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1월 2012-01-02   2709

아주 특별한 만남-손민정 회원

인터뷰 손민정 참여연대 회원


아는 만큼,  한 발 한 발 앞으로…

손민정 회원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시민기자

2012년 새해가 밝았다. 사방이 꽁꽁 얼어붙었다. 나무들은 알몸으로 계절과 맞서고 있고 사람들 또한 어깨를 움츠리며 겨울의 한가운데 서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으니 봄 또한 멀지않았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이즈음이면 항상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자신과 싸우지 말고 자신을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고 자신과 즐겨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한갓진 음풍농월이라 귀 밖으로 들릴지 몰라도 한번 쯤 새겨볼 만한 격언이다. 자신과 싸우며 살아가는 과정이 개인의 삶이요, 그 삶이 확대되어 역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최근 보도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국민의 45.3%가 자신을 하층민이라 생각하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양극화 심화로 인해 평생을 노력해도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수 없는 현실은 1%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우울하게 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승자독식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지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리라. 유독 7090(70년대 태어나 90년대 대학을 다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층이요 최대의 납세층을 말함)만의 고통은 아닐 게다. 때문에 모든 세대가 스스로 자신을 위무하고 지지할 필요가 있는 시절이다. 그 선두에 서서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과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한 여자를 만났다.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다

88년생, 손민정 회원. 한겨울 오후 6시는 사방이 캄캄하지만 카페 통인은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듯 한 아우라’를 단칼에 제압한 분위기였다. 거기에다 풋풋한 초록의 풀 향기까지 한몫을 더한 자리였다. 파마기 없는 긴 머리에 잿빛 스웨터와 검정색 미니스커트, 그와 조화를 이루는 검정 레깅스 차림은 시원스럽고 건강미까지 돋보이게 했다.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외투를 벗고 회색 장갑을 무릎에 올려놓는데 특이했다. 오른쪽 한 짝만 손가락 끝 모두가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디자인이었다. 장갑에 눈길이 오래 머물자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마디 했다. ‘손끝이 다 닳아서…’ 예사롭지 않는 안목과 손재주가 빚어낸 개성 만점의 장갑이었다. 그 아이디어에 탄복하자 이야기는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무엇이라도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다 좋아한다면서 자급자족형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단박에 드러냈다.

  “저는 남들보다 좀 불편하게 살고 싶어요. 스마트폰 같은 거 없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요. 스마트폰이라는 게 내 손안의 컴퓨터잖아요. 저는 실제로 컴퓨터도 잘 이용하지 않고 SNS같은 서비스망도 사용하지 않지만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요. 마음 같아선 휴대폰도 없애고 싶지만 남들이 불편해 할 거 같아서 그냥 쓰고 있죠.”

  상기된 표정으로 잠시 말을 끊고 찻상의 차를 홀짝 마셨다. 물론 개인컵에 담아온 유자차였다. 면면이 예사롭지 않는 태도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또 전통적인 삶에 관심과 향수가 많아서 그런지 바느질, 한옥, 사찰음식 같은 채식도 좋아해요. 저의 할머니가 70대인데 그때는 고기뿐만 아니라 생선도 그렇게 못 먹었대요. 지금은 너무 잘 먹고 너무 편리해졌지만 삶이 어딘가에 자꾸 얽매이는 것 같아서 불편해요. 그 얽매임이 싫어서 최신 기종의 휴대폰 같은 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요.”

  ‘불편’이 코드가 되는 인터뷰일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 불편함을 자청한 걸까, 자못 궁금했다. 먼저 채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채식을 한 지 3년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저도 불편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특히 엄마가 음식을 만드는데 가장 불편해 했죠. 그래서 제가 먹는 것은 제가 스스로 만들어서 먹었죠. 현미밥에 된장을 주식으로 소박한 반찬 두어 가지가 전부였죠. 차츰 엄마도 제 식단에 맞춰 음식을 장만해주셨고 식구들도 불편함 없이 같이 먹게 되더라고요.”

  채식주의자.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배려가 거의 없는 사회가 아닌가.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그 길을 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더구나 소비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젊은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궁금했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스콧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어요. 감동이 컸죠. 그 이후 데이빗 소로우의 『윌든』, 헬레나 호지의 『오래된 미래』 등등, 우리의 환경문제를 다룬 <녹색평론> ‘한살림’ 인문학 강좌 등을 들으며 내 삶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계기로 채식을 택하게 되었어요.”

생활의 변화를 위해 택한 채식

의문은 계속 증폭되어갔다. 왜 변화의 계기가 필요했던 걸까.

  “대학에 대해 많은 갈등과 회의가 들었어요. 학문이라는 게 이론만 방대하지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제일 큰 이유였죠. 많은 친구들이 학자금 융자를 받아 학교를 다니지만 졸업을 하면 그 융자금을 갚기 위해 허덕이고, 결국은 돈, 돈을 외치는 결과 밖에 더 되요? 자퇴를 하겠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고 휴학도 했지만 결국 어렵게 이번 2월에 졸업합니다. 부모님께는 선심 쓰듯 졸업하는 거 같아 죄송하지만 시간 낭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상털기’를 해보면 그는 명문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그 독서량으로 다져진 가치관이 제도권 교육의 모순을 적확하게 뚫었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음이 분명한 듯했다.

  “우리 과의 친구들이 그러하듯 저도 한때는 신문기자가 꿈이었죠. 지금은 오직 몸으로 움직여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려고 하니 귀농문제로 가닥이 잡혀가요. 그런데 이것 또한 내가 거주하는 환경에서 뿌리내리기가 어려워 생각만 많을 뿐입니다. 생각 많고 말이 많다고 주변에서 충고를 하지요. 반성합니다. 오늘도 말을 적게 하려고 다짐을 하고 나왔는데.”

  머리 숙여 선생님 앞에 반성문을 내는 모습이 소녀 같다. 

  반전의 분위기로 좋아하는 채식 이야기로 잠시 되돌아갔다. 인간이 동물성 음식을 피하고 식물로 만든 음식만을 먹는 것을 간단하게 ‘채식’이라 한다. 서양에서는 주로 생태주의·반자본주의·자연주의의 관점에서 시작되어 그 단계를 예닐곱 정도로 나눈다. 육류뿐만 아니라 유제품·꿀·계란 가죽제품·양모·오리털 등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한 제품을 피하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주의자로부터 붉은 살코기와 생선만을 피하는 소극적 단계도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건강과 정신수양을 위해 오래 전부터 행하고 있다.

  건강한 혈색에 강단 있어 보이는 체력이라 어떤 단계의 채식주의자냐고 묻자,

  “육류와 생선은 물론이고 이젠 계란, 유제품도 안 먹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소극적이었어요. 육류나 유제품이라도 꼭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먹으며 타협해갔어요. 한때는 속이 헛헛하여 폭식증이 오더라고요. 그 단계를 지나고 나니 몸도 가뿐하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아 지금껏 별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표정만 봐도 훨훨 창공을 나는 한 마리의 겨울새이다. 내킨 김에 참여연대 이야기로 직진했다. 2009년 회원 가입을 했고, 인턴 5기 출신이다. 먼저 가입 동기부터 질문했다.

 

20대 겨냥한 ‘휴먼파탈’

“솔직히 참여연대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에서 자원활동을 했는데 그곳에 계시던 분이 성공회대학의 사회적기업 강좌를 권하더라고요. 그 강의를 듣다 또 그곳에서 만난 동생이 참여연대 인권강좌를 듣자고 해서 왔는데 회원이 되면 인센티브도 있더라고요. 회원 가입 했더니 인턴 5기를 모집해서 신청하고…. 물리고 물려서 여기까지 왔죠.”

  결국 ‘소박한 밥상’으로 시작한 상차림에서 참여연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린 셈이랄까.

  스스로 참여연대에 대해선 잘 몰랐다고 하지만 인턴 5기로 활동한 이력을 보면 ‘열혈회원’  못지않은 일을 해냈다. 20대들의 정치참여 의식을 조사하기 위해 ‘휴먼파탈’이라는 닉네임으로 인턴 5명과 함께 캠페인을 해서 주변과 언론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팜므파탈’이 아닌 ‘휴먼파탈’이라니?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으니 이야깃거리가 많을 수밖에.

  “캠페인을 벌이면 일단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어야 하니까 좀 우스꽝스럽더라도 매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휴먼파탈로 표현했죠. 그런데 거리에 나가 진행을 해보니 두 가지 문제로 귀결되었어요. 첫째는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거고 또 하나는 모두가 돈 문제더군요. 좀 서글펐어요. 하나 같이 “등록금이 너무 비싸요. 일자리가 없어요, 시급 올려주셔요”… 캠페인목적이 20대 정치의식을 내보이자, 분출해보이자였는데 결국은 돈, 돈이었어요.”

  어찌하랴, 이미 재벌이, 종교계가 사학재단인 대학이 모두 기업화되어 견고한 판이 짜여있 으니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어디 쉽게 있으랴. 같이 흥분하고 공감했지만 그는 대안을, 그것도 비분강개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캠페인 목적이 당장 20대가 뭔가를 하자가 아니라 현 정치 상황을 알자. 그리고 선거로 우리의 뜻을 나타내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바꿔 줄 것이다. 그러니 정치참여 의식을 갖자는 뜻이었고, 그런 20대들의 행동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 거라는 걸 예상했는데 무조건 돈 문제로만 몰고 가더군요. 물론 ‘휴먼파탈’이 섬세하게 준비하지 못한 잘못도 있었지만, 언론이 주목하는 바람에 뭔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거북했어요.”

  생각과 말이 많다는 주변의 지적을 자신이 익히 알지만 캠페인을 하면서 생각이 더욱 깊어 졌음이 분명했다. ‘뭔가’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방향 전환의 길라잡이가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참여연대 회원, 인턴을 거치면서 바라본 참여연대와 비회원이었을 때 가졌던 생각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지?

  “앞서 말했듯이 참여연대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알았을 뿐이죠.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띈다는 것 정도였죠. 막상 안을 들여다보니 큰 것이 갖는 세심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걸렸어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큰 것만, 너무 급하게 갈려고만 할 뿐, 세심하고 섬세함이 없는 거 같았어요. 또 그들이 바라는 목소리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고 할까요? 제가 불평 많이 했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특히 한 간사 사모님의 소개로 유기농 밥집 알바를 했는데 멘토의 역할까지 해주시며 저가 하고자 하는 일과, 출판업에 대한 일도 가르쳐주시려고 애썼어요. 말을 줄이고 생각을 적게 하라는 충고까지 해주시면서요. 참 고마웠던 분이었어요. 또 하나 더, 간사님들 건강 좀 챙기셔요. 일도 많고 규칙적인 식사와 건강한 먹을거리를 들 수 없는 분위기라서 안타까웠어요.”

 

‘똥’- 거대한 순환의 고리

거침없는 말솜씨와 확신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져 마무리 질문은 인턴 이후의 생활로 초점을 맞췄다. 자연스럽게 캠페인 중 느꼈던 ‘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일단 한국을 벗어나서 생각하자싶어 캄보디아로 3개월 간 봉사활동을 나갔어요. 그곳 시골마을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그 꼬맹이들이 스승이었어요.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되는 애들이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은 무슨 나무이고, 이 풀은 어디에 좋고, 즙은 달콤하고…’ 채식, 생태운동을 하겠다는 내가 부끄럽더라고요. 나 또한 내가 그렇게 힐난하던 지식인과 무엇이 다른가? 자연과 땅에 대한 공부 없이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돌이켜 보는 순간 그 때의 고민과 회의가 그대로 살아나는 듯하다, 이내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인정이랄까, 단념의 한숨이랄까,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이미 그곳에도 자본주의의 물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들도 내가 가지고 있는 MP3나 내 소지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건 누구를 주고 갈 거냐? 이건 나 주셔요. 등등 아, 내가 그런 소비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왔는데 결국 나도 누구에게 이렇게 영향력을 미치는구나. 돌아가서는 땅에 내 몸을 움직여서 먹고 사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걸 느끼고 돌아왔어요.”

  그 길을 찾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가르침대로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자세로, 쉽게 말해 내가 먹고 싼 것을 내가 다시 먹는 순환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일 문제는 ‘똥’입니다. 똥이란 순환의 큰 고리인데 수세식 화장실에서 막혀버립니다. 물론 뜻이 있는 사람들은 ‘생태뒷간’을 만들어 쓰고 있죠.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게 지금의 내 문제입니다.”

  어려운 고민이지만 그 뜻에는 백배 공감했다. 자급자족의 삶, 남들보다는 불편하게 살겠다는 신념으로는 이겨내야 할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자신을 지지하고 다독여주며 즐기며 사는 사람이 어디 흔하랴. 아마 20대들의 대부분 새해 소망은 스펙쌓기 이리라. 고달픈 세상살이 내 삶의 주인공 자신을 돌보는 2012년이 되었으면 한다.

  찻상에 놓인 고깔장갑 한 짝처럼 불편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내는 그에게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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