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8월 2011-08-04   2178

칼럼-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이태호 월간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1.
지난 7월 23일, 오후 4시 30분 느티나무홀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참여연대가 마련한 콘서트라고는 좀처럼 믿기 힘든 바로크 음악 연주회였습니다. 이 특별한 무대는 가스통 회원이면서 플루트 연주 재능을 가진 최원희 회원님과 그 지인들로 구성된 고음악 전문연주그룹인 ‘Progetto Corelli(코렐리 프로젝트)’가 선사한 것입니다.

 

30명가량의 회원들이 카페통인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숨죽여 코렐리, 헨델, 바흐의 낯설지만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선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연주자의 호흡이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해질만한 작은 공간을 울리는 바로크 첼로의 굵고 깊은 저음 위로 내달리는 플루트와 리코더의 청아하고 현란한 앙상블이 눈과 귀로, 그리고 피부로 생생하게 파고들어 즐거웠습니다.

 

연주회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
_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

 

 

2.
작은 공간에서 리코더나 플루트 같은 관악기를 연주하다보면, 각각의 악기 소리가 완전히 조화되어 내가 연주하는 악기와 동료가 연주하는 악기가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나아가 연주가 이루어지는 공간 전체가 전체로서 하나의 울림통이 된 것 같은 완벽한 공명의 순간도 체험하게 되지요.

 

이런 신기한 체험은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연주 실력이 없는 합주자에게도 가끔씩 일어나곤 합니다. 그것은 전율의 순간이기도 하고 치유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참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 위원  출처: 진보정치뉴스

3. 
지난 7월 30일, 한진 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찾아가는 3차 희망버스 행렬이 또 다시 이어졌습니다. 한 시인의 호소로 시작된 이 연대의 행렬에는 여기 참가하는 사람들 자신들조차 깜짝 놀라게 만드는 무언가 강렬한 에너지가 넘실거립니다.

매번 만여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버스를 전세 내어 족히 한나절을 달려갑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염이 이글거려도, 경찰의 차벽에 가로 막혀 뜬 눈으로 밤을 새거나 소나기 퍼붓듯 하는 최루액에 눈물범벅이 되더라도, 이 순례의 행렬을 이끄는 거대한 공명의 에너지를 소진시키지는 못합니다.

 

저 백척간두 위에 초로의 한 아주머니가 올라 서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저 작은 체구의 사람이 거기 올라가 200여 일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끄는 힘은 그의 강인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에게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정리해고, 그 불의한 관성과 가위눌림에 맞서 온몸으로 버티고 서 있는 그의 작은 체구에서 어쩔 수 없이 풍겨져 나오는 소금꽃 냄새, 인간성의 향기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 향기가 우리로 하여금 그이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 주고 싶고, 그로부터 희망을 나누어 받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내게 합니다. 그리고 이 따뜻한 온기는 각박하고 모순에 찬 일상 속에서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우리 내면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명의 리듬을 소생시킵니다.

 

4.
저는 춤을 잘 추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게 춤은 몸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혁명은 아마도, 인간성의 해방일 듯싶습니다. 소외되고 억눌려 이리저리 떠밀리던 사람들이, 혹은 각박한 일상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하던 사람들이 문득 가난해진 마음을 열어 저마다에게 주어진 고유한 호흡과 삶의 리듬을 되찾는 순간, 거기서 혁명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민운동을 하는 활동가라고 해서 내면에 이 리듬이 늘 자유롭게 흘러넘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너무 이르다거나 늦었다거나, 상황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가능성이 크다거나 한계가 많다거나 하는 판에 박힌 공식에 좌우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의 일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크고 작은 혁명들이 기적처럼 일어나곤 합니다. 그 기적의 한 가운데에는 강요된 현실이 제한하는 박자와 공식을 벗어나 흔연히 불확실한 가능성의 세계에 몸을 맡기는 평범하고도 비범한 댄서들이 있습니다. 참여연대 활동가들에게 주어진 일은 이 새로운 스텝을 놓치지 않고 따라 갈 수 있도록 어깨에 힘을 빼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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