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6월 2011-06-20   1437

참여사회가 눈여겨 본 일-‘이게 다 XX 때문이다’ 숨겨진 ‘때문’을 찾아라

 

‘이게 다 XX 때문이다’ 숨겨진 ‘때문’을 찾아라

 

박준희·한산하 『참여사회』 편집팀 자원활동 기자

 

피곤이 간 때문이라고?

‘상사의 잔소리, 긴 출퇴근 시간, 상사의 잔소리, 반복되는 야근’이란 글씨가 한 직장인 주변에 떠다닌다. 기지개를 펴는 그의 앞에 차두리가 나타나고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곤은 간 때문이야 피곤한 간 때문이야~’란 노래를 부른다. 간을 풀어줘야 피곤이 풀린다는 이 제약회사 광고는 한마디로 ‘떴다’. 따라하기 쉬운 노래 멜로디, ‘인간 로봇’으로 불리는 축구스타 차두리. 그리고 ‘간 때문이야’라는 광고 문구가 이 광고의 인기 요인이다.

  ‘~ 때문이다’라는 말은 예전부터 유행했다. 이 말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게 다 북한 때문이다’등 주어만 바꿔져서 인터넷은 물론 실생활에서도 쓰인다.(표 참고) 이처럼 사람들은 ‘~ 때문이다’라는 말을 참 많이, 또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왜 이렇게 많이 쓰고 있는 걸까?

네 탓하는 사회

‘때문’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이다. 사전적 의미대로 이 말은 사건의 원인이 정말 그것 때문일 때 쓰인다. 문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그 원인이라는 게 항상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확실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누구의 탓을 할 때도 많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잘못이나 실수를 하게 되면 자기 탓보다는 남 탓을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일의 원인을 찾을 때 그것을 과도하게 타자에게서 찾는 데 있다. ‘네타니즘(네 탓+ism)이라는 신조어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과도하게 남 탓을 하는 것을 과도귀인(over-attribution)1)이라고 하는데 ‘이게 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다’의 경우 이러한 과도귀인이 일상화 됐다고 볼 수 있다. 과도귀인을 하는 이유를 좬불안증폭 사회좭의 저자인 심리학자 김태형 씨는 “자기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려는 심리가 기본이다. 또 희생양을 찾아내 자신의 분노감정을 쏟아 부으려는 심리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주 싫어하는 대상에 대한 공격 심리를 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게 다 ~때문이다’라는 유행어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풍자하는 의도로도 쓰인다.

  과도하게 남 탓을 하는 원인으로는 ‘공동체 해체’를 들 수 있다. 김태형 씨는 “개인주의가 심해지면 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에 나쁜 일의 원인이 자신일 경우에 그 타격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남 탓을 한다. 또한 경쟁이 심해지면 정신건강도 악화되기 때문에 남 탓 하는 경향은 강해진다.”라고 말했다. 사실과 다르게 남 탓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이고 남 탓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때문이다’의 함정

개인만 남 탓을 하지 않는다. 언론과 국가도 남 탓을 한다. 책임 회피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다른 목적으로 진실을 가리거나 정치적 목적의 의도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대다수 사람들이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고 그들이 말하는 것에 세뇌 되어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이 높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책임 전가와 왜곡된 사실을 전파할 경우 정부 정책의 신뢰는 떨어지고 사회적 갈등이 발생한다. 구제역 파동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제역 확산 책임을 축산 농가에 돌리는 발언을 했다가 바로 다음날 사과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축산농가와 국민의 실망은 없어지지 않았다.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반공이데올로기는 사회의 이목을 북으로 집중시켰다. 이는 분단국가에서 실제로 북에 대한 공포와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생겨난 이념이기도 했지만,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로 등장할 때 발표한 ‘혁명공약’의 첫 째는 반공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정적들을 제거 할 수 있던 이유도 반공이었다. 북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그의 독재의 힘을 실어줬다. 북에서도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가 정권유지에 중요한 명분이 됐다. 냉전시대 남과 북은 서로의 적이자 동료였다. 현재까지도 ‘북’은 정부에 유용한 ‘때문이다’의 대상이다. 그 예로 최근 농협 전산망 장애 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지난 4월 3일 수사 결과 발표에서 “7·7, 3·4 디도스 공격을 한 집단과 동일한 집단이 장기간 치밀하게 준비해 실행한 것으로 북한 정찰총국이 관여된 초유의 사이버테러”라고 규정 발표했다. 조중동 등 대부분의 일간지가 이를 비중있게 다뤘다. 또한 북한이 농협 직원을 포섭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그 근거는 확실하지 않고 아직까지 이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이버 테러로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봤는데 범인은 없으니 북한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과 ‘인터넷주소 추적만으로 해커의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보안업체 전문가들의 말에 더 신빙성이 느껴진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어떨까?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2002년에는 테러 지원국들을 ‘악의 축’으로 정의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가가 말하는 ‘테러’와 ‘악’은 누구인가. 사실 ‘테러’의 정의는 모호하다. 입장에 따라 테러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5월 2일 파키스탄에 특수부대를 보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그의 죽음 이후 파키스탄에서는 추모 열기와 반미 열풍이 불었다. 빈 라덴은 죽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피의 보복은 계속 되풀이 될 것이다. 설령 국가안보라는 명목이 진짜일지라도, 그 명목 아래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또한 빈 라덴 때문이라면 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빈 라덴의 죽음으로 세상은 더 안전하고 나은 곳이 됐다”라고 강조하면서 테러 경계 수준을 강화했다.

요지경 세상 속, 웃음을 주는 말

‘때문이다’라는 말이 항상 부정적인 뜻으로만 쓰이진 않는다. 이 말은 우리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 때, 이 모든 게 ‘무엇’이라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다. ‘내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세상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이런 답답한 경우에는 넋두리처럼 “이게 다 간 때문이다!”라고 외쳐보자. 물론 그 이유가 정답이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어쩐지 속이 풀리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쁜 일의 원인이 나 자신일 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을 때도 한숨을 돌리게 해준다. 이러한 경우는 물론 부정적 의도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때문’은 ‘덕분’의 뜻으로 쓰일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열정 때문에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기도 한다. 부모는 속 썩이는 자식에게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식을 위해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독재 정권하에서 자신의 목숨을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의 ‘때문’이 되어 산다는 것은 힘든 삶 속의 희망이다.

정확한 원인 발견과 반성 필요

‘때문’의 긍정적인 역할로 바른 원인을 찾아 그것을 고치려는 삶의 반성으로 이끌어 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노력은 자신을 돌아보는 출발점에 서는 일이고, 그러한 성찰은 발전의 디딤돌이 된다. 그렇지만 남 탓 하지 않고 무조건 내 탓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내 탓을 하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다. 남 탓 하는 사람은 지탄받기 쉽지만 내 탓을 하는 사람은 겸손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내 탓을 할 때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골치 아프거나 남 탓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문제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과도한 자책은 개인을 병들게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 사회는 개선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딱 한가지로 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 문제는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고 그 시각에 따라 다양한 원인이 나온다. 우리가 ‘이게 다 ~때문이다’라는 말을 경계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한 가지일 수가 없다. 특히 언론과 인터넷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의 이유로만 몰아가는 분위기는 위험하다. 이런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중요한 원인과 진실이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곤은 간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과 학교, 가정에서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곤한 이유가 모두 간 때문은 아니다.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물가가 올라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야 해서, 남들보다 뒤쳐져서는 안 되는 사회 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간 때문이야’라는 말이 이렇게 화제가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유모를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지금처럼 피로한 사회가 더 이상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뒷걸음치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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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한 2005년 이후로 유행했고, 현재도 쓰이고 있다. 정치문제를 벗어나 모든 사회문제를 노무현 탓으로 돌리는 뜻이다. 또한 모든 것을 노무현 탓으로 돌리는 언론을 풍자한 뜻도 있다. 이 주제에 관한 논문과 단편소설도 나왔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소통의 부재,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 계속 바뀌는 정책들 속에서 서민과 공정한 사회를 내세울수록 실제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게 만드는 실정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는 지금도 그렇지만, 후손 대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게 다 북한 때문이다”
정부는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피격 사건에 이어 일어난 2011년 3월 디도스 공격, 농협 전산망 피해를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유행한 말. 작가 이외수는 ‘4대강 사고, 북한 소행이 아니기를’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려 최근 사회 분위기에 일침을 가했다.

“이게 다 박성호 때문이다”
2008년 <개그콘서트>의 코너 ‘리플중계석’에서 나온 유행어. 이 코너는 인터넷 댓글들의 특징을 잡아낸 코너였는데, 모든 것이 개그맨 박성호 때문이라는 말은 맥락 없이 아무데나 쓰였다.

“이게 다 유희열 때문이다”
‘당신이 솔로인 이유, 이게 다 유희열 때문이다’ 유희열은 그룹 ‘토이’와 <라디오 천국> DJ로 여성들의 큰 인기를 얻었다.
유희열의 색다른 매력에 빠져 ‘보통’남자들은 눈에 차지 않아 솔로가 됐다는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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