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5월 2013-05-10   1178

[역사] 어린이에게 민주주의를!

어린이에게 민주주의를!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사회 2013년 5월호 (통권 198호) <역사>

 

인류 최대의 기념일, 어린이날

 

어린이날은 130여 개 나라가 공통으로 기념하고 있는 인류 최대의 기념일이다. 저 멀리 독일은 6월, 아르헨티나는 8월, 오스트레일리아와 유고슬라비아는 10월, 가까운 중국과 북한은 6월 1일, 타이완과 홍콩은 4월 4일에 어린이날을 기념한다. 한국과 일본은 5월 5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성대한 어린이날 행사를 치른다. 어린이날이 세계적인 대축제일이 된 것은 1954년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먼저 어린이날을 기념했다. 4월 4일, 5월 5일, 6월 1일이라는 기념일 제정에도 각기 나름의 역사가 묻어나는 사연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어린이날을 만들어 기념한 것은 1922년 식민지 조선의 방정환이 이끌던 천도교소년회였다. 노동절이기도 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1927년에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꿨다. 중국에서는 1930년대 국민당 정부가 4월 4일을 아동절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본래 3월 3일은 여자 어린이날, 단오인 5월 5일은 남자 어린이날로 삼아 전통 의례를 치르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이 중 5월 5일을 1920년대 중반부터 아동애호데이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1949년 국제민주여성연맹이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 수용되었다가 희생된 체코슬로바키아 리디츠마을 어린이들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국제아동일(6월 1일)을 기념하고 있다. 북한 역시 6월 1일을 국제아동절을 기념하고 있으나, 대륙으로부터 밀려난 국민당 정부의 타이완은 지금도 4월 4일을 아동절로 기념한다. 그리고 한국은 1946년부터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고 있다.   

 

 

어린이만이 행진 할 수 있었던 시절

 

무엇보다 나라 없는 조선인이 선구적으로 어린이날을 기념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천도교소년회 주도로 탄생한 어린이날은 이듬해인 1923년부터는 소년운동단체들이 연합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해 어린이날 서울에 뿌려진 선전지가 무려 12만 장에 달했다. 어린이날 행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1928년에는 50만 명의 어린이가 참여하며 대성황을 이뤘다. ‘희망을 살리자, 내일을 살리자’라는 간절한 구호를 앞세우고 1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서울 거리를 행진했다. 감히 어른에게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던 식민지 현실에서 대낮에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고 어린이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누비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마음은 아마도 뭉클했을 것이다. 어른들도 그 마음을 모아 어머니대회, 아버지대회 등의 집회를 열어 어린이날 행사에 동참했다.  

 

행진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붉은 글씨로 어린이날이라고 쓴 띠를 어깨에 두르니 붉은 글씨가 불온하다며 저지당했다. 무심결에 그 띠를 두르고 나갔다가 경찰에게 빼앗기고 만 어린이도 있었다. 붉은 색의 깃발을 들고 가려다 불온하다는 이유로 행진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어린이들은 차츰 부당한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식민 독재 권력에 의해 집회와 결사의 자유, 바로 민주주의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을. 

 

 

민주주의 새 세상의 동량이 되라

 

어린이날에 온 한반도를 해방구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바로 방정환이다. 그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강제적이고 위압적인 문화가 판을 친다”며 학교 교육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런 반민주적 교육과는 정반대로 방정환이 꿈꾸던 교육은 어린이가 요구하는 것을 주고 어린이에게서 싹이 돋는 것을 북돋는 활동을 의미했다. 어린이가 저희끼리 자유롭고 재미있게 기운껏 활활 뛰면서 자라도록 애정을 갖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정환은 그런 교육은 학교라는 일본이 만든 식민지형 시스템이 아니라 조선인 사회 안에 터를 잡고 있는 소년회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방정환은 자신이 이끄는 천도교소년회를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을 길러내는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키워나갔다. 어린 회원이지만, 집회와 회의에 참여하고 임원을 선거할 권리와 함께 피선거권이 공정하게 주어졌다. 또한 회원 상호 간에는 물론이요, 방정환과 같은 지도위원과 회원 간에도 반드시 경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에서 높임말로 서로를 경애하고, 상부상조하며 함께 모여 심신을 단련하는 실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방정환이 그 민주주의 요람의 사회적 확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미래의 동량을 길러내고자 기획한 것이 바로 어린이날이었던 것이다. 

 

 

방정환은 요절했고, 조선총독부는 어린이날 행사를 금지했다. 그리고 1946년 어린이날이 부활했다. 허나, 민주주의형 인간을 길러내고자 했던 방정환의 야심 찬 기획도 부활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당시 어떤 연고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는지 지금도 알 도리가 없다. 우울한 추측이지만, 조선인 사회가 경축하던 어린이날과 달리 일본과 조선총독부가 5월 5일을 아동애호데이로 기념하던 궤적을 그대로 좇은 것은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어린이날 행사가 금지된 이후에도 아동애호데이는 1945년까지 기념되었고, 이후 일본과 한국은 똑같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고 있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