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2월 2011-12-05   4072

참여사회가 만난 사람-김창준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장

김창준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장

▶ 참여사회가 만난 사람-김창준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장

“당신의 의로움이 외로움이 되지 않게”

 

글 박영선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김은진 작가

부패방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된 올해,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제정으로 반부패정책이 한 걸음 더 진전했다. 권력형 부정부패와 조직적 비리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이나 양심선언은 어떤 사정기관의 활약보다도 부패 척결 효과가 크다. 비록 한 사람의 양심과 의지에 불과했을지라도, 그 덕분에 한국 사회는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조금씩 벗어버릴 수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의로운 한 사람의 양심의 호루라기는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가물거리는 기억속에서도 여러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과 군부재자투표부정을 고발했던 이지문, 효산 콘도에 대한 감사 중단 외압 사실을 양심 선언했던 현준희, 말로만 떠돌던 삼성의 비자금 문제를 만천하에 알린 김용철,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가 운하계획이었음을 밝힌 김이태. 그 뿐인가. 끝내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지만, 감염된 혈액유통문제를 지적했던 적십자사 직원들의 양심과 KTX 사고원인에 관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한 철도청 직원들의 용기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데도 중요한 한 몫을 해냈다.

  그러나 조직의 구조적 비리나 불법에 대항하며 내부고발과 양심선언이라는 힘겨운 선택을 했던 시대의 양심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떠했는가. 조직의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고, 이들을 조직에서 떼어버리는 데에만 골몰했다. 징계와 파면은 당연한 수순. 국가권력은 때로 이들을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다. 경제적 곤란함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의 냉대와 사회적 격리에 비하면 경제적 고통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공익제보자들은 한결같이 외로움을 호소한다. 오랜 시간동안 고뇌를 거듭하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내하겠노라고 결심했지만,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보상과 인정은커녕 처벌과 매도로 일관하는 사회 반응은 그들을 끝내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몰아간다.

 

공익제보자 지원운동의 역사적 증인

오늘 『참여사회』에서 만날 주인공은 참여연대 창립 때부터 공익제보자의 외로운 투쟁에 동행하며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위무해왔던 김창준 변호사이다. 그의 참여연대 내 공식 직책은 공익제보지원단장. 그가 활동하던 부서의 이름이나 그에게 부여되었던 타이틀은 조금씩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15년 내내, 공익제보지원운동에만 몸담아왔다. 김 변호사에게 처음 참여연대 활동을 권유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금도 그거 하냐”며 우스갯소리를 한단다. 참여연대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회단체를 만들고 떠나고 했던 박 시장에게 김 변호사는 놀림의 대상이기도 하겠지만, 놀라움의 대상이기도 할게다.

  “진작 다른 것도 할 수 있었는데 그걸 안 한 이유는 제가 생업이 있고 회사 대표니까, 사실 이거 하나만 하는 것도 버겁다고 할 수 있지요. 딴 데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공익제보운동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그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살짝 머쓱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인생 마디마디에서 중요한 매듭이 지어졌을 법한 일들에 대해서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듯하다. 법대 진학이나 참여연대와의 인연, 심지어는 최근에 사재 1억 원을 ‘공익제보자를 위한 의인기금’에 쾌척한 일을 설명할 때조차 말의 다과로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으며, 수사를 동원해서 의미를 치장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간결하고 담백한 그의 화법은 단지 대화의 기술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기름지지 않은 답변을 처음 들었을 때는 겸손한 체 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대화 말미에선 그가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이 시대의 공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가 밀고, 당기지 않아도 그는 뚜벅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참, 그는 자신이 체질적으로 한 우물을 파는 성격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법조계에서 해상법 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세경은 해운분야에서 1등급 로펌으로 평가받았다. 유수한 법률정보제공업체가 공정거래, 금융, 노동, 조세 등 14개 분야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인데, 김앤장이나 광장 등 변호사가 수백 명 있는 대형로펌이 아닌 곳은 세경이 유일하다. 하지만 한 우물을 파는 성격만으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닐 터. TV와 골프에 시간을 뺏기는 대신 책을 읽고 공부한다. <복합운송주선업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학위를 받은 후에도 새로운 연구 결과를 부지런히 발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고통,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참여연대 활동에 대해 탐구해보자. 1994년 창립 때부터 ‘내부비리고발자지원센터’를 설립하며 공익제보자지원 활동의 첫 발을 내딛었던 참여연대가 1996년 종합적인 반부패운동기구인 ‘맑은사회만들기본부’를 통해 본격적인 공익제보지원운동을 펼쳤으니, 그의 참여연대 활동의 역사는 바로 한국 공익제보자지원운동의 역사가 될 것이다. ‘조직 내의 누군가가 불법, 부정한 방법으로 정부 또는 국민을 속이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에 항의하거나 거부하다 보복을 당하고 마는 사람들’을 부르는 사회적 용어가 내부비리고발자에서 공익제보자로 바뀐 십 수 년 동안 그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먼저 공익제보자에 대한 그의 시선.

  “공익제보자라고 해서 뭐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구요. 그냥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사람, 그 중에서 약간 선량한 사람이라는 게 개인적인 솔직한 소감. 다만 그분들이 다른 선량한 분과 차이가 있다면 불의와 타협하는데 미숙하다는 것이지요.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지 못하는, 정의감이 조금 남다른 분들이지요. 혹자는 공익제보 목적이 사리사욕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그것은 공익제보로 피해를 보는 반대 측에서 만든 흑색선전에 가깝다고 생각하구요. 공익제보 하신 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시민이라고 생각해요.”

  공익적 내부고발 보호와 보상을 규정한 부패방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나 되었고, 올해는 공익신고자보호법까지 제정되었지만, 법원 판결은 여전히 공익제보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올해 3월에도 엘지전자 납품비리 관련 비리를 회사 감사실에 제보한 정국정 씨 해고 조치에 대해 대법원은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김 변호사는 ‘내부고발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정적 인식’을 지적하였다.

  “한국 문화에서 보자면 굉장히 드문 사건이잖아요. 전통적인 농경시대의 미풍양속을 생각하면 이것들 나쁜 놈 아냐? 이런 생각이 들겠죠.”

  그는 우리 사회의 부패가 구조적이고 문화적이라는 데 특색이 있다고 진단한다.

  “내부 고발을 제일 아프게 느끼는 사람은 그 고발 대상 조직의 장입니다. 근데 그 장은 인사권이잖아요. 그 조직의 인사권 내에 있는 사람들 모두 내부고발자의 적이 됩니다.”

  한솥밥을 먹었던 동료와 선후배들은 부패의 그물망으로 작동한다.

  “친구들이 소주 한 잔 하는데 따라와라 하면 따라가죠. 뭐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너 그때 같이 먹었잖아 하는 식으로 먼지를 털어요. 별거 아닌 거여도, 재판할 때 그런 자료가 막 쌓여 있어요. 100명을 모으면 100건의 먼지가 쌓여요. 법이란 것도 내부고발 자체만 가지고 보지 않아요. 공익성, 진실성 다 평가하는데 그렇게 나쁜 자료를 많이 모아놓으면 그 과정에서 아주 나쁜 동기가 만들어져요. 조직을 모반한 것이 되니까 판사들이 이 사람을 무죄로 하면 안 되겠네 할 수 있죠.”

  공익제보자관련 소송에서 그나마 전향적인 하급심 판례가 번번이 상급심 법원에 의해 번복되고 만 이유는 ‘조직의 유지, 직원들 사이의 융화 등의 가치가 내부고발자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회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부패문화’에서 포박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때문에 그는 다시금 강조한다.

  “공익제보자는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우리 사회에서 시대를 잘못 만나 엄청나게 고생하시지만, 정말 시대의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자기를 버렸다는 점에서 너무나 훌륭하신 분들인데, 다만 그분들이 현실에서는 패배자입니다. 그게 우리 공익제보자의 현실입니다.”

 

의인기금 조성한 또 한 명의 의인

그의 ‘경험’이란 공익제보자들과 함께 보낸 지난 15년 세월 그 자체일 것이다. 그는 현준희 씨 등 우리사회 의인들을 만나며 공익제보자의 정의를 향한 순수함과 비타협성에 감탄했을 터이고, 그들의 선량함과 올곧음에 비례했을, 아니 어쩌면 수십 배, 수백 배 더 커졌을 그들의 고통과 상처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공익제보자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공익제보활동이 우리사회가 보다 투명해지고 공정하게 되는데 정말로 필요한 제도’라는 것을 그 경험의 결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부고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직은 주류인 현실. 그 현실을 극복할 대안으로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내부고발 보호 제도를 더 넓게 일반 사기업으로 넓혀야 한다는 점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상 및 포상 등 금전적 보상 외에 신분적 특전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점, 시민참여형 의인기금의 제안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는 제안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참여형 의인기금에 1억 원을 출연했다.

  “작년에 공익제보자의 밤을 하기로 했는데, 예산이 없어서 의인으로 선정된 분들께 상품권 30만 원씩만 드리게 됐어요. 우리가 명색이 시민단체 대표주자 격인데, 여기서 상이라고 내놓은 게 상품권 3장이냐 그런 자괴감이 들었지요. 물론 그분들에게 돈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기금을 만들기로 했죠. 하지만 내부고발의 특수성상 모금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내부고발이 뭔데, 그거 조직을 배신하는 사람 아냐? 왜 우리가 도와야 하지 뭐 이런 반응이 올 거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려면 내가 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한 명목이라고 하기에 1억은 무척 큰돈이다. 거금 출연 배경에 대해 계속 캐물었지만, 그는 “돈 갖고 칭찬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기분이 나쁘진 않지만 뭐 뿌듯하진 않아요.”라고 입막음을 한다. 대신 참여연대 활동이 그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담담하게 얘기했다.

  “로펌이란 데가 치열한 생활 현장이잖아요. 근데 참여연대는 좋은 일 하자는 거잖아요. 회의 끝난 다음에 막걸리 한잔 하고 오는데 그날 참 잠을 잘 자요. 그런 활동 자체가 스스로를 대견하게 만들죠. 좋아서 하는 일인데 무슨 칭찬이 필요 있습니까.”

 

양심을 보호하는 바람이 분다

그는 자신의 기금 출연 얘기 대신 사회적 외톨이가 되고 만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지원을 위한 의인기금조성 의미에 대해서 더 많이 강조하고 싶어 했다.

  “의인기금은 공익제보자의 뜻을 알리고 그 뜻을 기념하는 것이죠. 가능하다면 더 큰 일, 생계지원도 하고 싶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분들의 뜻을 기려서 우리가 당신 뜻에 공감한다는 게 제일 크다고요. 그래서 이분들이 외로움을 안 느끼도록. 내가 이런 일을 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주고. 직장 쫓겨나고 친구도 없어지고 가족들에게 미움 받고. 그렇게 외로운데 우리 같은 단체가 알아주면 그분들이 엄청난 위로가 되요. 고통에 대한 위무가 될 거 같아요.”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신년 덕담을 해달라는 요청에도 그는 계속 의인기금 모드.^^

  “제가 덕담할 계제는 아니구요. 의인기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저는 만 원도 천 원도 좋고 십시일반 정신이 필요하다고 봐요. 부조리한 현실을 개탄만 할 게 아니라, 참여연대 회원 분들은 이미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계시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의인기금에 참여하면, 더 많은 분들이 힘을 얻고 용기를 얻을 거예요. 적은 돈이라도 참여해주십사 제가 덕담 아닌 간청을 드리고 싶어요.”

  그의 천 원도 좋고 만 원도 좋다는 소박한 바람에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화답하고 있다. 네이버에 의인기금 모금함이 개설되자 현재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했다고 한다. 마침내 공익제보자들의 외롭고 고단한 처지에 공감하며 위로하고자 하는 따스한 바람이 부는 것일까. 그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인 김 변호사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인터뷰 내내 담담하게 반응했지만, 어쩜 그의 마음에도 따스한 바람이 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인기금에 관심을 갖는다면 말이다.

 

 

‘김용민이 만난 사람’ 인터뷰어로 활동한 시사평론가 김용민 님이 2011년 11월호를 끝으로 독자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010년 1월호부터 2년 가까이 인터뷰를 맡아 수고하신 김용민 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이번호 인터뷰는 박영선 참여사회 전 편집위원장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 참여사회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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