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4월 2017-03-30   723

[특집] 재벌과 사법정의를  다시 생각하다

특집1_이재용과 삼성 공화국

 

재벌과 사법정의를 
다시 생각하다

 

글. 김만권 정치철학자

 

속표지

 

 

삼성, 자신들의 공화국을 세우다 
삼성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김용철은 2010년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양심고백을 했다. 
“이건희 씨 일가와 가신들이 국가적, 사회적 기능을 오도하고 있는 문제는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중 극히 일부를 국가, 사회의 각 분야에 던져주어 부패시킴으로써 공적 기능을 무력화하고 나머지 비자금 대부분을 자신들의 영속불변의 부당한 권력체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 가운데 대부분이 수사 및 재판 등 공적인 검증절차를 거치며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지난 반세기 한국사회에서 삼성은 무소불위였다. 여러 재벌이 있고 그 재벌들이 권력의 혜택을 누렸으나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삼대에 걸쳐 권력의 혜택을 누린 재벌은 드물었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 삼성이 소위 지금의 ‘초국가기업’으로 성장하자 사람들은 삼성을 마치 국가대표기업처럼 취급했다. 현재 매해 우리나라 GDP의 대략 10% 이상, 수출액의 20% 가량을 책임지고, 15% 가량의 법인세를 내는 최고의 기업. 부유한 국가를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삼성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삼성은 국가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밖으로는 막강한 재력으로 사들인 ‘법’으로 철저히 무장했고, 안으로는 비자금을 뿌리며 부당한 권력체계를 견고히 해왔다. 소위 ‘삼성공화국’의 건설이었다. 이 공화국은 난공불락이었다. 쉬운 예로 이건희 회장이 저지른 조세포탈과 배임 행위들은 사법적인 검증절차를 거치는 동안 근거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김용철 변호사의 말처럼 종범은 감옥에 있어도 주범은 사면받는 특혜를 누렸다. 삼성에게 법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그들은 늘 ‘법의 형식’을 빌려 법 위에 존재해 왔다.

 

 

이재용 구속, 사법정의는 실현되었나
2016년 말, 삼성에 위기가 찾아왔다. 삼성과 코레스포츠가 맺은 계약서에서 드러났듯 삼성이 박근혜-최순실과 경영승계를 둘러싸고 430억여 원에 이르는 뇌물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삼성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220억 원의 지원을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씨의 지원 사격 아래 최순실이 주인노릇을 했던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 재단에 204억 원에 이르는 돈을 출연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묘사한 것처럼 이 거래는 부당한 권력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자와 그에 빌붙은 자에게 던져준 거대한 비자금이었다. 아니 권력승계를 보장받는다는 점을 보면, 오히려 너무 값싼 대가였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파헤칠 임무를 맡은 박영수 특검은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언급한 삼성에 대한 사법체계의 공식은 다시 반복되는 듯 보였다. 2017년 1월 19일 새벽 5시, 영장심사를 담당한 조의연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 단계에선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영장기각은 이 국가의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또렷한 증거였다.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 앞에서조차 사법체계는 삼성 앞에서 흔들리고 망설였다. 삼성은 법 앞에서 명백한 ‘예외’였다. 이런 부당한 예외는 국가 전반에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영장을 기각한 조 판사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사법체계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폭풍 같은 분노는 특검에 다시 힘을 실어주었고, 2017년 2월 17일 마침내 이 부회장에게 삼성의 총수로서는 처음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삼성이야기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삼성의 이 부회장이 구속되자 드디어 사법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잘못된 것이다. 마땅한 차원의 사법정의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사법체계가 자발적으로 삼성을 처벌하러 나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을 구속시킨 건 2016년 폭발한 촛불의 힘, 행동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 여론의 힘이었다. 구속된 이후에도 이 부회장은 혐의를 부인하며 대통령이던 박근혜 씨의 강압에 못 이겨 최순실 무리를 지원했을 뿐이라 발뺌하고 있다. 드디어 삼성공화국의 후계자가 구속되었다고, 법 앞의 평등이 그래도 한 걸음 다가왔다고 평가하기엔 앞으로 살펴야 할 일이 많다. 남은 수사가 잘 이루어질지, 제대로 된 처벌은 이루어질지, 사면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결정문에도 드러난 대기업의 힘 
무엇보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힘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결정문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이정미 권한대행이 차분하게 읽어 내려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그러나 탄핵의 핵심적 사유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사실상 탄핵의 중요한 원동력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원했던 ‘세월호’에 대한 대통령의 대응은 탄핵사유가 되지 못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사실상 아무런 적절한 실질적 대응조치를 하지 못한 대통령은 ‘생명권 보호의 의무’를 위반하지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성실히 의무를 이행했는가는 측정할 수 있는 법적 구체성이 없다는 이유로 소추사유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 대신 탄핵결정문의 중심을 채우고 있는 탄핵사유는 ‘기업의 자유 침해’였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삼성의 연루 문제는 사실상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결정문에서 삼성은 사실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 언급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결정문은 실망스럽게도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을 두고 대통령의 강압적인 요구 앞에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사항은 거의 없었다”(55쪽)고 쓰여 있다. 그리고 45쪽에선 좀더 구체적으로 “출연 요구를 받은 기업으로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업운영이나 현안 해결과 관련하여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으로…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사실상 기업을 두둔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기업이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로 우리가 삼성 사태에서 주목하고 있는 대가성 있는 ‘뇌물죄’와는 거리가 멀다. 이 표현에 따르면, 그 어느 기업도 자기 이익의 추구 없이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에 불과한 것이다. 한마디로 결정문은 처벌받아야 할 기업을 향해, “당신들의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재용의 구속을 통해 대기업을 향한 사법정의가 큰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일 수도 있다. 

2017년 3월까지 광장에서 이어진 우리 시민들의 목소리가 잦아든다면, 이재용을 구속시킨 법 앞의 평등이란 정신이 지속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실현하고 싶은 정의가 있다면, 그 가능성을 의심하고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야만 할 것이다. 

 

특집. 이재용과 삼성공화국 2017-4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재벌과 사법정의를 다시 생각하다    김만권
2. 삼성과 정권의 은밀한 거래    김동환
3. 삼성의 변칙상속, 왜 문제인가?    전성인
4. 삼성 없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없는 삼성의 경쟁력    송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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