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0월 2015-10-02   894

[여는글] 생각에 힘을 빼야 하는 이유

 

 

생각에 
힘을 빼야 하는 이유 

 

글. 법인스님
참여연대 공동대표.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며칠 사이 산중의 햇볕은 다사로워지고 한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초암 주변의 보랏빛 수국과 연못에 핀 수련이 여름 내내 눈길을 끌더니, 이제는 꽃무릇이 가을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제행무상의 순리에 따라 무더운 여름은 미련 없이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올 여름은 각지에서 지인들이 하루도 쉴 틈 없이 찾아왔고 간간히 공부모임에 말을 보태기도 하였습니다. 한적한 여유와 평온한 무심에 젖는 일도 즐거우려니와, 세속의 벗들과 차를 나누며 위로하고 공감하는 일은 산중에 사는 작은 보람이기도 합니다. 

 

엄격함과 진지함, 그리고 무거움
가을이 시작되는 이즈음이면, 어김없이 십오 년 전 받은 한 통의 편지가 생각납니다. 대흥사 수련원장 소임을 맡아 여러 수행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당시 대흥사 참선수련회는 엄격한 지도와 강도 높은 집중으로 제법 인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지원자가 몰렸고 수련을 마치고 남긴 소감문에는 만족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지도 스님들에 대한 찬사와 감사도 대단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스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법문과 강의 내용도 좋았고 정성이 깃든 공양간의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특히 지도하는 스님의 엄격하고 정제된 언행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저희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마음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세속에서 절제하지 못하고 늘 외부로 시선을 두고 사는 저희들로서는 스님의 엄격함과 치열함이 더없는 죽비였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몇몇이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스님…….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모두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한여름 더위를 감내하며 애쓰는 스님의 정성에 누가 될까 말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스님의 지나친 강직함과 무거움이었습니다. 수행하는 일주일 동안 스님의 표정은 늘 엄숙했습니다. 몸짓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움과 긴장이 묻어났습니다. 물론 그러한 마음과 몸가짐이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수행기간 내내 저희는 모두 절제와 긴장이 주는 미묘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평온하지 못했습니다. 혹여 스님들께 실수라도 하지 않을지, 나의 번뇌 망상이 들키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했습니다. 스님, 앞으로 이렇게는 할 수 없는지요. 정제되면서도 여유롭고,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로 지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님의 표정이 부드럽고 평온했으면 합니다. 조그만 틈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얼굴에 저희들은 절로 몸이 굳습니다.

 

내 안의 집착과 속박
편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여러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만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내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야 해마다 수련회를 끝내고 나서 호되게 몸살을 앓았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수행기간 내내 바짝 긴장한 상태로 지냈으니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나를 엄격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 늘 마음과 언행에 조금도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 수련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그들이 나의 가르침대로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집착이었습니다. 간섭을 관심으로, 집착을 애정으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머릿속 가득한 생각에 ‘힘’이 들어가 있었으니 나의 몸은 오죽 무거웠겠습니까. 표정은 또 얼마나 얼음장 같았을까요? 그런 나와 함께 닷새 동안 묵언하며 수행하던 이들은 참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마저도 하나의 집착이었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함이 없는 함’, 무위無爲의 행이 왜 필요한지 알았습니다. 그 뒤 나는 생각과 지도 방식을 확 바꾸었습니다. 옳은 일과 좋은 일을 나부터 즐겁게 하려고 했습니다. 애써 잘하려고, 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오직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몸이 가볍고 마음이 편했습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생각에 힘을 주어, 내가 묶고 내가 묶인 그 모습이 참으로 우습기만 합니다. 

밧줄로 묶여도 속박이고 황금 줄로 묶여도 속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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