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1월 2012-01-02   1785

안건모의 사는 이야기-도대체 왜 올까? “미안해서..”

“도대체 왜 올까?” “미안해서…”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작은책> 편집회의가 끝나고 밤 9시에 평택을 가려고 차에 올라탔다. 작은책 마감 끝나고, 강연에, 재능교사 집회에 다녀오는 등 여기저기 집회 참석하느라 몸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일터에서 쫓겨나 길거리 천막에서 자면서 복직 투쟁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편안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편집위원인 박준성 선생님과 유이분 씨, 그리고 작은책 독자 이명숙 씨와 함께 차를 타고 출발했다. 화성휴게소 쯤 가니까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2009년부터 3000여 명이 해고된 뒤로 77일 동안 목숨을 건 투쟁을 하다 폭력 경찰에게 강제 해산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뒤 아무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고자들과 가족들은 19명이나 자살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오늘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위한 희망의 ‘와락 크리스마스’라는 행사가 있다.

  밤 11시에 쌍용자동차 정문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텐트가 쳐 있다. 이명옥 씨가 보인다. “이명옥 씨!” 하고 소리쳤더니 “와, 작은책!” 하고 손을 흔든다. 찬 겨울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정문 앞에는 두툼한 점퍼에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무리 져 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노숙자처럼 보인다.

  “어, 선배님, 왔어요?” 쌍용자동차 해고자인 오광수 씨가 반긴다. “차 어디다 대지?” “이쪽으로 와요.”

  여기 저기 아는 이들이 반긴다. 늘 보는 사람들이다. 어디서 본 듯한데 이름과 소속이 기억 안 나는 이들이 많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 돈 들이고 몸 상하고 시간 뺏기면서도 온다. 이런 현상을 정치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겠지. 촛불집회 때 이명박이 그랬다던가. ‘초를 댄 사람이 누구인지 잡으라’고? 그 사람을 잡으려면 우리 시민들 전부를 잡아들여야 할 게다.

  쌍용차 지부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신발을 벗어놓은 곳은 눈이 녹아 물이 질퍽하다. 화가 이동수 씨는 아이에게 그림을 그려 주고 있다. 이동수 화백도 이런 농성장을 늘 찾아다니는 분이다. 엊그제는 재능교사들이 주최한 집회에서 만났다. 이동수 화백이 아이들 얼굴을 그려 주니 아이들은 입이 함지박만 해진다. 부모님이 그런 고통을 받고 있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신났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장난쳐 주니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다.

  박준성 선생이 옆 식당으로 오라고 한다. 가 보니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회원들과 술을 한잔 하고 있다. 이 단체는 파업을 하는 곳에 현금을 지원해 주는 단체이다. 쌍용차에 2천만 원, 재능교사들 해고자들에게 5백만 원을 후원했다. 이 돈은 물론 일반 시민들한테 후원을 받은 돈이다. 상마다 단체들이 모여 술을 먹고 있는데 젊은이들도 많다.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인 허영구 씨도 보인다.

  새벽 세 시가 되니 식당 문을 닫는다고 했다. 어디서 자지? 밖을 나와 보니 조그만 텐트 속엔 한두 명씩 들어갔는지 그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엔 눈이 점점 쌓여 간다. 바닥이 엄청 찰 텐데 아침까지 버틸 수 있을까? 박 선생과 쌍용차 해고자 오광수 씨와 나는 차로 갔다. 나는 운전대, 오광수 씨는 조수석에 앉고 박 선생은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침낭을 뒤집어쓴다. 차에서 히터를 틀고 잠을 청했다. 차 히터가 좋지 않아 따뜻해지지 않는다. 몸이 덜덜 떨린다. 얼마나 뒤척거렸을까 잠이 들었다.

  아침 여덟 시에 잠이 깼다. 밖을 보니 온통 눈이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눈이 정강이까지 쌓였다. 차디찬 눈 속에서 잔 사람들이 하나둘씩 텐트에서 나온다. 모두들 꾀죄죄한 모습이다. 어제 못 본 이들이 눈에 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인 이광열 씨도 있다. 구속노동자후원회는 이런 집회를 하다 구속된 양심수들에게 법률 지원을 해 주고 책과 영치금을 넣어 주는 인권단체다. 돈이 많아 지원해 주는 게 아니다. 다른 노동자들한테 후원을 받아 구속 노동자들을 후원해 준다. “어디서 잤어요?” “차에서요.” 순박하게 웃는다.

  아, 맹봉학 선생도 보인다. 이른바 ‘삼순이 아버지’ 맹봉학 선생은 요즘 이런 집회에 열심히 나온다. 해고돼 4년 넘게 길에서 싸우고 있는 재능교사 지부장 유명자 씨도 있다. 또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 작은책 독자이자 민주노총 충남본부 본부장 최만정 씨, 우체국 노동자로 일하고 싶어 하는 김재홍 씨도 보인다.

  아침을 먹고 헤어질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와락’ 프로그램을 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한 줄로 서 있고 거기 온 시민들이 한 명씩 한 명씩 껴안는 행위다. “고생하셨습니다.” “힘 내세요.” 더 할 말이 없다. 그저 그 한마디를 하면서 서로 껴안는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웃고 있지만 눈이 발갛게 충혈돼 있다.

  차에 올랐다. “잘 올라가세요!” 손을 흔든다. 집회에 참석하고 갈 때가 되면 늘 미안하다.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목이 울컥한다. 그이들을 뒤로 하고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 차를 세운다. 서울 올라갈 사람 한 사람만 태워 달란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이수정 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올라오다가 이수정 씨가 물었다.

  “사람들이, 희망버스 때나 이런 농성장에 도대체 왜 올까요?”

  이명숙 씨가 말했다. “미안함 때문이죠. …….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안 가면 미안하니까.”

  그래, 미안함 때문이다. 거창하게, ‘그이들 문제가 내 문제니까,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게 세상을 바꾸는 일이니까’ 하는 상투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추운 길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싸우는데 나만 따뜻한 방에서 지내는 게 미안해서다. 그래 봤자 우리는 몇 시간, 또는 하루 이틀 고생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집회가 끝난 뒤 따뜻한 집에서 뜨끈한 물로 씻고 편안히 잠잘 수 있는데 저이들은 또 현장을 뒤처리하고 추운 텐트에서 자야  하고 용역깡패와 폭력 경찰에 시달림을 당한다. 그런 미안함 때문에 집에서 불효자 소리 듣고 아내에게 지청구를 들으면서 적은 돈이라도 후원하고, 몸이 고단해도 참석하는 것이다.

  독자들이여, 최선의 연대는 집회 참석, 차선의 연대는 입금이다. 더 좋은 건? 집회 참석과 입금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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