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3월 2013-03-06   1864

[통인] 남쪽에는 생명, 평화, 자연, 사람 – 임순례 영화감독

남쪽에는 생명, 평화, 자연, 사람

임순례 영화감독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사진 Nina Ahn

 

임순례 영화감독

 

경복궁 서쪽 서촌의 통인동 참여연대 가는 길에 졸업식 풍경이 한창이었다. 아마 인근의 배화여고 졸업식 날이었나 보다. 영화 <남쪽으로 튀어>를 최근 개봉한, 혹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으로 더욱 잘 알려진 임순례 감독을 참여연대에서 만나기로 한 날. 근처의 졸업식으로 길이 막혔다며 회의실로 들어서는 임 감독의 첫 마디가 “왜 『참여사회』에서 저를 섭외하셨는지 모르겠네요”다. 겸손이 지나치시다. 

임 감독의 명성을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상업 영화로만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녀는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이기도 하고(해마다 복날이면 인사동에서 개를 먹지 말자는 시위를 하고, 절을 찾아 죽어간 개들을 위한 위령제도 지낸다고!), 데뷔작 <세 친구> 이후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생순>, <날아라 펭귄>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그늘진 곳을 조명하고, 거기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던 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을 자기 영화에 담고자 꾸준히 애써왔다. 

 

학교 밖으로 튄 여고생, 영화에 꽂힌 대학생

 

졸업하는 여고생들 보니까, 임 감독님의 학창시절도 궁금하다. 

 

1970년대 후반에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오로지 대학 이야기만 했다. 그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 나는 고3 초에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자퇴란 게 거의 없고 퇴학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혼자 집에서 공부해서 대학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실은 그냥 놀고먹었다. 좋아하던 소설 읽고……. 지금 이 살이 다 그때 찐 거다(웃음). 노는 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니 현실적인 고민이 들더라. 평생 놀고먹는 건 불가능하고, 고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갈 데는 공장뿐인데, 학교에도 적응 못한 내가 공장을 다녀? 그건 아니더라. 그래서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가 대학을 가게 되었고, 딱히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없고 해서, 그냥 졸업해서 취직 잘 되는 과를 찾다보니 영문과에 진학했다. 

 

임순례 감독이 대학에 간 1981년은 “어지간한 대학생은 누구나 화염병을 던지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비교적 개인주의적이던 학과 분위기를 따라 시위 일선에 서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그녀는 늘 부채의식을 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과 동기와 함께 프랑스 문화원의 영화 상영회에 갔다가 1960년대 흑백 누벨바그 영화들에 그야말로 “꽂혔”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말 이틀 간 여덟 편씩 상영하는 영화들을 빠짐없이 챙겨보기를 1년. 이제 이미 본 영화들이 다시 상영되기 시작할 즈음 임 감독은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다. 

 

한 감독 밑에 들어가 10여 년의 도제 생활을 거쳐야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던 시절, 마음에 꼭 드는 영화감독도 많지 않았고 영화 공부에 대한 의욕도 드높았던 그녀는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하지만 고전 영화들을 영화로 접근할 수 없어 책에서나 보던 시절. 지금처럼 DVD나 영화제를 통해 여러 영화를 접하는 게 불가능했던 1980년대 중반이었던지라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1988년, 파리로 영화 유학을 떠나기에 이른다.

3년 반의 파리 체류 기간 대부분을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로 보낸 뒤 귀국하니, 한국 영화 산업이 도제 시스템에서 PD 시스템으로 지형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PD 중심의 기획 영화가 탄생하고 자본도 충무로 토착 자본이 아닌 외부 자본이 들어오던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여균동 감독의 스크립터로 충무로 경험을 쌓은 뒤 제작한 단편 <우중산책>이 삼성영상사업단이 주최한 단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내친 김에 삼성의 지원을 얻어내  <세 친구>로 장편 감독 데뷔를 하기에 이른다. 

 

영화로 마음을 나누고 삶을 일구어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에서 일관되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영화를 만들려 하는가.

 

대학생 때 프랑스 문화원에서 예술영화를 보고 나오면, 경복궁에서 인천의 집까지 가는 1시간 반 동안 사랑, 죽음, 가족, 인생의 의미 등 영화의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 여운이 깊었다. 마치 좋은 문학작품이나 예술을 접했을 때처럼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인생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효과가 영화에도 있음을 깨달았다. 또 내가 가진 생각을 대중들과 나누고자 할 때 영화가 굉장히 효과적인 매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데뷔작 인터뷰에서 “100만 명이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99만 명이 잊어버리는 영화보다는 3만 명이 보고 2만 명이 기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영화를 통해 정서와 가치관을 나누면서 관객이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관객평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새벽 출근길의 리어카 끄는 미화원, 지하철역 입구에서 김밥을 파는 할머니, 모이를 먹는 비둘기 등, 예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에 시선을 주게 되었다.” 내가 영화를 통해 자아내고 싶은 모습이 바로 이런 거다. 관객의 삶이 긍정적으로 확장되고, 그게 다시 사회로도 이어진다면 참 좋겠다. 

 

그래서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건가. 최근에는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 예술가들과 함께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을 함께하셨더라. 오늘도 티베트 난민들을 돕는 ‘사직동 그 가게’에 다녀오셨다고 하고.

 

나는 정색하고 한미 FTA의 문제점을 공부한다든지 그러지는 않는 편이다. 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부한다고나 할까. 카라 활동도 그렇고, 티베트도 그렇고, 내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이면 힘을 보태려고 한다. 어려운 사람, 못난 사람,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 군상에 대한 관심은 어찌 보면 타고난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목하니 사회적 모순이 읽히고,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선 적은 힘이나마 보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임순례 영화감독

 

남쪽으로 튀어!

 

<남쪽으로 튀어>의 아나키스트 최해갑 캐릭터에 끌린 이유가 있나?

 

프랑스에 다녀와서 보니 한국은 다양성 부족이라는 병증에 시달리고 있더라. 획일적 가치관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대고 자신의 행불행을 가늠하고…….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 소설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 행복의 가치를 정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런 남자를 지지하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자극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들섬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막무가내로 쫓아내려고 용역 깡패를 동원하거나 포크레인 등 중장비로 철거하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용산 사태나 강정마을 등이 떠오르더라.

특정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개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즉 자본의 속성, 권력의 속성으로 인해 빚어지는 일이다. 원작도 도쿄의 거대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않고 조상이 살던 섬에 가서 자연인으로서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결정조차 허락하지 않는 자본의 탐욕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그런 설정을 영화로 가져온 것이다. 

 

영화 속 최해갑은 ‘남쪽’으로 떠났다. 우리의 남쪽,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남쪽’은 어디인가?

 

실제 존재하진 않으나 모두가 꿈꾸는 ‘이어도’라는 섬이 우리 이야기에도 등장하지 않는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은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는 완벽한 이상향을 꿈꾸는가보다. 원작 소설도 현실에서 꿈꾸던 섬으로 가는 구성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마련한 우리 삶의 행복의 기준들, 이를테면 아이들 교육 수준이라던가 아파트 평수, 자동차 크기, 월 수입 등, 이런 것들이 오히려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 삶의 가능성을 억누른다. 최해갑처럼 사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삶의 기준의 프레임을 바꾸는 것, 가치관의 경계를 자유롭게 하는 것, 삶의 본질을 좀 더 고민하는 것, 그게 남쪽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그 길은 자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남이 대신 찾아주는 게 아니다. 행복의 틀, 그 경계를 훌쩍 뛰어넘으면, 행복의 다양성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너머에 남쪽의 이상향이 있지 않을까.

 

최해갑은 바다를 건너 들섬으로, 그리고 또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갔다. 우리 또한 자기 마음의 바다를 넘어 어딘가 남쪽을 찾아가야 한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 행복의 기준도 저마다 달라야 한다는 임순례 감독 자신의 행복은 무언가를 물으니, 소박하셔라. “자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양평으로 이사 가서 시골에 산다. 내가 말하는 ‘자연’은 ‘자연스러운 모든 것’이다. 음식이든 사람이든 환경이든, 꾸밈없고 순수한 것이 좋다”고 한다. 탐욕에 맞설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어쩌면 꾸밈없는 순수함일지도 모른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로만 보이던 임순례 감독은 사는 모습 그대로를 꾸밈없이 내보여 더욱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촬영 현장에서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길게 이어졌다. 특히 임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등장했던 동물 출연자들이 촬영 이후에도 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손을 쓰는데, <남쪽으로 튀어>의 염소 얌생이는 주인으로부터 잡아먹지 않고 자연사할 때까지 보살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시골에서 염소는 대표적인 식용 가축인 탓에 임 감독은 그 주인에게 자주 얌생이의 안부를 물으며 얌생이의 동물권을 챙기고 있다. 

소수자와 동물, 모든 생명에 가 닿는 임순례의 따뜻한 시선. 앞으로 임 감독이 주목할 우리 시대의 그늘, 우리의 삶과 사회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남쪽으로의 상상력을 자극받게 되리라. 그늘 속의 이상향 찾기, 예술 영화에서 생명의 영화로 이어지는 임순례의 삶과 영화는 바로 그런 탐색이다. 

 

박유안 <바람구두>라는 출판사도 하고 있지만, 요즘은 연애, 여행, 혁명, 참선 등 일 아닌 다른 온갖 것들을 읽고 쓰고 옮기는 일에 더 재미가 좋다.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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