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9월 2015-08-31   699

[통인] 기본에 투철하여 더욱 섹시한, ‘2세대 진보정치’

 

기본에 투철하여 더욱 섹시한, 
‘2세대 진보정치’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정치는 무릇 섹시하기 힘들다. 서로 갈등하는 사람들의 불평불만과 씨름해야 하는 고단한 직업이 바로 정치인이다. 나아가 이 땅의 정치인들은 뭇 사람들의 조롱과 혐오,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발전적인 정치는 아예 불가능해진 것일까?
지난 7월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조성주 후보는 ‘2세대 진보정치’를 내건 출마선언문이 인구에 회자되며 일약 “진보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남자”로 급부상했다. 참여연대와 경제민주화운동본부 활동을 함께했던 그는, 교육과 조직을 당의 최우선 사업으로 삼고, ‘미래리더십위원회’ 구성을 통해 젊은 당원들을 조직적으로 키워내겠다고 공약했고, 이는 선거 후 심상정 2기 대표 체제 아래 정의당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광장 정치의 시대를 넘어 일상 정치로 가야 광장 밖의, 민주주의 밖의, 노동조합 밖의 시민과 노동을 볼 수 있다는 그를 만나 보수양당 정치의 현실, 좁아지는 민주주의의 광장,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의당 당대표 선거가 진행되면서 “30대 대표가 탄생하는 건가?” 기대를 품었던 분들이 많았다. 예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을 했다. 천문학자가 되고자 대학에 진학했으나 다른 별의 일보다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웃음)

 

    학생운동을 남다른 방식으로 하면서 청년유니온 등 이른바 ‘청년 의제’를 만들어 냈다.
선배들 쫓아다니며 통일운동도 하고 민주노동당 선거운동도 하고 그러다가, 큰 사회변화의 담론을 쫓는 운동이 아니라 학생들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운동이 필요하다 싶었다. 군대를 다녀와 보니까 내 주변 친구들의 삶이 너무 힘들더라.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고민하다 등록금 운동을 시작했고, 그게 청년실업, 청년노동의 문제로 이어졌다.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결성, 국회에서의 보좌관 활동, 서울시 노동전문관 활동 등도 모두 그런 고민이 이어진 결과였다. 청년의 문제는 결국 노동조합과 입법, 행정 등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으니까.

 

    ‘청년유니온’은 2010년 결성 당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세대를 묶는 노동조합이었다. 조직사업이 어지간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노동조합 조직이 한국에 선례가 없다 보니 정말 막막했다. 그러다 당시 노동연구원 연구원이던 은수미 현 국회의원이 일본의 수도권청년유니온 사례를 일러줘 돌파구를 찾았다. 국회에서 청년실업과 노동문제를 다루는 의원 보좌관으로 일할 때였는데, 전국을 다니며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설명해도 그게 무슨 노조냐, 시민운동단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다 김영경, 조금득, 한지혜 등 동료를 얻게 되었다. 

 

    다들 의구심을 갖던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지금 어떻게 자리 잡고 있나?
출범 당시 조합원은 3~40여 명이었다. 지금은 조합원 1,200명, 별도 후원회원 500명 정도의 큰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조합원 1,000명이 넘는 노동조합이 대한민국에서 20%가 안 된다. 대단한 규모인 것이다. 5년의 활동으로 청년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 성장한 것이다.

 

    청년들이 이 노동조합과 함께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지 않는 다음에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영세한 기업에서 일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수적으로 압도적 다수지만,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노조가 없기 때문에 부당한 노동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권리를 어떻게 지킬지 막막한 청년들이 먼저 청년유니온을 찾아와 체불임금 등의 문제를 상담한다. 유니온이 권리를 일러주고 소송을 대리해주고 하면서 청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면서 조합원이 되곤 한다. 학교에서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노동법 공부모임 등 조합원들끼리 공부도 한다. 청년실업자들이 집에 혼자 있지 않고 유니온에 와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큰 효과다. 실패를 거듭하며 자책하고 고립하기 시작하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다. 청년유니온 초창기에 서로 대화하기도 힘들어 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 친구들이 참 많이 합류했다. 유니온 친구들은 요즘도 고시원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은 청년들의 뉴스를 접하면 자기 일처럼 아파한다. 

 

    청년들의 목을 옥죄는 현실을 ‘닫힌 민주주의’라고 표현하던데?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그런 청년들이나 영세자영업자 분들을 대변하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게 문제임을 깨달았다. 독재와 싸우던 ‘요새’에서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진출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토론과 정치 공간이 열렸다. 하지만 어느새 이 광장이 점점 좁아지고 닫히면서, 사람들을 광장 밖으로 조용히 추방하기 시작했다. 공정하게 대변되지 못하는, 삭제된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아졌다. 나는 그런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실패는 정당정치의 실패와도 연결되는 문제 아닌가? 어떻게 정치를 생각하게 되었나? 
청년유니온 1기 집행부끼리 약속한 게 있다. “우리 중 한 명은 반드시 정치를 한다!” 법과 제도가 많은 걸 바꾼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장집 교수, 박상훈 박사 등의 책을 보고 강의를 쫓아다니며 정치의 힘, 민주주의의 소중함, 1인 1표의 의미 등을 배웠다. 그러면서 학생운동했던 선배들을 보니 다들 개인으로서, 스타로서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직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정당의 의미도 새로이 깨달았다. 그렇게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목표 아래 정당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더 젊은 친구들이 정치를 하고 싶다면서 스타 연예인 되는 거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사실 대한민국 정치가 좀 그렇다. 다른 분야에서 계속 수혈되는 구조이니 말이다. 하지만 난 늘 그들에게 말한다. “네가 대변하고 싶은 문제, 해결하고 싶은 갈등을 먼저 찾아라. 그리고는 어느 당이 적합한지 찾고, 그 다음 당직자가 될지 정치인이 될지를 결정해라.”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조 소장은 그런 점에서 청년문제라는 색다른 의제를 발굴하고 그 조직 활동 경험으로부터 정치의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는 정의당을 선택했는데? 
광장 밖의 현실을 두루 경험하면서 정당 선택의 문제가 오히려 더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랜 당원 활동에도 불구하고, 막상 입당을 결정하려니 과연 진보정당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최선의 선택인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보수양당은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여당, 그에 반대하는 위치의 야당일 뿐, 두 당 모두 누구를 대변하는 정체성을 지닌 정당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서구에서도 기존 정당이 새로운 갈등을 대변하지 못하면 새로운 당이 출현한다. 녹색당이든, 해적당, 청년당이든…. 한국에서도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진보정당 중 내가 원하는 문제의 해결을 가장 잘 추진할 당으로 제도권 내 원내정당인 정의당을 택했고, 정의당이 기존에 대변하던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당내에 불어넣고자 대표 선거에 나가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30대 당원이 입당과 동시에 대표 선거에 출마한 건, 세계 최초의 사례 아닐까 싶다.
조직을 바꾸고 문제의식을 불어넣는 데 있어 선거 국면이 아주 좋은 기회 아닌가. 오랜 고민 끝에 결심하고 입당한 거였지만, 입당하고 3~4개월 만에 당대표 출마는 좀 심한 거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웃음)

 

    그런 점에서 정의당이 참 열린 정당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성주의 정치는 “조금씩, 작은 성공을 거두어 삶의 의미 있는 변화를” 지향한다. 큰 모순을 뒷전으로 미루는 개량주의라고 비판을 받을 법도 한데?
큰 이야기, 센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한 사업들 속에서 깨달았다. 약자일수록 패배하면 안 된다. 약자일수록 용기가 더 필요하다. 있는 사람들에겐 실패가 약이 된다지만, 없는 사람은 실패하면 끝이다.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 환멸하고 냉소하는 이유는 정치가 내 삶을 구체적으로 바꿔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 위에서 난리법석 요란해도 내일, 다음 달 내 삶은 그대로다. 달라지는 게 없다. 정치는, 내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정치를 믿기 시작하고, 정치의 가능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그렇다. 엄마가 10분 먼저 아기를 찾으러 가게 해주는 거, 이게 작아 보여도 큰 행복일 수 있다. 그런 변화부터 시작해야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고 한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늘 그 첫발이 어려운 법이다. 

 

    이번 정의당 대표 선거에 후보 네 명이 나섰다. 당선될 것으로 기대했나? 
선거가 끝났으니 솔직히 말하자면, 당선은 기대 안 했다. 다만 두 명이 겨루는 결선투표 진출은 기대했다. (실제로는 3위에 그쳤다.)

 

    심상정, 조성주 두 후보의 1차 투표 합산표(3,574표)가 심상정 후보의 결선투표 득표수(3,651표)와 거의 일치했다는데?
선거 전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이기 때문에 내가 노회찬 후보의 표를 잠식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를 보니 신입당원보다는 이른바 ‘선수’들, 그리고 40대 초반에서 훨씬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다들 오랫동안 진보정당을 지지한 분들이고, 진보정치가 변화하지 못하는 걸 답답해하던 당원들이 내게 힘을 실어야 전략적으로 당을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게 원내 후보가 당대표를 전략적으로 맡아야 한다던 심상정 후보 측과 겹쳤던 것이고, 노회찬 후보를 지지하는 신입당원들과는 오히려 덜 겹쳤던 것이다. 

    진보정당은 그간 내부 통합에만 급급한 나머지 바깥의 목소리들을 대변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막 탄생한 심상정 새 대표 체제에서는 조 후보가 역설한 2세대 진보정치의 의제들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선거과정 중에도 심상정, 노회찬 후보 모두 나를 동등한 경쟁자로 보면서, 정당한 문제의식을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주셔서 뭉클했다. 감동적이었다. 심 대표 당선 이후에도 문제의식 수용을 위한 논의는 계속되었고, 그 결과 내가 진보정의연구소(미래정치센터로 명칭 변경) 소장을 맡아 당원 교육, 미래리더십 성장 등의 역할을 해나가게 되었다.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분노와 증오, 조롱의 언어들이 난무하는 세태다. 세상은 “새로운 정치언어에 목말라 있다”는 얘기도 했는데, 정치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치권이 거기에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갈등을 통합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정치 지도자가 그런 증오와 분노의 언어를 내뱉으면 그 여파는 정치권 내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뒤흔든다. 진보도 패배에 따른 열패감을 상대에 대한 조롱으로 해소해 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조롱의 언어는 상대를 공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를 고립시키고 거칠게 만든다. 극단적 갈등의 순간에도 희망과 가능성, 통합의 언어를 쓰는 오바마의 연설문을 통해 많이 감동하고 공부했다. 알린스키의 가르침도 컸다. 당대표 출마선언문에도 그런 깨달음을 담고자 했다. 

출마선언문에서 그는 말한다. “정의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중략) 정의당은 미래와 싸워야 합니다. 오늘의 이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체제가 강요하는 미래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지금 휴전선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폭력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지독한 스펙터클이다. 또 불평등은 우리가 지닌 가능성의 싹을 싹둑 잘라버린다. 그렇게 거세된 우리의 일상을 소비자본주의는 서서히, 속속들이 식민지화한다. 어쩌면 조성주가 말하는 2세대 진보정치는 그런 일상의 해방을 겨냥하는 것인지 모른다. 자기 일상의 주인이 되어 ‘작은 성공’들로 반짝반짝 빛나는 나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의 공동체. 조성주의 젊은 진보는 그처럼 매력이 넘친다. 말 그대로,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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