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8월 2014-08-04   4424

[특집]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특집 일과 휴가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왜 사람들은 일하는가? ‘먹고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먹고산다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식, 의, 주 등 기본 생계를 해결하며 목숨을 잇는 것만 뜻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생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넘어 뭔가 고차원적인 것도 이루려 한다. 그게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일을 하면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나름의 기쁨과 보람을 찾고자 한다. 일례로, 2014년 6월 18일 통계청의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가사’와 ‘육아’를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는 708만 2,000명으로 2013년 5월보다 2.6%(19만 1,000명) 줄었다. 즉, 최근엔 전업주부가 줄어들고 새로이 취업 시장에 진입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주부들이 굳이 집에 머무르지 않고 취업 전선에 나서는 것은 경제 상황 악화로 추가적 돈벌이를 해야 하는 측면도 크지만 그와 더불어, 사회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도 있기 때문이다. 일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일정한 조직생활 또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개인의 고립성이나 외로움을 넘어 ‘사회적 인간’으로 서기 위한 중요 과정이다.

 

다음으로, 일 또는 일자리가 자아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실, 노동사회란 일종의 ‘명함사회’ 아니던가? 명함사회란 명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사회이며, 명함이 상대방과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윤활유 역할을 한다. 명함 속에는 자신의 소속이나 지위가 명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결국 명함은 자신이 어떤 조직에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지위를 누리는지 등, 즉 자아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가 된다. 물론, 한국과 서양은 차이가 있다. 즉, 미국인의 명함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 한국인의 명함은 자신이 어느 조직에 속해 있으며,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가 주로 명시된다.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일의 의미를 망각한 사회

 

그런데 앞서 말한 관계 형성의 측면과 자아 정체성 측면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일을 매개로 자아 정체성과 관계 형성을 동시에 한다. 사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따라 상대방과의 관계 형성 방식도 달라진다. 역으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가 하는 점은 자아 정체성을 형성 내지 증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도 생겨났고, ‘직업은 못 속인다’는 말도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한편, 오늘날 사람들은 갈수록 일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면 농민들이나 수공업 장인들은 자신의 일이 가족은 물론 이웃 모두의 ‘인간적 필요’를 위해 대단히 유용하며 가치 있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기계제 대공업의 등장, 산업화, 경쟁 격화, 거대화, 관료화 등의 과정은 갈수록 인간 노동을 무의미한 톱니바퀴 역할 정도로 격하시켰다. 자동화, 로봇화, 컴퓨터화, 네트워크화 과정은 사람들이 어떤 맥락에서 무슨 의미로 이 일을 하는지 파악하지도 전에 오로지 효율과 수익만을 위해 기능하도록 요구한다. 이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성과는 낼지 모르나, 과연 이 일이 자신의 인생이나 전체 사회에 무슨 의미를 띠는지 물어볼 여유조차 잃었다. 가장 서글픈 예가 바로 대학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진리나 정의를 내세우지만 이것은 ‘브랜드’ 역할만 할 뿐, 교수의 교육과정이나 직원의 행정과정은 수익성이나 효율성에 경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럴수록 일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더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돈벌이 일을 통해, 아니면, 그 일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 자신이나 타인, 나아가 세계 전체를 억압하거나 파괴하는 데 일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농민들은 돈벌이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한다. 이로 인해 농약에 중독되고 땅을 황폐화하며, 소비자의 건강을 망친다. 암 발병의 위험도 높아진다. 학생들은 돈벌이 취업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 열정을 투입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의 의미’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자동차 또는 휴대폰 공장 노동자들은 시간 당 임금은 많이 받을지언정 노동과정에서 피로도가 높아지고 과로사의 위험이나 백혈병의 위험에 노출된다. 소비자들은 속도나 소통의 편리함에 중독되어 가고 석유나 전기 사용은 급증하며, 지구 자원은 급속히 고갈된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증가하고 전자파의 폐해도 커진다. 돈이나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우리는 ‘왜’ 이런 식의 노동을 계속해야 하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묻지도 못하는, ‘생각 없음’의 덫에 갇혀버린다.

 

일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실제로, ‘취업 준비’와 ‘스펙 쌓기’로 힘겨운 대학 시절을 보낸 대졸자 4명 중 1명이 취업 후 1년 이내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4년 6월 말경 발표한 <2014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전국 405개 기업 대상)>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1년 내에 퇴사하는 비율이 무려 25.2%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더욱 심해 31.6%로 나타났다. 이들이 퇴사를 선택한 이유는, 조직 및 직무 적응 실패 47.6%, 급여나 복리후생 불만 24.2%, 근무지역과 환경에 대한 불만 17.3%, 공무원 및 공기업 취업준비 4.5% 순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조직 및 직무 적응 실패 속에는 ‘자신의 꿈과 조직의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즉,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멋진 인생을 설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기업 조직의 현실은 전혀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역으로, 조직 및 직무 적응에 성공한 이들은 좋게 보면 일과 자신의 꿈이 일치하여 만족한 이들일 것이고, 나쁘게 보면 아주 일찍부터 일의 의미나 가치에 대한 질문을 포기해버린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중독’에 빠지지 않는 한, 40대 무렵이 되면 ‘회의’를 느끼거나 ‘우울’에 빠지기 쉽다. 일이나 인간관계, 인생의 의미 등과 관련해,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 불안, 두려움, 중독 등 마음의 병이 생긴다. 예컨대, 한국의 18세 이상 성인 6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마음의 병을 경험한다는 보고가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경엔 우울증이 OECD 국가의 질병 부담 1위 질환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우울증은 개인에게 심적 고통뿐만 아니라, 가정과 인간관계, 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심한 경우에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 정도의 대우를 받아야 하고, 또 이를 넘어 인간적 관계 형성이나 건전한 자아 정체성의 형성, 의미 있는 일을 통한 자아실현과 삶의 보람 등 다차원의 목표를 이뤄야 한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현실은 경쟁력과 효율성 담론이 지배하고 상부의 명령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에만 온통 골몰한다. ‘노동해방’을 외치는 노동운동조차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놓은 분할의 경계선 안에서 사고하는 편협성이 강하고 그마나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도 안 된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나 관심사를 반영하여 공부하고 그에 걸맞은 일을 선택하게 해주어야 하며, 또 사회는 아이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부심이나 자존감에 손상을 주지 않을 정도의 평등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가정, 학교, 직장, 노조, 정치, 사회가 모두 변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의미 있는 혁신적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온 사회에 활기와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강수돌

돈의 경영이 아니라 삶의 경영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대학 선생입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시골 마을 이장도 지냈습니다. ‘노동-경제-교육-생태’ 문제를 패키지로 풀어야 희망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나부터 시작해서 더불어 변화해야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일류대학이나 일류직장보다 중요한 것이 일류인생이라 믿습니다. 꿈을 발견하고 실력을 키워 사회 헌신을 한다면 누구나 일류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최근 지은 책으로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등이 있습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