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0월 2015-10-02   920

[정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재벌의 정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재벌의 정치

 

글. 이용마 MBC 해직기자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불행한 자본주의 역사의 반복
1930년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대공황을 맞아 파국적 붕괴를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손’을 예찬하며 그동안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겼던 후과이다. 그 뒤 전 세계는 국가에 의한 시장 규제, 특히 자본의 흐름에 대한 각국의 통제를 당연시했다. 노동조합에는 단결권과 파업권을 보장해 일정 수준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 체제가 일반화되었고, 빈부격차가 완화되었으며, 경제성장 또한 전례 없는 속도로 이뤄졌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되자 자본가들은 그 핑계를 복지국가 체제로 돌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발전의 황금기를 가져온 복지국가는 어느새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사회적 안전망을 해체하는 작업이 벌어졌고 공공기업은 사유화되었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역시 재개되었고, 빈부격차는 급격히 확대되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 세계가 대공황을 극복한 지 불과 한 세대 후의 일이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시장은 마치 우리들의 잊힌 기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듯이 또 다시 파국을 불렀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출범한지 불과 한 세대 후의 일이다. 2008년 미국의 리만 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발발한 금융위기는 1930년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 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세계경제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대응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의 뉴딜정책과 흡사하다. 각국은 재정을 적극적으로 풀어 경기부양에 나섰고, 내수증대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시장과 자본에 대한 규제와 사회적 안전망 확보, 복지국가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소련의 해체 이후 숨죽이던 좌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스에 사상 처음으로 급진 좌파로 알려진 시리자 정권이 들어섰고,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이후 중도로 선회하던 영국 노동당은 밀리반트에 이어 코빈으로 이어지는 강성 좌파 인사들을 연이어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하고,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가 차기 대선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경제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미리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기업의 이윤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노동자들을 억압해온 기존의 시장제일주의가 더 이상 큰 소리 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점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다.

 

저개발국 수준의 한국 정부
한국 경제도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다.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은 세계자본주의 발전의 황금기와 무관하지 않고, 1997년 외환위기 역시 자본흐름을 통제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에 무작정 편입한데 따른 혹독한 대가이다. 최근 잠재성장률이 2~3%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도 금융위기 이후 장기화된 세계불황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위기를 맞아 한국 정부가 대응하는 방식은 아직도 주변부 자본주의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재벌기업들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의 규제를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라고 외치며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일반 해고”, “공정 해고”라는 미명하에 기업이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노동자들을 내쫓을 수 있도록 일종의 ‘해고 면허’를 내줄 계획임을 천명한 상태이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전 국민을 희생시켜서라도 오로지 재벌기업들의 높은 이윤을 보장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은 물론 기업이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높은 이윤은 자본가들의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높은 이윤을 얻는다고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재벌들에게 높은 이윤만 보장하면 혁신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수도권에 모든 게 몰린 것처럼, 모든 부가 재벌에 집중된 사회, 재벌만 살고 나라가 망하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