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0월 2014-09-29   1752

[역사] 멈춰선 시계, 1994년 10월 21일

멈춰선 시계, 

1994년 10월 21일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사회 2014년 10월호 (통권 215호)

 

성수대교의 경고를 무시한 대한민국

참여연대가 출범한 1994년, 그해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오전 7시 40분께 성수대교 중간 상판 48m가 끊어져 떨어지면서 다리 위를 지나던 시내버스와 봉고차, 승용차 등이 그대로 한강에 추락했다. 버스와 승용차에 타고 있던 시민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한겨레신문> 1994년 10월 22일 자 사설 ‘무너지는 다리, 무너지는 민심’은 그 때의 참담한 현실을 이렇게 전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의 큰 다리가 잘린 두부토막처럼 풀썩 내려앉았다. 등굣길 어린 여학생들, 출근길 시민들의 참혹한 죽음에 가슴 치는 가족 친지와 친구들의 통곡이 마치 국민의 생명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와 정부에 대한 원망처럼 들려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상판 위에 뒤집힌 버스와 으깨어진 승용차를 얹은 채 강물에 처박힌 그 해괴한 붕괴현장이 우리 사회의 마비된 이성, 정부의 국가 관리 능력의 부재를 고발하듯 처절하다. 서울 한가운데, 그러니까 대한민국 한복판의 가장 번잡한 다리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그런 모습으로 무너진 것은 우리 사회, 우리 정부의 총체적 능력과 수준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고통스럽게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 읽는 동안 가슴이 따끔거린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개탄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20년 전, 성수대교 붕괴가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건만, 대한민국은 또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그렇게 20년이란 세월을 하루가 다르게 솟는 고층빌딩에 취해 사는 동안,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깊이 곪아있던 고름이 터지며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이 되풀이된 것이다.

 

참여사회 2014년 10월호 (통권 215호)

 

국가란 무엇인가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 야당인 민주당은 내각 총사퇴를 촉구했고 여당 일부 의원이 이에 동조했다. 국무총리와 서울시장이 그날로 사표를 제출했다. 서울시장의 사표는 당일에 수리되었고 새 서울시장이 임명되었다. 서울시는 다음날 신문에 사과문을 내고 “빠른 시일 내에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여 그 결과를 시민 여러분에게 낱낱이 공개하고 철저한 책임 소재를 밝히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검찰은 관리 책임을 물어 서울시의 동부건설사업소 관계자 5명을 구속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고 3일 만인 24일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래도 민심은 싸늘했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데다가 사태 수습 태도도 너무 소극적이고 불성실하다는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에 대처하는 김영삼 정부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또 가슴을 쓸어내린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첫날 174명을 구조한 외에 단 한 명도 더 구조하지 못했으면서 박근혜 정부는 1주일이 넘게 ‘구조’를 핑계로 대통령이 진도를 찾은 것 이외에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마땅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 정치권도 우와좌왕했다. 그래서 국가에 분노한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자식의 사진을 끌어안고 농성하는 참담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게 나라인가 싶다. 1994년 10월 23일 자 사설 ‘국가부실경영의 책임’에서 <한겨레신문>은 이렇게 김영삼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 

 

“성수대교의 붕괴는 단순한 다리공사의 부실을 넘어 나라의 부실을 드러냈으며 그 부실의 최종적인 책임은 바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게 있다.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세력이 이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올바른 수습의 출발점이다.”

 

시민은 성찰의 길을 잃었다 

<한겨레신문> 1994년 10월 25일 자 사설 ‘대통령이 민심을 너무 모른다’에는 2014년을 살아가는 시민을 부끄럽게 만드는 주장이 실려 있다. 

 

“국민들이 성수대교 사태와 관련하여 보이는 태도가 심상치 않다. 이번 사태를 다리 하나가 무너진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의 총체적 후진성인 부정부패, 적당주의, 인명 경시, 이기주의, 그리고 부도덕한 생활 태도 등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분노와 함께 개인적으로도 자기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 테면 ‘우리는 아직 중진국에 들어선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고가 난 날을 국치일로 정하자’,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존하여 반성의 자료를 삼자’. 이런 깊은 반성의 이야기들을 서로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누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딘가 근본부터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것일 것이다.”

 

분명,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걸 TV로 지켜보면서 충격에 빠졌던 시민도 ‘이렇게 살지 말자’며 성찰하고 반성했다. 그리고 이내 망각했다. 그렇게 나라도, 시민도 망각의 늪에 빠져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린 끝에 미래의 기둥인 학생들을 어처구니없이 떠나보냈다. 대한민국의 시계는 아직도 1994년 10월 21일에 멈춰 서있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