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0월 2013-10-07   12219

[통인] ‘드러내기’는 오래 계속된다 –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참여사회 2013-10월호 이미지

 

‘드러내기’는 오래 계속된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박유안 사진 박영록

 

여기 부부가 있다. 19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각별하다. 한 명은 철없이 발랄하고, 한 명은 그윽하고 면밀하다. 한 명은 쉼 없이 일을 도모하고, 한 명은 그 일을 준비하고 매듭을 짓는다. 한 명은 “당신의 잔소리를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다른 한명은 “얼굴에 나이의 그림이 그려지는 걸 아름답게 지켜보겠습니다”라고, 서약했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부부는 둘 다 남자다. 지난 9월 7일 그들은 결혼했다.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 부부를 만나 그들의 게이인권운동과 삶에 대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게이로 살기, 어떤가.

광수  나부터도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에 익숙했던 탓에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긴 자기부정의 시간을 겪었다. 나도 그런 시각에서 동성애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달을 때, 그 갑작스러움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거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구나’라는 감정을 스스럼없이 인정할 수가 없었다.  

 

 ♂♂김승환 대표는 어땠나? 

승환  경남 창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지방에서는 동성 친구들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동기들이든 선생님이든 그냥 누구나 다 거치는 또래 문화 정도로 용인했다. “남자가 남자 좋아할 수도 있지. 그땐 다 그래. 하지만 대학 가면 바뀔 거야.”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좀 여성스러운 애’ 정도로 인식됐고, 괴롭힘이나 차별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문제는 대학에 가서 일어났다. MT 가서, 또는 술자리에서 남녀가 쌍쌍이 사라지면 나 혼자 남곤 했다. 나 스스로 모임에서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자리를 피해주는 일이 거듭되면서, 힘들었다. 그러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친구사이’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돌아보니 인터넷을 통해 모이는 작은 소모임이 아니라 단체의 모임에 나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 게이에 대한 바른 정보를 얻고, 잘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학교에선 내가 제일 여성스러운 애인 줄 알았는데 단체에 와서 보니 난 아무것도 아니더라. (웃음) 그게 참 행복했고, 그때부터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었다. 

 

광수  15년의 힘들었던 자기부정 끝에 내가 깨달은 건 이거였다. ‘아, 나도 사회의 차별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구나. 자신도 긍정하지 못하면서 사람들더러 나를 긍정해달라고 기대했구나. 나부터 나를 긍정해야 하겠구나.’ 동성애에 대한 넘치는 정보들이 거의 부정 일색이다. 인구의 5%, 많게는 10%가 동성애자라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하며 괴롭게 사는 건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 이제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도록 일러줘야 한다. 캐나다, 독일 등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하는데, 동성애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이다.

 

  ♂♂성문제를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동성애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지체된 느낌이다.

광수  그건 이성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으로 치부되고, 남성 중심으로 성문화가 형성되어 여성에겐 억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동성애의 경우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다문화나 이주민 문제에 비교해봐도 사회 전반의 인식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승환  동성애자는 불행할 거라는 편견이 너무나 견고하다. 당장은 동성애에 끌리더라도 긴 장래를 두고 보면 결국 불행할 거다, 그러니 이성애자로 살아라, 이런 얘길 자꾸 듣다 보면 ‘남들처럼 이성애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선택의 문제로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터져 오르는 자신의 여성성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노력이 힘겹게 이어진다. 

 

 ♂♂그동안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오셨다.

광수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그간 ‘우리도 살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친구사이’는 20년 동안 그렇게 존재 드러내기 활동을 계속했다. 괴로워하는 성소수자들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알려서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함께할 방법을 알려주고, 이성애자들한테도 자기 주변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일러줌으로써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드러낼 공간과 힘을 갖게 했다. 우리가 공개 결혼식을 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를 드러냄과 동시에 성소수자의 법적 지위와 권리를 보장할 때가 됐다. 차별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게이도 평등하게 결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공개 결혼식을 구상했다. 

 

참여사회 2013-10월호 이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게이는 한때 ‘호모’라 불리며 별종 취급을 당했고, 몹쓸 병에 걸렸다고 인식되었고, 죄를 짓는 거라고 내몰리기도 했다. 그런 편견의 잔재는 아직도 뿌리 깊고 위력적이다.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에 대해 지닌 가장 대표적인 편견, 어떤 게 있나. 

광수  ‘동성애는 더럽다’는 반응이 많다. “걔들 항문성교 한다며? 거긴 섹스 하는 기관이 아니잖아? 똥 싸는 데잖아. 더러워.” 호모포비아가 가장 열렬히 공격하는 게 바로 이런 가공된 이미지다. 동성애자들은 섹스에만 혈안이 되어 문란한 성생활을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승환  동성애자들이라 하면 왜 섹스만 떠올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사실 이성애자 커플도 섹스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섹스는 누구에게든 삶의 일부분일 뿐인데. 

 

광수  호모포비아들이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예전엔 심지어 ‘동성연애자’라고 부르면서 아예 연애만 하는 인간 취급을 했다. “내 취향은 저게 아냐, 나는 달라”라고 하면 될 일을 “으악 토 나와, 역겨워”라는 식의 막말을 퍼붓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당연한 커플, 당연한 결혼식 

 

동성끼리도 숭고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법적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함께 어울려 살기를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런 바람을 담은 이 커플의 결혼식 이름은 ‘당연한 결혼식’이었다.

 

 ♂♂‘당연한 결혼식’ 어땠나.

승환  지난 9년간 연애를 하면서 1년에 한번 싸울까 말까 했는데, 이번 결혼식 치르면서는 거의 매주 싸웠다. 개인적 행복까지 희생하며 이런 사회적 퍼포먼스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나 싶어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마구 일어났다. 결혼식 당일 노래를 할 때도 (김조광수) 감독님은 음정 틀리고 박자 틀리고 대사 틀리고, ‘아 정말, 끝까지 연습 안 했구나’ 싶어 속으로 정말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서약식을 할 때서야 여유가 생겨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 명이 넘는 하객들이 행복해하는 기운이 느껴지면서 비로소 ‘아 정말 잘했구나’ 하면서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광수  운동적 차원에서 펼친 이번 결혼식이 큰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예식의 규모를 너무 키웠다. 나는 학생운동을 오래 했고, 인권운동도 했고, 영화도 운동 방식으로 했지만, 승환 씨는 그렇게 살아오질 않았다. 그래서 준비가 안 된 승환 씨는 많이 힘들어 했다. 

승환  (김조광수 감독이) 일을 벌이고 던져주면 내가 수습해야 했다. 다시는 안 할 거다. 어휴~ (웃음)

 

 ♂♂공개 결혼식으로 의도한 바가 달성되었나.

광수  동성 간의 합법적 결합 논의가 촉발되었다는 데서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서구에서는 14개 나라가 이를 합법화했는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의조차 없었다. 이제 “아 저들도 그저 인생의 동반자를 찾고자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과 거기에 이어지는 고민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참여사회 2013-10월호 이미지

 

새로우면서 의미가 있게끔,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게끔, 퇴색해버린 마을축제로서의 결혼식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되살리게끔, 그렇게 참 많은 의도와 섬세함을 담아 결혼식을 치렀다. 인권단체들과 손잡고 혼인신고를 비롯한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후속 절차들을 함께하기로 했다. 결혼식 전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 중이다. 장희선 감독이 이성애자의 시선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일그러진 차별 투성이 사회 구조를 향한 이들의 드러내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보다 발랄한 방식으로, 즐거운 자리에서 말한다. 여기 게이가 있다고, 게이도 여러분의 이웃이라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 더 즐겁지 않겠냐고. ‘신나는센터’ 건립 구상도 그 일환이다. 한국형 LGBT센터를 세워 성소수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사랑스런 게이 커플의 건강한 앞길에 많은 성과가 있기를 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 사회도 그만큼 무지개 빛으로 풍성해질 테니까. 

 

‘당연한 결혼’ 축의금은 신나는센터 건립 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축의금은 생각보다 적게 모였다는 후문. 신나는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은 계속 진행 중이다. 축의금 보내실 곳 국민은행 408802-01-280403 예금주 김승환 (당연한결혼축의금)

 

박유안 기웃기웃 변역가
‘바람구두’라는 출판사도 하고 있지만, 요즘은 연애, 여행, 혁명, 참선 등 일 아닌 다른 온갖 것들을 읽고 쓰고 옮기는 일에 더 재미가 좋다.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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