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5월 2015-04-30   1721

[특집]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나?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나?

 

이정아 노동경제학 박사

 

비가 조금씩 흩뿌릴 때에는 우산을 쓸까, 더 많이 내릴 때까지 그냥 비를 맞으며 걸을까 고민이 된다. 그럴 땐 주변을 둘러본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 중에 우산을 편 사람이 많으면 나도 펴고, 대부분이 그냥 걷고 있으면 나도 그렇게 한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에는 길을 걸을 때 양산으로 머리 위 그늘을 만들면 훨씬 낫다. 양산의 그늘이 주는 시원함에는 남녀가 없을 텐데, 어쩐지 양산을 든 남자는 보지 못했다. 아마도 비가 올 때 우산을 쓴 ‘다른 사람’이 있는지를 보는 것과 달리, 뜨거운 여름 볕을 피하려고 양산을 쓴 ‘다른 남자’는 없다는 사실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노동력의 가격 
강우량과 우산을 쓴 사람 수의 관계에 대한 두 종류의 이론이 있다고 하자. 그 중 하나의 이론은 강우량과 우산을 쓰는 비중 간에 일정한 함수관계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비가 더 많이 오면 그만큼 우산을 쓴 사람의 비중도 늘지만, 늘어나는 정도는 점점 감소한다. 그러나 다른 이론에 따르면 강우량이 많을수록 우산을 쓰는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성 정도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늘어나는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똑같이 비가 흩뿌릴 때 테헤란로의 행인들은 다들 쓰고 있는 우산을 소래포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다.
똑같이 비가 내렸던 어제는 우산을 썼지만 오늘은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비를 맞고 있는 나는 예외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면 테헤란로에서도, 소래포구에서도, 그날이 오늘이든지 내일이든지, 누구라도 우산을 쓸 것이다.

위의 가상적인 두 이론은 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는 경쟁하는 관점들에 관한 비유이다. 현대 경제학의 지배적인 관점은 임금과 노동 간에 일정한 함수관계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기여한 생산물의 ‘시장’가치만큼을 임금으로 받는다. 반면 고전학파와 마르크스주의, 제도주의 등은 임금이 ‘사회’적으로 결정된 노동력의 대가라고 설명한다. 고전학파는 그 수준이 노동자의 생존비와 같다고 했지만, 마르크스를 비롯한 이후의 학자들은 노동조합의 협상력과 교섭, 관습과 규범, 일자리 특성, 공정성에 대한 인식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임금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 임금은 노동이 아닌 노동력에 대해 지불된다. 임금이 실제 수행된 노동의 양이 아닌 노동하는 능력인 노동력에 대해 지불되므로, 임금과 노동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의 협상을 통해 임금이 인상된 경우 시장가치의 관점에서 이것은 시장 왜곡의 부적절한 결과이다. 우산을 쓴 사람의 비중이 50%가 될 강우량이지만 비 오는 날 누군가의 실수로 분수가 솟는 바람에 80%가 우산을 쓰게 된 셈이다. 그러나 사회적 결정의 관점에서 이는 권력 지형의 반영이다. 절반 정도가 우산을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쓰는 것은 당연하다.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임금은 사회적 인식의 산물
작년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서는 임금 구성항목을 단순화하고 성과급의 비중을 높이며 직능급 또는 직무급을 도입할 것을 권장했다. 여기에서 개편의 필요성이 논의되는 대상인 ‘임금체계’라는 용어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임금을 복잡하고 다양하며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임금체계이다.
임금체계라는 용어는 심지어 두 가지 의미로 모두 쓰인다. 먼저 임금의 ‘구성 항목’이라는 의미에서, 기본급에 주휴수당, 연장수당, 근속수당, 상여금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임금 총액을 기본급과 상여금으로 단순화하자는 것이다. 또한 임금의 ‘결정 기준’이라는 의미에서, 근속 기간이 길수록 높은 임금을 받는 연공급 대신 직무의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직능급이나 직무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는 직무급으로 대체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임금의 적절한 결정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임금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지배적 관점이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요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실에서는 동일한 노동에 대해 임금이 다르게 지불됨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한 공장 안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받는 임금이 서로 다른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독일이나 스웨덴에서라면 용납되지 않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버젓이 벌어지고 용인되는 상황이, 우산을 쓰고 싶어도 지나가는 사람들 중 누구도 쓰지 않은 점을 의식해서 주춤거리다 비를 맞는 것과 같다고 하면 지나칠까?

 

평균임금 인상, 결국 사회적 합의의 문제
구직자는 단순히 자신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예산 수준만을 고려하여 적절한 임금수준을 판단하지 않는다. 사회적 평균 임금,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받는 임금, 비슷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받는 임금과의 비교는 중요한 판단 준거이다. 임금을 지불하는 고용주의 판단 준거도 비슷할 것이다.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시급수준이 논란이 된 이유는 유사한 유통업체가 고용하는 유사 노동자의 시급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임금의 결정은 이와 같이 다분히 ‘사회’적이다.
노동조합과 사용자 조직 간의 임금교섭을 전국 수준에서 실시하는 스웨덴이나 산업 수준에서 실시하는 독일의 임금격차는 기업별로 교섭을 하거나 전혀 하지 못하는 한국에 비해 적다. 게다가 평균적인 수준도 높다. 권력 지형이 반영된 결과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격차를 줄이며 높아졌던 사회 전체의 임금구조는 외환위기 이후 낮은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사회적 임금결정에 의해 형성되는 임금구조의 저임금화 경향은 사회 구성원 중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을 우울하게 하는 지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향이란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임금결정이 사회적이라면 바꿀 가능성도 사회 안에 있다. 그 방향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도출하고 방법을 모색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언젠가 유명 디자이너 덕분에 유행이 된다면 양산 쓴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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