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8월 2016-08-01   1253

[특집]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가능할까?

특집4_조건 없이, 모두에게, 기본소득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가능할까?

 

 

글.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지난 7월 7일부터 9일까지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이하 BIEN)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대회 기간을 전후로 국내 언론은 기본소득에 관해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기본소득에 대한 보도가 이처럼 집중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물론 작년 하반기부터 기본소득은 네덜란드 주요 도시 및 핀란드 정부의 모의 실험 계획, 스위스의 국민투표 등을 계기로 꾸준히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9명의 기조발제자를 비롯하여 100여 명의 국내외 발표자가 참여한 국제 행사가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사실도 언론의 관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정작 제16차 BIEN 대회가 언론의 지속적 주목대상이 된 것은 개회식 때의 작은 이변과 관계가 있다. 

 

기성 정치권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기본소득
대회 조직위원회는 각 당 대표에게 개회식 초청장을 보냈는데 지난 총선에서 기본소득을 핵심정책으로 내걸었던 노동당과 녹색당 대표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가 참석했다. 사실 김종인 대표의 참석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 전 국회에서의 대표연설에서 기본소득 의제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축사는 조선·중앙·동아일보와 KBS도 서울에서 BIEN 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점을 보도하게 만들었다. 주요정당에서의 기본소득 의제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김종인 대표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김세연 의원도 기본소득 의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으며, 지난 4월 8일 국회입법조사처도 <기본소득 도입 논의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기본소득 검토를 권고한 바 있다.

기성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된 배경은 김종인 대표의 축사에서 엿볼 수 있다. 당장의 불평등과 빈곤, 앞으로 닥칠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에 의한 일자리 감소를 기본소득을 검토해야 할 이유로 거론한다. 보도에 따르면 김종인 의원실에서는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안전망 없이는 앞으로 다가올 구조조정에 따른 엄청난 해고 사태 등의 사회적 위기를 절대로 지탱해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부 언론은 재벌개혁 이외에 다른 내용이 없던 경제민주화에 기본소득이 추가되었다고 평한다. 사실 이러한 필요성은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늘 강조하던 것이라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김세연 의원이 강조하는 노동과 소득 연계의 종식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마땅히 환영할 만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기본소득의 경제적인 필요성만이 강조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점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16차 BIEN 대회 기조발제자 중에서 특히 카티야 키핑 독일 좌파당 대표와 다비드 카사사스 바르셀로나대학 교수는 모든 시민이 기본소득을 통해 물질적 생존을 보장받을 때에만 사회정치적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과 그렇기에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기초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성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이 의제화 되었다고 당장 도입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점은 앞으로 논의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논의에서 등장할 쟁점을 예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기본소득 논의가 중요한 의제가 된 유럽의 논의 지평은 많은 참조가 될 수 있다. 

 

 

참여사회 2016년 8월호(통권 237호)

 

기존 제도와의 결합, 증세 문제가 관건
첫 번째 쟁점은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체계의 관계이다. 유럽에는 의료, 교육, 보육 등 현물 공공서비스를 축소하고 이 재정을 기본소득에 전용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다. 이 점에서 핀란드 중앙당과 같은 중도우파도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GDP 대비 공공복지예산 비율이 OECD 평균(21.6%)의 절반 수준(10.4%)에 불과한 한국과 같은 저복지 체제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실업수당, 선별적 사회부조, 기초연금, 보육수당 등 현존하는 현금복지를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것인가 또는 어떤 방식으로 통합할 것인가이다. 여기에 대한 기준은 저소득층이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지난 7월 9일 BIEN 회원총회는 기본소득과 함께 모든 시민의 사회정치적 문화적 참여가 가능해져야 하며 기존복지 삭감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기본정책으로 의결했다. 

더 중요한 쟁점은 증세 문제일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1인당 월 30만 원의 낮은 액수를 지급하기 위해서도 한국의 총조세부담률(24.6%)은 OECD 평균(34.4%) 이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소득불평등 완화에 기여하려면 기본소득 재정은 저부담 간접세 중심의 현행 조세체계를 고부담 누진직접세 체계로 바꾸는 개혁과 맞물려야 한다. 기성 정치권이 그동안 복지 이슈에는 민감하게 반응해 왔지만 증세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증세 여론이 조성 되지 않는다면 정작 기본소득은 논의만 무성하다가 그칠 공산도 있다. 

세 번째 쟁점은 기본소득과 최저임금 인상의 결합이다. 한국의 현행 조세부담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10%p의 증세를 해도 기본소득 액수는 월 30~40만원의 낮은 수준이 될 공산이 크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하는 한국에서 최저임금 인상 없이 낮은 액수의 기본소득만 도입할 경우,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에 임금보조금을 지불하는 꼴이 될 뿐 실질적인 가계소득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출절벽에 막힌 한국경제의 내수기반은 OECD 주요국과 비교할 때 10%p 정도 낮은 노동소득분배율과 막대한 가계부채로 인해 튼튼하지 못하다. 기본소득 도입이 최저임금 인상과 결합될 때에만 가계소득기반경제가 가능해진다. 

네 번째 우려 지점은 자칫하면 기본소득으로 시작된 논의가 근로장려세제EITC의 확대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구직 노력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달게 되면 논의는 분명히 이렇게 종료될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기본소득 논의를 유심히 살펴보면 이와 같은 우려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토빈과 프리드만 등 저명한 경제학자가 참여했고 당시 대통령후보 맥거번과 닉슨이 공약화했던 논의는 결국 기본소득과 전혀 무관한 제도들만 남겼을 뿐이다. 

주요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검토하려는 이유는 세계경제의 저성장 국면, 재벌체제와 불안정노동체제로 인한 불평등과 빈곤, 임박한 제4차 산업혁명 등을 배경으로 한다. 국민여론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기본소득에 관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럽의 평균지지도인 64%보다는 낮지만 47%의 지지가 나타난 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고 기본소득을 사회경제적 전환의 적극적 수단으로서 사고할 때에만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될 것이다. 

 

 

 

특집. 조건 없이, 모두에게, 기본소득

1. 왜 지금 기본소득인가?    하승수
2. 세계는 기본소득 실험 중    김동환
3. 제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강남훈
4.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가능할까?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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