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1월 2013-10-31   1392

[특집] 노동자 연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노동자 연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이랜드에 17년 동안 몸담으며 노동조합 위원장 등 상근 활동을 하다 2007~2008년 510일 장기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소장으로 재직 중임.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2013년 재벌 공화국과 비정규직 노동자

 

2013년 한국 사회를 무엇이라 부르면 가장 안성맞춤일까. 재벌 공화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토로했던 것처럼, 초법적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 현대를 주축으로 한 재벌들의 위세와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력은 청와대를 넘어선다. 황제 경영으로 이 나라의 정·관계까지 잠식해 장악한 재벌가는 자신의 통치 구역을 치외법권 지대로 만들어 온 지 오래다.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를 가감 없이 방증한다. 최종심인 대법원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조차 묵살당하고, 중앙정부에서 유일한 노동 관련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마저 위장도급에 민망한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노동기본권을 명시한 헌법과 노동관계법은 거대 재벌 기업들의 정문 앞에서 이처럼 추레한 행색으로 멈춰 서 있다.

 

한편 한국 사회 슈퍼갑인 재벌의 대척점에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1천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남한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거대한 일개미 군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가족과 이웃 중에 이미 상당수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그 격차는 매년 커져왔다. 4대보험을 비롯한 사회복지와 기업복지는 정규직 대비 1/3~1/4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200만 명을 웃돈다.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비정규직으로 퇴출되는 비정한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청년은 꿈과 희망을 잃고, 어르신들은 노후가 절망이다. 작년 양대선거 공간에서 핵심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와 복지, 그리고 좋은 일자리 논의가 한참 무색한 현실이다.

 

결국 재벌과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표되는 심각한 양상의 사회 양극화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최우선 사회·경제 민주화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노동기본권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소위 선진국 그룹인 OECD 가입국인 한국 사회에서 최소한 인간다운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는 길은 없는가. 특히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이루는 데에 밑거름이 된 노동자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이 불의하고 초라한 현실을 개선할 방도는 없는가. 여기서 가장 먼저 한국 사회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 연대를 주목하게 된다. 

 

노동자는 하나다?

 

“노동자는 하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흔히 외치는 구호다. 하지만 지금 1800여만 명의 노동자는 갈가리 찢겨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내국인과 이주민 등으로 분단돼 있다. 비정규직도 직접고용, 간접고용, 특수고용, 단시간 비정규직으로 중층화돼 있다. 10% 내외에 불과한 노조 조직률을 보면 그 실상이 더욱 적나라하다. 정규직 조직률은 20% 언저리이고 비정규직 조직률은 2%로 미미한데, 노조로 조직된 핵심 노동자들은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부문의 정규직들이다. 노조가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은 그림의 떡이다. 정규직 노조의 파업이 걸핏하면 이기주의로 내몰리고 노동자가 대다수인 일반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연대와 단결은 생존과 투쟁 승리의 유일한 비결이다. 그런데 밥그릇을 사이에 두고는 밥상이 엎어지기 일쑤여서 이게 참 쉽지 않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고용 안정의 안전판으로 여기고, 비정규직은 자신의 처지를 무력하게 감내하면서 사용주보다 정규직을 경원시하는 악순환이 지금도 견고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결국 사회적 고립에 처하게 된 정규직마저 부당한 정리해고를 당하더라도 맞서 싸워 이길 힘을 가지기 어렵다. 한때 최대 민주노조였다가 곤두박질친 KT노조의 사례에서 보듯 정규직-비정규직 단결과 연대가 실패하면 끝내 공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누구에게도 각자도생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가치이고 덕목이다. 큰 힘을 가진 갑에 맞선 을·병·정의 연대가 당연하고 절실한 이유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연대가 이뤄져야만 기득권 집단에 맞선 올바른 사회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특히 광범위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그대로 둔 채 정규직 중심의 조직노동으로는 계급 대표성 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도 획득할 수 없다.

 

노동자 연대, 왕도는 없다

 

노동자 연대는 당위로 그쳐선 안 된다. 힘겨운 과제인 만큼 살얼음판 걷듯이 진중하고 현명하게 결실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연대가 어긋나면 그 상처가 깊다. 특히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는 추상적인 의식 수준에서가 아니라 자기 사업장에서 이뤄져야 하므로, 민감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상박하후 원칙으로 우선순위를 따져 잘 조율하고 민주적 토론을 거쳐 진행해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최근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선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사업장 내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용주에 맞서서 독자적인 투쟁으로 승리를 쟁취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비정규 투쟁의 목표가 승리가 아니라 생존이라는 경험칙에서 보이듯이, 초기 단계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지지 엄호하는 정규직 노조와 시민사회의 연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부분 실패로 끝나기 십상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사용주들과 보수 언론을 비롯한 기득권 집단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한국 사회 여론 지형 속에서 노동자 내부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뿐 아니라 시민들의 노동 의제를 매개로 한 사회적 연대가 중요한 이유다.

 

노동자 연대의 특별한 왕도는 없다. 소외되고 차별받는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러 방도로 연대를 실행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노동 인권 감수성 없이 노동자 연대는 불가능하다. 노동인권 관점에서 저임금 무권리 상태의 미조직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중심에 두고 양대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청년유니온과 노년유니온 등 사업장 위주 기존 노조와는 다른 세대별 노조 등 다양한 형태로 노동자 조직화와 연대의 외연이 넓혀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시민사회도 사회적 연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 희망버스처럼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그 사회의 평균적 삶임을 인식해 노동 문제에 폭넓게 연대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의 현장이 희망이다

 

버스비를 아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 주고 야근 후 밤길을 재촉해 귀가했던 정규직 재단사 전태일 열사와 노조와 공부방이 자기 생의 전부라며 촌음을 아껴 아이들을 가르쳤던 비정규 계약직 이용석 열사가 삶과 실천으로 보여준 것처럼 노동자 연대는 일상 속에서 실행되어야 현실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노동자 연대가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바꾸는 빛과 소금으로 희망의 옹달샘이 되리라 믿으면서, 곳곳에서 고통받고 핍박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많은 분들과 만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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