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8월 2011-08-04   1849

김재명의 평화이야기-노동 차별 없는 세상이 곧 평화로운 세상

 

노동 차별 없는 세상이 곧 평화로운 세상

 

 

김재명 <프레시안>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2011년 여름 한국인들의 눈길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의 처절한 투쟁에 모아졌다. 회사 쪽의 무지막지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35미터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무려 20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여왔다.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김 위원의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망버스’에 올라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길목을 가로막는 경찰의 최루탄과 곤봉세례에 희망 버스는 ‘눈물버스’, 끝내는 ‘분노의 버스’가 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과연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대기업의 횡포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삶을 누릴 날이 언제쯤 올 것인가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이 땅의 또 다른 노동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하기 어렵고, 위험하고, 더럽다고 해서 이른바 3D라 일컬어지는 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기업과는 경쟁이 안 되는 중소기업에서 저임금에 혹사당하면서도 한때는 코리안 드림을 꿈꾼다. 그러나 대기업-중소기업이란 위계 속에서 자본의 냉엄한 먹이사슬에 희생되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한국을 떠나기 일쑤다.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다시 가고 싶지 않는 나라’

2006년 여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11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많은 집들이 파괴된 뒤 현지취재를 갔을 때였다. 그곳 수도 베이루트의 한 중국 음식점에서 20대 중반의 필리핀 여자 종업원을 만났다. 레바논에는 아프리카에서 온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이 많지만 필리핀 노동자들도 약 3만 명에 이른다. 그녀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서울, 한국이라 했더니 그녀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알고 보니 경기도 안산의 한 작은 섬유공장에서 1년 가까이 일했었다. 그녀는 “임금도 떼였고 인간적인 대접도 받질 못했다”고 말했다. 필리핀 노동자들 사이에 한국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는 나라’로 꼽힌다고도 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백마부대의 주둔지였던 나트랑에서 30대 초반의 여인 구에를 만났다. 섹스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베트남 농촌 출신인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한국은 악몽 그 자체였다. 한국인이 낀 인력송출업체는 그녀에게 “한국 가면 큰 돈 벌 수 있다”고 속삭였다. 그 말만 믿고 안양의 작은 봉제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했으나, 끝내 아픈 가슴을 안고 돌아왔다. 한국인 사장은 그녀를 집적거렸고, 임금도 제때 주지 않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공장 문을 닫고는 사라졌다. 1947년 이래 인도-파키스탄 사이의 오랜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에서 택시 운전기사 무하마드 가흐산(27)을 만났다. 그는 “한국 인천과 시흥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그 얘길 듣는 순간, 슬며시 불안감이 떠올랐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여행객들이 봉변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가흐산은 심성이 착한 청년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냐고 묻자, 그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70만 명쯤. 그 가운데 ‘불법체류자’라고도 일컬어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8만~19만 명쯤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이른바 3D 업종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운이 나빠 악덕업주를 만나면 임금을 떼이거나 일하다 몸을 다쳐도 보상은커녕 치료조차 못 받고 돌아가는 경우들이 생겨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을 보는 제3세계 사람들의 눈길은 그리 곱지 못하다. 외국에서 우연히 이주노동자 출신을 만났을 때,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배웠던 우리말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을 휘두를 수도 있다. 실제로 운이 없는 일부 한국인 관광객들은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 인천공항에 내리곤 한다.

 

한국, 노동 잣대로 국가신인도 잰다면…

1990년대 후반기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맞은 뒤 우리 귀에 자주 들려온 용어가 하나 있다. ‘국가신인도’ 또는 ‘국가신용등급’이란 용어다. 사전적인 설명으로는 ‘한 국가의 외채 상환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외화표시 장기국채의 신용등급을 의미한다’고 한다. 등급을 재는 잣대로는 외환보유액과 외채구조 등 대외부문이 얼마만큼 건전성을 지녔느냐를 살피고, 아울러 그 나라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 및 기업부문의 경쟁력은 어떠한지, 노동시장은 유연성을 지녔는지(다시 말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는지), 안보 위험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3대 신용평가회사로 꼽히는 무디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피치 레이팅스의 이른바 전문가들이 국가신용등급을 재면서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은 뭐니 뭐니 해도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내는 해외 투자처가 어디냐’이다 따라서 ‘국가 신인도’란 외국 자본가들이 얼마만큼 안심하고 그 나라에 투자할 수 있느냐를 가리키는 지표이다. 1990년대 후반기 한국이 금융위기를 겪을 때 이들 3대 신용평가회사들은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크게 낮춤으로써 바이 코리아Buy Korea를 외치며 한국기업들을 삼키려는 국제 투기자본의 ‘공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챙긴 론스타가 한 보기다. 여기서 나오는 물음 하나.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꼭 자본의 잣대로만 재야 할까.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고공 크레인에서 분투하는 김진숙 위원, 그리고 레바논, 카슈미르, 베트남에서 만났던 이주노동자들을 떠올리면서 이런 제안을 해본다. “얼마만큼 안심하고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느냐”로 국가신인도를 재는 데 그치지 말고, 이 땅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정리해고 걱정 없이,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없이, 임금 떼일 염려 없이) 얼마나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인가”를 놓고 국가신인도를 재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노동의 잣대로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잴 경우 A+가 나올지는 몹시 의심스럽다.

  이 땅의 평화는 자본뿐 아니라 노동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이주노동자이든 토종노동자이든, 이 땅의 노동자들이 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정리해고 걱정 없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평화로운 세상일 것이다. 자본의 평화만이 평화는 아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제대로 된 노동조합조차 없는 이 척박한 땅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이다. 그 평화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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