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4월 2012-04-02   1403

칼럼-수문, 水門, Watergate, 열리거나 봇물 터지거나

수문, 水門, Watergate, 열리거나 봇물 터지거나

 

이태호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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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 친척 중에 미국에 살면서 미국계 회사의 한국 지부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이가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이 분이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해서 만났는데, 그 분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신분증을 제시했더니, 입국심사 부스의 직원이 “선생님, 노사모 회원이군요?”하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평소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던 이 분의 사생활을 국가가 염탐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 분이 노사모 회원이라는 것을 입국심사장의 공무원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저 역시 이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2008년 하반기 이후 미국에 머물면서 서울을 다녀가곤 했는데, 어느 날 인천공항 입국심사장에서 “선생님 시민단체에서 근무하시는군요?”라는 질문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아주 불쾌해져서 이렇게 쏘아붙여 주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전자여권에는 그런 것도 다 표기되어 있는 모양이지요?”

 

 

2.
국민은행의 하청업체인 <KB 한마음>의 대표로 일하고 있던 김종익씨가 ‘노사모 핵심’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국무총리실과 청와대 등으로부터 온갖 사찰과 협박을 받고 생계 수단마저 포기해야 했던 시기도 바로 그 즈음이었습니다. 2008년 하반기, 이른바 ‘촛불 배후’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공포심과 적개심이 극에 달한 시기였지요.

 

2008년 9월경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씨를 노사모 핵심으로 지목하고 그의 뒤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김씨가 그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의 BBK 관련 ‘쥐코’ 영상을 링크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국무총리실은 국민은행 간부들에게 김씨를 해촉하고 회사 지분도 처분하게 하라고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회사를 찾아와 불법적으로 회계 관련 자료들을 회수해 갔고, 김종익씨의 회사 직원들을 국무총리실로 불러 ‘취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김씨는 대표 이사직을 내놓고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야 했지요. 하지만 국무총리실의 핍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불법적 행위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김씨를 경찰서에 수사 의뢰했던 것입니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김씨와 김씨 회사의 관계자들을 불러 사건과는 관련도 없는 내용, 즉 ‘김씨가 노사모의 핵심 멤버인지, 촛불집회에 자금 지원을 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BBK관련 동영상을 링크한 것에 대해서는 검찰 스스로도 기소할 명분을 찾지 못하고 2009년 10월 결국 기소유예로 마무리하고 말았지요.

 

김종익 씨에 대한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는 2010년 6월 말 PD수첩에 방영되면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됩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총리실은 스스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여권 국회의원까지 사찰한 정황,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2급) 개인이 저지른 잘못이라고 결론짓고 실무자만 기소하는 수준에서 조사를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민간인 사찰 사건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3월 해직 기자들이 제작하는 독립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뉴스타파>가 민간인 사찰 사건에 청와대가 개입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내용을 폭로한 것입니다. <뉴스타파> 방송을 계기로 민간인 사찰 증거 은폐를 위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 민정수석실, 대통령실장까지 전방위적으로 움직였음을 폭로하는 증언과 제보들이 마치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과연 몰랐던 것일까요?

 

당시 민정수석 보좌관이었던 권재진 씨는 현재 법무장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수사가 아니라 3차, 4차 수사에 나선다 하더라도 검찰 자체의 수사로는 결코 진실이 밝혀질 리 없는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3.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에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를 불법 도청하려던 5명의 남자가 체포되면서 닉슨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간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 최초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되기도 했죠. 1974년 7월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닉슨 탄핵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탄핵안이 상하원을 통과하기 전인 8월 8일 닉슨 대통령 스스로 “이제는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기반을 상실했다”고 말하면서 대통령직 사임을 선언합니다. 탄핵의 핵심 근거는 ‘사찰 증거 은폐’였습니다.

 

“어설픈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간혹 있다”며 민간인 사찰 사건의 의미를 축소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를 통치하는데 필요한 정치적 기반’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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