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6월 2017-05-30   10246

[통인] 외모 패권시대,  진짜 서민의 얼굴

외모 패권시대, 진짜 서민의 얼굴

서민 기생충학 박사

 

 

글.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 현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기자 겸 CEO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박영록

일본의 한 누리꾼은 특사 자격으로 자기 나라를 방문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보고 이런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한국 대통령은 특사를 보낸다더니, 왜 야쿠자를 보냈는가.”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일본 누리꾼의 심정을 이해했다. 낯설거나 상상 그 이상의 대상을 만나면 사람은 할 말을 잃는 법. 서 교수를 대면하는 순간, 나는 많이 허둥댔다. 여러 자리에서 “나는 못생겼다”고 말해온 서 교수, 그는 확실히 특별(?)했다. 오해하지 마시길. 서 교수 외모를 비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서 교수를 보면서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참 못생겼으니까. 내가 그의 얼굴을 보면서 느꼈던 ‘충격과 공포’를, 그동안 내 얼굴을 보아온 여러 사람도 똑같이 느꼈으리라.

 
서 교수와 내가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아 서로의 못생긴 얼굴을 보면서 ‘당신도 나처럼 만만치 않구나’를 곱씹고 있던 5월 어느 날, 많은 시민은 청와대의 문재인 대통령,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을 보면서 ‘외모 패권시대’의 앞날을 논하고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에 살아도 각자의 처지는 이렇게 다르다. 

자기 외모 치장을 제외하면 국민의 처지, 대통령의 소명, 역사 발전 등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갑을 찬 채 국민 앞에 나타났다. 자기 몸 아니라고 이리저리 손을 대 4대강을 망쳐버린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4대강 사업 감사’ 가능성을 두고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괜한 시비 걸지 말라.”

자신이 대통령으로 일할 때, 외국의 ‘넘버원’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국격 저하’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쳤는지 그는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 4대강 등 국토가 망가질 때마다 여러 생명이 아파했다는 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직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 

주사아줌마를 호출하기는커녕 형광등 100개를 켜지도 않았는데, 22조 원을 들여 토목공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뭔가 세상이 달라 보이는 요즘. 겉모습 하나는 남과 확실히 다른 서민 교수에게 물었다. 최근 그는 『서민적 정치』라는 책도 냈다. “뭔가 달라진 듯한 시대, 우리 같은 서민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월간 참여사회 2017년 6월(통권 246호)

청와대의 외모패권 인사가 세간의 이슈가 되었던 5월 17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서민 교수를 만났다. <사진=참여연대>

 

『서민적 정치』 책은 좀 팔립니까? 
대선이 12월에 열릴 줄 알고, 일찍 낸 책인데 대선이 벌써 끝났잖아요. 팔리겠습니까?

 

책을 못 팔아도 대선 결과에는 만족하시나요?
대통령이 너무 착해서 적폐청산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하네요. 지금까지는 잘해서 마음에 듭니다.

 

서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을 지지했다. 촛불집회와 탄핵 정국에서 이 시장이 보여준 선명성이 마음에 들었다. 이 시장이 국민의 뜻을 가장 정확히 안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된 지금, 서 교수는 일간지 언론사 칼럼을 한동안 쓰지 않을 생각이란다.

 

왜 칼럼을 안 쓰려는 겁니까?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로 가면서 날개를 잃었습니다. 쓸 게 없어서 죽겠습니다. ‘이명박 – 박근혜 시대’는 글쓰기에 참 좋은 시대였습니다. 비판하고 ‘깔’ 게 너무 많으니까요.(웃음) 특히 작년 10월부터는 정말 ‘글쓰기의 천국’이었습니다. 김제동씨도 그랬잖아요. 개그하기도 좋았다고.(웃음) 이제는 쓸 것도 별로 없고….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는지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본인 외모에 대해 솔직히 말하며 유쾌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이 못생긴 얼굴이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제일 친숙하고, 실제로 못생겼잖아요. 그런데 이 정도 살아보고 넓은 세상을 보니까, 저만큼 만만치 않은 분들도 많더라고요.

 

서 교수는 이 말을 하면서 잠시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내가 그를 보고 놀란 것처럼, 서 교수도 나를 보고 놀란 게 분명했다. 

 

좀 아까운 외모인데요, 혹시 배우에는 관심 없습니까?
박노식 씨가 딱 버티고 계시니까…. 저랑 좀 캐릭터가 겹쳐서…. 저는 제 얼굴에 정말 감사해요. 내가 장동건처럼 생겼으면 글을 안 썼겠죠.

 

서 교수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향숙이 예쁘다”고 말한 백광호 역의 배우 박노식이 자신의 영화계 진출을 막았다고 했다. 둘의 얼굴을 떠올려 보니, 서 교수의 눈은 예리한 게 분명하다. 둘의 캐릭터는 확실히 겹친다. 

 

외모 패권주의 시대, 어떻게 보십니까? 
아주 긍정적으로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정상회담 할 때마다 좀 그랬습니다.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잘 생겨서 좋습니다. 저는 외모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문희상 의원을 일본 특사를 보냈는데, 도대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시길래 그 분을….

 

<여성신문>에도 칼럼을 쓸 정도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데요. 
1997년 그 즈음에 책 읽다가 우연히 여성차별에 대해서 눈을 떴어요. 한 번 깨닫게 되니까,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게 되더군요. 여성이 정말 차별받는 사회입니다. 제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은 정희진 선생님이 쓴 『페미니즘의 도전』인데요,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의 전사로 거듭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교수는 학교에서 직접 여성학 강의를 개설하기도 했다. 자기처럼 여러 남학생이 페미니즘의 전사로 거듭나길 바랐다. 

 

여성학 강의는 인기가 좋았나요?
아니요. 3년 만에 폐강했습니다. 남학생들과 여성주의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160명 수강생 중 158명이 여자였던 적도 있습니다. 남학생 두 명도 여자친구가 오라고 해서 들었다고 하더군요. 좀 아쉬웠습니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6월(통권 246호)

최근 서민 교수는 <EBS 까칠남녀>에서 ‘페미니즘 전사’로 활약 중이다. 

 

1997년 즈음에 무슨 책을 읽었길래 페미니즘에 눈을 떴나요?
『인물과 사상』에서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가 지역차별 등 여러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여성차별이었어요. 대학교수 중 여성은 몇 명, 장관 중 여성은 몇 명… 이렇게 통계로 차별을 보여주는데, 저는 그때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남자라서 혜택 받은 게 많더군요.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남자여서 가능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여성주의 책을 목마른 사슴처럼 탐독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많이 모자랍니다. 책으로만 배웠으니까요.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이 차별을 깨닫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외모에서 비롯된 게 있을 겁니다. 제 외모를 보면 천민, 하층민… 뭐 그런 게 연상되잖아요. 저에겐 ‘아웃사이더 정서’가 좀 있습니다. 지금도 술자리 같은 데 가면 말 안 하고 혼자 있는 사람이 눈에 밟힙니다. 

 

외적으로 보면 유쾌하고 재밌으나, 정서적으로 약자들에 대한 연민이 많은가 봅니다. 
외모가 많은 겸손함을 가르쳐 줬습니다. 그래도 뭔가 상처를 극복했으니까 이렇게 외모를 ‘무기’로 쓰는 겁니다.

 

외모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많은 사회입니다. 
여성이 얼굴 고쳐야 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한국 남자들이 참 이상해요. 여자가 얼굴 고치면 고쳤다고 또 막 뭐라고 하잖아요. 성형 전 사진 인터넷에 올리고.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자녀가 있습니까? 
제 나이 15세 때 이미 ‘애를 낳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놀림 받는 게 싫었는데, 제 자식에게 그걸 물려줄 수는 없잖아요. 아내에게도 확실히 이야기했습니다. 아이 낳지 말자고.

 

아이가 아내를 닮을 수도 있잖아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도박입니다. 저희 조카들 보면 만만치 않아요. 정말 갑갑합니다. ‘제대로 된’ 애가 없습니다. 조카들 볼 때면 ‘야, 너 공부 정말 잘해야겠다’는 말만 합니다.

 

학창 시절에 외모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했나요? 
외모 덕분에 공부를 잘했습니다. 친구가 없었으니까. 고교 때 공부를 좀 잘하게 되니까 가끔 말을 거는 사람들이 좀 생기더군요. 그전에는 거의 혼자 지냈습니다. 

 

아, 그럼 그때부터 책을 많이 봤나보군요.
아닙니다. 주로 야구를 봤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친한 친구는 야구였습니다.

 

종종 여러 누리꾼에게 댓글테러 당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좀 자존감이 낮습니다. 욕을 먹어도 짜릿한 느낌이 듭니다. 오히려 댓글을 찾아서 읽고 그럽니다. 이런 걸 못 견디면 대중적 활동을 못합니다. 

 

서민 교수가 여성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쓸 때면 특히나 많은 악플이 쏟아진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고 했다.  

 

왜 누리꾼과 싸웁니까? 
여성들에게 자신들을 지지하는 남성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어차피 남자들은 안 변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엌에 가둬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지 않는 한, 남자아이 10살 넘으면 교정이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교수님 글을 보고 바뀌는 남성들이 좀 있지 않나요? 
없습니다. 어떤 단국대학교 남학생은 제게 메일을 보내 ‘네가 단국대 교수라는 게, 내가 그 학교 학생이라는 게 부끄럽다. 그만둬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의대 교수인데, 남성들은 원래 그렇게 극단적인가요? 
원래 그렇다기보다는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이용해 혐오의 대상을 공격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왔는데, 이제는 힘을 보여줄 곳이 익명의 인터넷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나요? 
서른 살 무렵부터 읽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너무 한심해서,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사회문제에 대해서 깨달았습니다.

 

글을 쓰는 보람은 뭔가요? 
외부 사람의 칭찬을 보고 희열을 느낍니다. 제가 자존감이 낮아서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면 기뻐요.

 

자존감이 낮다… 이 말을 자주하는데요. 정말인가요? 
진짭니다. 자존감 낮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의대 들어간 뒤 문화적 충격을 받았는데요. 나보다 못생긴 애들이 몇 명 보이더라고요.

 

정말요?
네! 지금까지 안 죽고 살아남은 게 기적이다 싶은 애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가서 ‘너는 혹시 못생겨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냐?’ 물었더니 그런 게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걔네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더라고요.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죽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고교 때부터 공부를 좀 했는데, 중학교 때까지 죽고 싶었습니다. 요즘 내가 사는 보람이 글쓰기입니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6월(통권 246호)

 

의대에서 왜 기생충 공부를 했나요?
그거 기생충을 하찮게 봐서 물어보는 거 아닙니까? (순간 발끈)

 

그런 건 아닙니다만….
물론 저 역시 기생충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긴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연구가 마음에 들어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의대 다닐 때 수술하는 거 보면 좀 끔찍하고 그랬습니다. 기생충 연구 같은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고 기뻤습니다.

 

가족 등의 만류가 컸을 텐데요. 
많이 말렸죠. 제 조카 한 명이 의대에 다니는데요. 걔가 기생충 연구할까봐, 가족들이 우리를 못 만나게 합니다. 그 정도로 기생충에 대한 편견이 심합니다.

 

『서민적 정치』를 통해 시민이 계속 정치에 관심을 갖고, 권력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사람이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만, 정책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맹목적으로 좋아합니다. 토론이 잘 안 될 정도로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프라인에) 모여서 토론도 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그랬으면 합니다. 대한노인회는 있지만, 대한청년회는 없잖아요. 청년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누가 자기들 이익을 챙겨주겠습니까?

 

책으로 세상을 많이 배웠다고 했는데요. 청년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정희진 선생님의 여성학 책을 추천합니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지식인이 정희진입니다. 그 분 강의를 10번 정도 들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분입니다. 저랑 동갑인데, 같은 해에 그런 분이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선생님은 어떤 지식인으로 남고 싶나요?
저는 지식인이 아닙니다.

그럼 오늘날 지식인은 뭘 해야 하나요?
모두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해야 하고, 반대로 모두가 맞다고 해도 혼자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민 교수는 언젠가 기생충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기생충들은 100마리가 있어도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100마리가 넘는 회충을 배출했는데 회충의 몸에 상처가 전혀 없었어요. 싸운 흔적이 없었죠. 애들이. 다 잘 지내는 거죠. 사람 같으면 100명이 모이면 서로 파벌을 만들고 막 서로 싸우고 주먹다짐을 하고 그래서 막 전치 몇 주 나오잖아요. 기생충은 그런 게 없어요. 자기네끼리 안 싸워요. 그리고 기생충은 국적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회충에 걸린 사람이 그 몸으로 브라질에 갔는데 거기서 또 회충 알을 먹은 거예요. 그럼 브라질 회충이 들어오죠. 그럼 한국 회충과 브라질 회충이 각 나라 기생충의 명예를 걸고 막 한판 대결을 할 것 같은데 아니에요. 친하게 잘 지내요. 그냥. 서로에게 너는 너, 나는 나. 이러면서 각자의 먹을 것을 먹고 사는 거죠. 이런 걸 보면 정말 ‘기생충의 넓은 마음을 우리 인간이 좀 배우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서민 교수는 소수자를 생각하며 함께 토론하는 문화를 강조했다.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린 지금, 경청해야 할 대목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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