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0월 2011-10-05   2892

나라 살림 흥망사-전염병과 아메리카의 비극

 

전염병과 아메리카의 비극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전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리고 전쟁 중에 사람이 죽는 것은 대부분 전투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생각과는 달리 전쟁 중에는 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염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나폴레옹이다. 대륙을 정벌하고 마지막 남은 영국만이 바다건너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서 영국과의 무역을 봉쇄하는 대륙 봉쇄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에 대해 러시아가 협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러시아를 정복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미 점령상태에 있던 전 유럽에서 대군을 소집했다.

  러시아는 공포에 휩싸였다.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고, 세계 정복을 꿈꾸는 나폴레옹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전투를 회피하고, 모든 물자를 봉쇄하고 물자를 불태우면서 후퇴하는 초야작전을 폈다. 하지만 정작 나폴레옹을 괴롭힌 것은 보급문제도 아니고 러시아군의 공격도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군대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즉 병균이었다. 제대로 된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발진티푸스에 50만 병력 대부분을 잃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미 9만으로 줄었고, 돌아왔을 때는 3만 5천에 불과했다. 그래서 러시아 군에 패한 것이 아니라 ‘발진티푸스 장군’에게 패배했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당시 나폴레옹의 군대는 매일 5천 명 이상이 죽거나 쓰러져 갔다.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도 “사회주의가 ‘이’를 물리치거나 ‘이’가 사회주의를 좌절시키거나 둘 중의 하나다”라고 선언해야 했다. 혁명 당시 러시아는 2천만 명이 발진티푸스로 죽어갔다. 그리고 발진티푸스는 ‘이’를 통해 감염되었다. 그들은 반혁명세력이나 외국군과의 싸움보다는 이 ‘이’와 싸워야 했다. 그래서 레닌이 ‘이’와의 싸움을 선언한 것이다.

 

유럽이 아메리카에 준 축복은 복음이 아니라 ‘전염병’

전염병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메리카 대륙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아메리카에는 구대륙에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했던 곳이고, 현재의 아이티와 자메이카가 있는 히스파니올라 섬에만 500만 명이 넘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100만 명 정도의 인디언이 거주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비어 있는 대륙을 정복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기위한 왜곡이다. 사실 아메리카에는 이미 2천만 명이 넘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러면 그 많은 아메리카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어느 곳에도 거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후 200년 안에 아메리카인 95%가 사망했다.

  그런데 그들은 전쟁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전해온 천연두를 비롯한 수십 가지의 전염병으로 유럽의 군대가 쳐들어오기 전에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유럽이 아메리카에 준 축복은 복음이 아니라 ‘전염병’이었다.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전염병은 사실상 없다. 유일한 사례라고 하는 매독도 증거가 없다. 우연히 시기가 일치했을 뿐이다. 이 주장도 흑사병처럼 인종적 편견과 두려움이 작용해서 만들어진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전염병은 인류가 농경사회를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가축을 기르면서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듯이 동물도 사회적 동물들이 전염병 확산에 기여했다. 그리고 병원균은 동물과 인간을 넘나들면서 진화해 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광우병이나 브루셀라, 탄저병 등 인수공통전염병(사람과 동물이 같이 걸리는 전염병)을 지정해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아메리카에는 가축이 단 5종에 불과했다. 칠면조, 라마, 기니피그, 사향물오리, 개가 전부였다. 더군다나 그 양도 많지 않고, 사람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래서 전염병이 사실상 하나도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왔던 보답을 받은 것이다.

 

인류에게 주는 아메리카의 경고

하지만 유럽인의 출현은 그들에게 멸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들의 선물인 세균은 아메리카인을 순식간에 멸망시킨 것이다. 전염병이 없었던 관계로 면역력마저 없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코르테즈가 600명으로 2천만의 아즈텍제국을 멸망시키고 피사로가 168명으로 수천만의 잉카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숨어 있는 이유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분열로 정복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측면도 있지만 주된 원인은 전염병이었다.

  평화롭게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염병 때문에 2백 여 년이 지나지 않아 소수민족으로 전락했고 원주민이 줄어든 상태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1500만여 명의 흑인노예들을 대서양 너머에서 끌고 온 것이다. 문제는 흑인노예들 역시 새로운 전염병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약탈이 물건을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최근 사스와 광우병에 이어 조류독감 등 다양한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다. 과학기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오만일수 있고, 영원한 숙제다.

  지금은 교통의 발달로, 어떤 일이든 순식간에 전 세계에 영향을 준다. 더구나 유전자 조작까지 하는 현실 때문에 위험 요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육식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언제든지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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