성과 전략논의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개별국가의 테러방지관련 법제와 정책이 국제적 인권기준을 무시한 채 각국의 사정에 따라 정부반대세력들이나 저항세력들의 탄압에 오남용 되는 사례는 비단 아시아 지역만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는 아래와 같은 제안을 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는 조치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며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개별국가의 관련 정책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테러의 전쟁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원인을 찾아 사회를 개혁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며, 국제적 협력을 통해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법제의 오남용을 통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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