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6월 2011-06-20   1919

칼럼_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이태호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노라면 인왕산에서 불어오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코끝이 아릿아릿할 지경입니다. 창문을 열어 가슴 가득히 꽃향기를 채워 봅니다.

귤꽃이 아카시아 꽃보다 더 강렬하고 고혹적인 향기를 뿜어낸다는 것을 제주도 강정마을에 가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달콤한 향기를 따라가니 서늘한 달빛 아래 몇 그루의 귤나무가 작고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섬 특유의 촉촉한 밤공기로 인해 귤꽃내음이 온 몸을 휘감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향기에 취해서 오솔길을 따라 강정마을 앞 구럼비 해안을 향해 한참을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희미하게 드러난 오솔길을 지그재그로 가로질러 가느다란 은빛의 띠들이 달빛에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허리를 숙여 조심스레 따라가니 그 은빛의 띠가 끝나는 곳에서 민달팽이를 만났습니다. 무수히 많은 민달팽이의 봄밤 나들이가 이 아름답고 은은한 궤적들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민달팽이가 기어나온 풀섶에는 붉은발말똥게가 둥지를 틀고 있었겠지요. 그 날 밤에는 아쉽게도 그놈들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멸종위기종 2급의 이 선홍색 게는 등딱지에 스마일 모양의 반달모양의 문양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정마을 해안습지에 서식하는 이놈들을 해군은 최근 통발을 설치하여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강제이주시킨다는 겁니다. 통발에 갇혀 폐사한 뒤에도 이놈들의 등딱지는 마냥 웃고만 있습니다.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올레 7코스의 한 가운데 위치한 강정마을 앞바다에는 구럼비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 1Km, 폭 200m 내외의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습니다. 구럼비는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식어서 생긴 현무암반으로, 멀리서보면 돌무더기들로 보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바위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너럭바위 안에는 무수히 많은 옹달샘과 실개천 그리고 작은 연못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간간히 파도의 흰 포말이 넘쳐 흘러들어오는 투명한 민물의 연못 안에서 자리돔과 돌돔의 치어들이 무리지어 헤엄칩니다. 손에 물을 담아 입으로 가져가니 시원하고 달달합니다. 이놈들은 여기서 유년기를 보낸 후에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이 흐드러진 강정앞바다로 나아갈 것입니다. 해군은 이 바위 전체를 콘크리트와 덮고 해군기지를 건설할 예정1)입니다.

구럼비 북쪽으로 흘러드는 강정천을 끼고 강정마을로 들어오는 올레 7길 어귀에는 군사시설이라는 해군의 살벌한 경고문구와 함께 10미터 높이의 철제 담벼락이 둘러쳐졌습니다. 건천이 대부분인 제주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강정천에는 바다에서 떼지어 올라온 은어들의 은빛의 군무가 장관입니다. 흙냄새 나는 섬진강 은어는 두 번 먹을 것이 못된다며 강정마을 은어자랑을 늘어놓던 마을어른이 해군기지 얘기에 긴 한숨을 내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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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1월 30일 5명을 한국에 압송한 이래, 검찰은 단 26일만인 2월 25일 이들을 해상강도와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하였고, 부산지법은 5월 23일부터 28일까지 5일간의 재판으로 이들 중 4명에게 최저 징역 13년, 최고 무기징역의 형을 선고했습니다. 다른 한명의 재판이 남아 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와 교전 당사자의 진술 외에 마땅히 증거를 찾기 힘든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이 그토록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이 미덥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재판에서는 군대를 범죄자를 붙잡는데 이용하거나 교전 상대방을 전범이나 포로가 아닌 형사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국제사회의 논쟁거리도 충분히 검토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형벌의 본질적 목표인 재발방지에 기여하는 방식인가 의문입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소말리아 해적은 오랜 내전과정에서 소말리아 어민들이 자구적으로 해양경비대 역할을 하던 것에서 유래되었고, 특히 2004년 쓰나미 발생으로 민생고가 가중되면서 많은 어부들이 해적에 가담하게 되고 국제적인 문제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해적이라는 괴물은 사실 민달팽이처럼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는 취약한 상황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구실 중 하나가 해적으로부터 우리 선박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해군군함 전체와 모든 잠수함들이 함께 정박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주도 인근에 소말리아 같은 취약국가는 없습니다. 해군은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도 내세우지만 그 일은 본래 해양경찰의 역할이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해양 분쟁에 이지스함이 출몰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습니다. 게다가 해군은 이미 부산이나 진해에 충분한 정박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해군기지를 가장 쓸모 있게 이용할 군대는 서태평양에서 중국과 패권을 다투는 미해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렌지라는 이름은 최근 고약한 오명을 얻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60-70년대 미군기지와 DMZ에 사용했던 ‘에이젠트 오렌지’라는 고엽제 때문입니다. 고엽제가 아니더라도, 군사기지는 갖가지 치명적인 오염물질을 취급합니다. 이지스함의 어뢰발사관에는 장미유(Otto fuel)이라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사용되고, 방사능 무기로 분류되는 열화우라늄탄도 다량으로 적재됩니다. 핵잠수함은 탑재한 핵무기를 제외하더라도 그 자체로 움직이는 핵발전소입니다. 게다가 제주해군기지 정도의 전략기지에는 거대한 전시비축용 탄약고가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치명적인 맹독성물질이라는 다이옥신보다 더 독성이 강한 것은 인위적으로 조장된 공포인지도 모릅니다. 이 공포는 괴물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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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럼비를 지키려고 이 마을 출신 영화평론가 양윤모 씨가 5월 30일 현재 56일째 단식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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