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7월 2015-07-02   1214

[특집] 생명과 맞바꾼 전기요금 인하?

특집 복/불복

 

생명과 맞바꾼 전기요금 인하?

 

 

글.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탈핵팀장

 

예기치 못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많은 사업과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여러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이 일시적으로 휴업에 들어갔고, 다중이 모이는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다. 경기침체가 우려될 정도로 경제활동도 위축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실제 위험보다 더 큰 불안과 걱정이 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나온다. 실제 위험의 크기는 시간이 한참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위험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작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국회 등은 안전을 제일 우선해 국가와 사회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크게 나아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불안을 틈타 불안한 원전확대
메르스 사태에서도 안전을 무시한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보면서 ‘만약 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위험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데, 원전사고와 같은 대규모의 복합적이고,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럼에도 정부의 원자력발전확대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메르스 사태를 틈타 잘못된 정책들을 밀어붙이기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18일 공청회를 통해 정부는 제7차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2029년까지의 전력수급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는 이번 계획에서 정부는 추가로 원전2기(3GW)의 발전소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미 건설계획 중인 11기의 원전도 모자라 신규원전을 2기나 더 짓겠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를 비롯해 올바른 전력정책을 고민해온 많은 사람들은 최근의 전력수요와 기 건설계획 중인 발전소용량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발전소를 늘릴 필요가 없다고 비판해왔다. 최근 전력수요 증가율이 많이 감소하고 있고, 특히 작년에는 전력소비가 불과 0.5% 증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전력수요가 정체상태인데,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발전소부터 많이 늘리고 보자는 것은 전력수급의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밖에 없다.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재생에너지를 죽이는 석탄과 원전
한국은 전기생산에 있어 주로 석탄화력(40%)과 원전(30%)에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석탄화력과 원전을 기저부하주어진 기간 동안의 최저 부하. 전체 부하 중 24시간 또는 일정 시간 동안에 계속적으로 걸리는 부하로 하는 상황에서 그 외의 다른 발전이 설자리마저 잃게 만들고 있다.

가스LNG 발전의 경우, 평상시에는 멈춰 있다가 전력이 모자라는 경우에 가동한다. 그런데 최근 전력수요가 예상보다 많이 줄고, 석탄과 원전을 많이 늘리다 보니 가스발전의 가동률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2년 최대 65%에 이르던 가스발전의 이용률은 2014년에 51%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달려들던 LNG 발전사업의 손실이 급증했으며, 이제 고사위기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전력시장가격SMP, 계통한계가격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원자력과 석탄위주의 발전만으로도 전력이 많이 남다보니, 당연히 SMP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 역시 판매수익이 많이 줄어들어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가 각 에너지원이 경쟁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도한 수요예측, 석탄과 원전 중심의 과도한 전력공급정책이 가스발전과 재생에너지를 고사위기에 빠뜨린 것이다. 현재처럼 석탄과 원전을 중심에 놓는 한 재생에너지 공급을 비약적으로 늘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전기가 부족하다며, 요금은 할인? 
이런 상황을 의식했던지, 정부는 6월 21일 급기야 전기요금을 할인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올해 7~9월 동안 일부구간 누진제완화, 산업용 요금은 중소기업에 대해 8월부터 1년 동안 경부하 요금제를 토요일에도 적용해 요금을 인하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매년 여름마다 전력이 모자란다며 전기를 아껴 쓰고, 발전소를 더 많이 지어야한다고 주장해 온 정부의 입장과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전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발전소를 더 짓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함일까. 안 그래도 전력사용량이 늘어나는 여름철에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것은 세계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비상식적인 정책이다. 이는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의 정상화와 전력수요를 줄이기 위한 전사회적인 노력과 시민들의 실천을 한 번에 무력화시키는 잘못된 정책이다.

지금 취해야 하는 조치는 전력수요가 과도하게 예측되었음을 인정하고, 무분별하게 추진해 온 석탄과 원전 증설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 전력수요급증을 이유로 더디게 성장해왔던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확대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위기가 온다
최근 정부는 수명이 끝난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결정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와 폐쇄해도 전력수급의 차질이 없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원자력계 일부에서는 고리1호기 폐쇄를 정치적으로 결정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번 폐쇄결정을 결코 우연의 요소로만 볼 수는 없다. 앞서 본 것처럼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발전소를 무리하게 늘릴 필요가 없으며, 줄여나갈 수 있는 산업구조로 변화하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보다 앞서 선진국들은 전력수요의 증가가 줄고, 전력수요와 경제성장이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 시대를 경험했다. 한국도 이제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과 전력다소비 산업이 주도하던 산업구조의 개편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전력수급정책 기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처럼 많은 전력을 사용해서 성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효율화하고 전력소비를 줄이는 산업구조로 개편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본은 저성장 시대임에도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줄이지 못한 채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했다. 후쿠시마 사고로 현재까지 사고수습비용과 보상 등으로 지출된 금액만 약 10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앞으로 피해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고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금이 바로, 원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때 
고리1호기 폐쇄결정을 내렸지만, 한국에는 23기나 되는 원전이 남아 있다. 여기에 7차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확정된 원전이 모두 지어진다면 35기까지 늘어난다. 이는 안전에 대한 사회의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한국에서 언제 시한폭탄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전력수요가 줄고 있는 지금,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지금이 원전확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적기다. 정부는 공급중심의 ‘안정적인 전력수급’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전력수급’으로 근본적인 정책변화를 해야 한다. 

그 시작은 수명이 끝난 원전 월성1호기를 폐쇄하고, 영덕과 삼척에 추진 중인 신규원전 건설 계획을 철회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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