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3월 2011-03-01   1390

김재명의 평화이야기-중동에도 민주화의 봄은 오는가

Anti Gaddafi Protest Are Al Qaeda- scape14897

 

중동에도 민주화의 봄은 오는가

 

김재명 <프레시안>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2011년 들어 중동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튀니지에서 이집트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에 속한 예멘과 바레인, 그리고 이란으로까지 불던 민주화 시위 바람은 마침내 리비아의 42년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기세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중동 전문가들이 감히 내다보지 못하던 중동 민주화의 봄이 다가오는 중이다.

‘무늬만 민주주의’인 독재국가들

우리가 흔히 ‘중동’(Middle East)이라 부르는 지역을 현지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부른다. ‘중동’이라는 이름은 19세기의 세계 초강대국인 대영제국의 잣대로 붙여진 것이다. 한반도를 ‘극동’(Far East) 지역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도 강대국 중심의 시각이 배어있는 셈이다. 중동 지역의 범위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동서로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부터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이란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 수단에서부터 이집트를 거쳐 터키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지역에 속하는 국가는 모두 23개국에 거의 4억 인구를 아우른다.

  교과서적인 서구 민주주의의 잣대로 중동 정치 상황을 잰다면, 대부분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중동의 깡패국가’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스라엘은 어떨까? 미국의 중동 정책에 입김을 불어넣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은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라고 강조한다. 외형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분명히 내각책임제 민주국가다. 선거 때면 수십 개의 군소정당이 저마다 후보명단을 내걸고 득표율에 따라 뽑힌 비례대표 후보들로 국회크네세트를 구성한다. 정당끼리 이합집산을 거듭하지만, 정치과정 자체는 서구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한 국가가 참으로 민주국가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잣대는 국내 정치 제도만으로 판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나라가 이웃 국가들과 민주적 호혜평등의 국제관계를 갖느냐, 아니면 신식민주의적 패권정책을 펴나가는가를 살펴야 한다. 오늘의 중동 사람들 눈에 비친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뒤로 팔레스타인과 골란고원을 점령해 식민지로 삼고, 걸핏하면 이웃나라 레바논을 침공해온 군국주의 파시스트 국가다.

  물론 중동 국가들이 비민주적인 측면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꾸란이슬람 경전에 대한 존중심이 말해주듯, 이슬람 종교의 비중이 워낙 커서 정치와 법체계가 종교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측면과 뿌리 깊은 부족주의도 교과서적인 민주주의를 시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늬만 민주주의’인 독재국가들이다. 그런 중동 국가 명단(집권자 이름, 지금까지의 통치기간)로 정리해보자면, 올해 시민혁명을 겪은 이집트(호스니 무바라크, 30년)와 튀니지(자인 벤알리, 21년), 전폭기까지 동원해 학살 바람을 일으킨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 42년), 그리고 예멘(알리 압둘라 살레, 32년), 알제리(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12년), 시리아(바샤르 알 아사드, 11년) 등이다. 시리아는 ‘아랍의 비스마르크’라는 별명을 지닌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의 아버지)가 1963년부터 37년 동안 철권을 휘두른 뒤 죽으면서 아들에게 권좌를 넘겼으니, 2대에 걸쳐 48년 독재를 펼치는 중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중동 왕국들은 어떠할까.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오만, 모로코 등은 왕이 죽어야 권력자가 바뀐다. 입헌군주국인 쿠웨이트와 요르단을 빼고는 의회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답답한 나라들이다. 이즈음 관심거리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로 어수선한 바레인 왕국이다. 하마드 알 칼리파 국왕이 12년째 다스리는 바레인은 석유수입 덕에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지만,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바레인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떠올린다. 바레인 왕정이 무너진다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왕정국가들도 더 이상 민주화 외침을 못 들은 체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중동 민주화 도미노domino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도미노? 어디서 많이 들었던 용어다. 생각해보니, 지난날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와 그의 측근참모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내뱉던 말이 아니었던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면, 그 옆의 반미국가인 시리아나 이란도 민주화로의 체제변혁regime change이 이뤄진다는 그럴듯한 논리였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부시의 중동민주화론이 겨눈 창끝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미독재국가들은 아니었다. 미국의 시각에선 ‘독재냐 민주냐’ 보다는 중동 석유 이권에 관련한 ‘친미냐 반미냐’가 더 중요하다. 부시나 그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나 여기서는 차이가 없다.

  끝으로 생각해볼 대목. 중동 지역의 민주화 불길을 보는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은 간단치 않다. 민주화는 누가 뭐래도 환영할만한 변화이지만, 중동의 불길이 석유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져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한국의 경우만 해도 중동 석유의존도가 85% 안팎이다. 두바이 유가는 1배럴 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민주화도 이루고 유가도 안정될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독재정권이 버티면서 민주화 시위에 나선 사람들만 희생시키고, 그런 혼란 속에 석유 메이저와 국제투기자본이 농간을 부려 유가는 유가대로 치솟는다면? 그것은 악몽의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최근 중동 상황을 한국의 민주시민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는 지난날 군사정권 아래서 억압통치의 사슬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유엔인권위 보고서도 지적했듯이 MB정권 들어와 자유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중동 불안정으로 비롯된 유가상승으로 일시적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중동 사람들의 민주화 투쟁에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독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이 민주시민의 올바른 태도”라고 말한다면…. 세상물정 모르는 한가한 얘기라고 손가락질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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