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스스로를 대표하는 정치

특집 2 _ 대한민국 새로고침

 

 

스스로를 대표하는 정치

 

 

글. 박한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광장 민주주의가 남긴 것
우리는 2016년 늦가을과 초겨울의 뭇 주말을 광장에서 보내고 있다. 광화문 앞을 비롯한 온 나라의 광장은 곧 민주주의 자체였다. 곳곳에 마련된 발언대와 토론회는 우리 시대에 다시 태어난 또 하나의 아고라였으며, 바람이 불면 꺼진다던 촛불은 외려 바람에 날려 옮겨 붙으며 연대의 정신을 실감케 했다. 한편 광장은 역설적으로 대의 민주주의가 민의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0월 말엽 박근혜 정권의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되자, 시민사회는 이미 정권에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마저 철회했으며 포털 사이트에는 연일 하야 및 탄핵이 인기 검색어로 오르내렸다. 그러나 정계는 한동안 민심을 헤아리지 못한 채 ‘거국내각’이나 ‘질서 있는 퇴진’ 따위의 타협안을 제시하다가 뒤늦게 촛불에 데고 나서야 탄핵을 향한 발걸음을 뗐다. 결국 광장의 민의는 승리했지만, 정계가 여론과 유리될 때마다 언제까지고 광장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광장의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어떻게 대의 민주주의가 민의의 반영이라는 본령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제도적 차원의 개혁
민의를 적시에 반영하지 못한 정치인들도 결국 선거를 거쳐 선출된 이들이다. 이 사실은 선거 과정이 과연 민주적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선거는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여겨지는 다수결의 원칙을 실현하는 기제로서 기능하나 그러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되는 상대다수 대표제 하에서 후보자는 그저 타 후보보다 앞서기만 하면 과반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당선될 수 있다. 한 사람을 선출하는 대선에서도 그 오차가 드러나는데, 같은 방식으로 253명을 선출하는 총선에서 오차가 쌓이다 보면 선거 결과는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비록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고 있으나 지역구 의석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례대표 의석은 국회 구성의 비례성을 보완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상대다수 대표제의 대안으로 주로 제시되는 것이 대선에서의 결선투표 도입 및 총선에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결선투표는 특정 후보가 당선을 위해 반드시 과반을 확보해야 하므로 유권자의 효능감과 당선자의 정당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또한 각 정당이 비례대표 선거에서 얻은 표에 비례해 전체 의석을 배분함으로써, 유권자의 실제 정당 지지 분포와 국회 의석 구성이 최대한 일치하게끔 하는 효과를 낸다. 특히 2015년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것과 같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시행하게 되면 지역주의에 의해 민의와 선거 결과 간의 심각한 괴리가 발생하는 지역 차원의 대표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이들 제도는 공직선거법 등 관련 법률 또는 헌법 조항의 일부를 개정해 시행될 수 있지만, 일부 개헌론자들이 주창하는 의원 내각제 도입은 전면적인 개헌을 필요로 한다. 내각제 하에서 정책 수행의 안정성 및 책임성은 어느 정도 저하될 수밖에 없으나, 여론에 대한 정치권의 응답성은 높아질 수 있다. 조금 무리한 가정이지만, 만약 박근혜가 내각제의 총리였다면 게이트가 불거지기 무섭게 내각 불신임 및 의회 해산이 일어나고 이어지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는 정권 교체가 일어났을지 모른다. 정국의 역동성이 수시로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체제를 가능해 지는 것이다. 다만 내각제의 효용을 논하기에 앞서 다수 국민이 내각제에 비해 4년 중임제 등 대통령제의 골격을 유지하는 개헌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고려돼야 한다. 당위적으로는 민의를 반영하기 용이하다는 내각제의 이점이 민의를 거스르는 개헌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며, 현실적으로는 개헌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국민투표에서 내각제가 충분한 동의를 얻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비례성을 최대화하는 선거 제도 개혁을 단행하되 대통령제 자체는 당분간 유지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집-박한수

 

제도를 넘어 정당으로
대의 민주주의의 보완책으로 제도 개혁이 흔히 거론되다 보니 이것이 민의 대변의 충분조건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선거 과정에서 선택의 방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유권자에게 주어진 선택지의 면면이다. 제도 개혁은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대안을 더 잘 보여줄 뿐 유권자가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대안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즉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 내 의석 배분 비율이 달라질 수는 있으나, 그 역시 기성 정치 세력 내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 구도 및 공천에 의해 유권자의 선택지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제도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원내교섭단체를 형성하고 있는 여야 3당이 모두 자유주의 일변도 노선을 견지하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자유주의에 대한 호오와는 별개로, 사민주의를 비롯한 여러 정치 성향이 과소 대표되는 현상은 정당이 사회 저변에 깔린 이념과 계급의 균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권자 집단의 다원적인 성향 및 이해를 반영하는 정당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존 정당의 민의 반영 체계를 제도화하고, 나아가 다양한 이념 및 정책의 스펙트럼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당을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저변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민참여경선을 비롯한 공천 과정 개혁은 선거에서 주어지는 선택지의 절대적 선호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국민참여경선이 정당의 정체성을 흐릴 우려가 그 효용에 비해 크다고 사료된다면, 상향식 공천에 기반을 둔 공천 과정의 제도화를 통해 당 내부에서라도 민주적 공천이 실현돼야 한다. 아울러 민주주의가 중앙 정치의 영역을 넘어 생활 속의 원리 및 규범으로 확장될 때 민의는 정당을 비롯해 다양한 경로로 정치를 실질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가정과 직장, 각종 모임에서 구성원의 평등을 전제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 대화와 협의의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시민은 생활의 민주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하고 지속적인 의견의 표현과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이 기성 정치의 영역에 영향을 끼칠 때 선거를 비롯한 정치 과정 전반에 반영되는 민의의 폭이 넓어지고 그 효력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시민과 대표자의 동질성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는 통치자와 피치자의 일치, 즉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데 있다. 이 가치를 현대 사회에 맞게 절충한 것이 대의 민주주의임을 고려하면, 대의의 핵심은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두 집단의 일치도가 높아질수록 민의는 제도 정치의 결과를 제어하는 원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수많은 의견의 표출에 기반을 둔 정당 체계 개편은 유권자의 입장에 상응하는 다원적인 선택의 지평을 제공하고,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 제도 개편은 유권자의 선택에 부합하는 정치 구도를 형성해 두 집단의 동질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한다. 광장의 혁명을 가능하게 한 시민의 저력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구조와 제도를 만듦으로써 시민이 스스로를 대변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현실 정치에 구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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