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3월 2011-03-01   1303

참여연대는 지금-‘안보’관광명소에서 평화적으로 상상하기

‘안보’관광명소에서
평화적으로 상상하기

김성민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작년 화제작이었던 <인셉션>은 꿈에 대한 영화다. 수많은 꿈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서로의 꿈을 조작하는데 그 꿈들은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이처럼 상상은 구체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평화적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경험해 보지 못한, 마치 우리에게는 꿈같은 ‘평화’라는 추상적 개념을 상상할 때에는 구체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 곁에 분쟁지역이 있음을 보고 느끼는 것, 그곳의 역사를 배우며 넓은 관점을 가져 보는 것, 그 장소들에서 구체적인 평화의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 이것들이 모두 평화를 상상하는 재료들이 되지 않을까. 나는 평화를 상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2월 19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주최한 ‘이시우와 함께 떠나는 김포·강화 민통선 평화기행’을 떠났다.

  평화기행은 분단의 현실을 느낄 수 있는 김포와 강화의 민통선 안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어떻게 안보를 관광할까. 평화기행의 첫 목적지였던 애기봉 전망대 앞 검문소에서 받은 안내 팸플릿을 보고 든 의문이다. 보통의 관광지에 쓰여 있는 ‘천년고도’라든가 ‘수려한 자연경관’같은 수식어 대신 ‘안보관광명소’라는 호칭이 눈에 들어왔다. 안보를 관광하는 이곳에서 어떻게 평화를 관광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전망대로 오르는 짧은 산책로를 걸었다.

  작년 말 뜨거웠던 논쟁의 현장인 애기봉 등탑은 시시한 철골 탑이었다. 대단한 전투의 흔적도 없었고 거창한 상징물이나 사소한 장식조차 없었다. 이곳에는 역사 문화적 요소나 수려한 자연경관 대신 앙상한 철탑을 통과하는 휑한 바람과 그에 투영된 사람들의 증오와 분노만 있을 뿐이었다. 이시우 작가가 인용했듯이 정치가 적과 나를 나누는 것이며 정치의 연장이 전쟁이라고 할 때 이 장소는 적과 나의 나눔을 확인하고 머리와 몸에 되새기는 곳으로만 기능할 뿐이었다. 전쟁의 전제를 다시 확인하고 전쟁을 준비하려는 마음가짐인 ‘안보의식’을 다지는 곳인 것이다.

  마침 전망대를 방문하신 한 목사님께서 문제의 점등식 때의 분위기와 풍경들을 전해주셨다. ‘사랑’을 말해야 하는 교회가 사실은 ‘증오’의 기치로 모였을지도 모른다, 애기봉이 북을 자극하고 반격할 빌미로 이용됐을지도 모른다는 말씀. 그의 이야기로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사람들의 폭력성에 대해서 곰곰이 따져보게 됐다. 7년만에 점등된 애기봉의 성탄트리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를 잃었다. 우리는 ‘안보’관광 명소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불편해하며 지켜보는 관리소장의 눈총을 뒤로 한 채 애기봉을 내려왔다.

  이어서 찾은 연미정도 애기봉과 마찬가지로 민통선 안쪽에 위치하고 2008년 초까지는 민간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곳이다. 지금은 깔끔하게 단장된 돈대 안에 500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와 함께 세월의 무게를 드러내고 있다. 정자에선 한강과 임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거대한 해협인 한강 하구를 볼 수 있는데, 애기봉 전망대에서도 볼 수 있는 이곳은 낙동강 하구, 영산강 하구와는 달리 구체적인 지역을 지칭한다. 정전협정에 근거해 구획되는 이 지역은 남북 어디의 땅도 아닌 유엔사가 관리하는 중립적 비무장 지대이다.

  한강 하구의 민간 항해는 협정 조항 상 제한되지 않지만 직간접적인 압력 때문에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시우 작가도 평화를 상징하려는 뜻으로 이곳을 항해하려는 시도를 몇 번 했었는데 그 때마다 주최 측 스스로의 두려움과 유엔사나 정부와의 마찰 때문에 좌절 됐다고 한다. 남북 간의 날카로운 군사적 긴장이 감도는 곳에서 그 긴장의 해소는 정부나 군대가 아닌 민간수준에서 일궈낼 수 있다는 바람과 희망을 전해 들으며 우리는 함께 그 바람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여러 길들을 상상해봤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강화도를 둘러봤다. 사실 나는 강화도에서 2년을 살았기 때문에 강화의 유적지들은 꽤 익숙했고 그것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본 강화는 예전의 그곳과 달랐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과거의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우리의 현재이고 보다 넓은 관점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분쟁지역이다. 고인돌로부터 상대를 나에게 맞게 세우고 바로 잡는 균형보다는 서로가 조금씩 기울어진 상태에서 함께 이루는 ‘부조화의 조화’를 배웠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유적지인 충렬사와 광성보에서는 그곳을 지키고 또 공격했던 사람들의 시각과 정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들에게 결여됐던 넓은 시각을 우리는 갖고 있을까. 대몽항쟁,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강화도는 넓은 세계사적인 맥락위에 위치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시우 작가의 설명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거나 순국선열들의 희생만을 강조한 교과서나 관광 안내서와 달랐다.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을 넓게 설명하며 관점의 차이와 지정학적 특성들을 관련지었다. 그와 함께 차례로 일정을 소화하며 이전엔 갖지 못했던 평화적인 상상력을 조금씩 익혀나갔고 ‘유라시아적 관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남북대치와 그 사이에 위치한 너른 물길 위에 배 한척 맘대로 띄울 수 없는 우리의 상황도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유라시아적 문제이다.

  누군가는 군사전략지로서 강화도를, 투자대상으로서 한강하구를 바라본다. 애기봉에서 성탄트리를 점등하며 적을 확인하고 증오를 공유한다. 이 기행은 우리에게 평화를 이뤄내는 구체적 장소로, 적이 아닌 인간이고 친구임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제 우리는 평화를 상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장소로 강화도와 한강하구와 애기봉을 경험하고 느낄 것이다. 이것이 안보관광지에서 평화기행을 하는 방법이 아닐까. 평화로 향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평화적으로 상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에겐 더 많은 평화기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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