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2월 2011-12-05   1951

참여연대는 지금-아카데미 강좌 후기

사느니 살겠다, 단지가 아닌 마을에서

 

 

이현정 집의 인문학 수강생

 

기록치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이나 모자람의 상징이었으리라. 지금처럼 주민등록등본 전산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우리 집 등본은 앞뒤를 빽빽하게 채우고 두 번째 뒷장도 중간을 넘어서 있었다. 부모님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알 수 있는 증빙자료였다.

 

“사려거든 빚을 지시오”

서울에 살면서, 단 한번도 ‘내 집’을 가져 본 일이 없다. 엄마 말로는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즈음 우리도 집을 살 정도의 돈을 모은 적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뇌수술을 받으면서 모은 돈을 다 까먹었다.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였던 아버지 수입으로는 자식 셋을 대학까지 가르쳤다는 자부심을 남겼을 뿐이다. 그 덕에(?)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부모님의 전세살이는 이어지고 있다.

  30대 후반을 지나면서 ‘나’도 집을 갖고 싶었다. 내 또래보다 4년 늦게 출발한 직장생활로는 오를 대로 올라 있는 가격의 집은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빌라든 아파트든 집을 사려면 집값의 3분의 2이상 빚을 내야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의 빚을 져가며 집을 살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내 집을 가져야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집값이 더 오르는 게 아닐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존재했다. 이런 불안감이 나만의 것이었으랴!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집의 인문학 : 아파트 공화국에서 다시 집을 생각한다>강좌를 수강하게 되었다. 집의 인문학 강좌를 통해 집과 관련된 철학·역사·문학·정책은 물론, 집짓기의 실제까지 집을 둘러싼 여러 가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 강의씩 강좌를 수강하면서 막연히 언젠가는 꼭 갖고 싶다는 내 집이 아파트인지 단독주택인지도 알게 되었다. 사실 자신이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를 생각하고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저 팔 때 가격이 오르거나 쉽게 팔 수 있는 집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집이란 꼭 소유가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평일은 잠만 자는 곳, 주말은 몇 끼의 식사와 누울 공간을 주는 정도였던 집이, 내 방이 다르게 보였다.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철학이었군요”

강좌는 첫날 강의부터 나를 반성하게 했다. 지금까지 집, 엄격하게 말하면 내 방을 대하던 나의 태도에 대해서 말이다.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집은 단순하게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사유하는 공간,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공간일 수 있다”며 사회가 ‘성찰하게 만드는 집’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의 집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마련했으면서도 정작 아침에 출근해 밤이 늦어서야 들어가는 하숙집에 불과하다. 강의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내 하루를 정리하는 공간으로 집과 방을 꾸며봐야겠다는 생각도 처음으로 생겼다.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집이 재앙과 같은 고민거리가 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집에 살지(live) 않고 집을 사려고(buy) 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디수첩에서 부동산 문제를 집중 조명했던 김재영 피디(MBC)는 판교·인천 청라지구·강남의 재건축을 예로 들며 욕망만 작동하는 부동산 시장과 뒤늦게 이를 좇다 하우스 푸어가 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국회의원도 따지고 보면, 집으로 재산증식을 하고 싶었던 주민들의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는다면 집으로 한 몫 챙긴 지인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감당할만한 수준의 빚으로 집을 살 수 있었다면 나도 자본주의 욕망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졌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모든 게 시민들만의 책임일까. 나를 놀라게 했던 강의 내용 중 하나는 토지공개념, 주택 공급에서 공공성 원칙을 지향한다는 헌법 내용이었다. 헌법 35조와 122조를 보니, 국가는 국민에게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국가는 주택문제를 시장에서 개인의 경쟁에만 내 맡긴 채 그동안 철저하게 헌법 정신을 외면해왔던 것이다. 

  강좌에서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실제 집짓기의 경험을 나눈 시간이었다. 강의를 맡은 박인석 명지대학교 교수는 살던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 용인에서 자기 집을 짓고 산다. 마당이 있는 집을 원했던 그는 땅 구입부터 설계, 좋은 집의 조건,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유지관리비를 비교해 가며 집짓기의 가능성과 현실을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원하던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살던 아파트 한 채가 단독주택을 지을 비용을 감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미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하는 집을 직접 짓는 것이 꿈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파트가 아닌 다른 집에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아파트와 바꿀 수 있는 집들의 성공사례가 많이 나타나야 우리나라의 주택문화도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 전셋집으로는 당장 집을 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집의 구조와 벽돌, 창틀, 담장 등 집 재료를 선택하며 내가 꿈꾸는 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 집 빨래가 동네 풍경을 만드는 곳

예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다운증후군 아이를 시골에서 키우는 엄마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임신 중인 둘째도 장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산부인과 정밀검진을 받는다거나 아이를 지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결심의 든든한 배후 중 하나가 바로 그가 사는 마을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살았는데 첫째 아이는 마을의 아이였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형, 누나가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역할을 나눠가진 마을이었다. 나 역시 맞벌이를 하던 옆집 아주머니의 두 아이를 돌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글쎄, 서울에 살면서 몇 십 년 전에 느꼈던 정서를 다시 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심에 사는 초로의 노인이 떠나온 나의 살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냥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아파트 공화국이라며 날을 세우지만 결국 나도 편하고 근사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은 아직 살아있으니 말이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오시면 <집의 인문학> 강좌의 매 강의 후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academy.peoplepower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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