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6월 2017-05-30   3048

[특집] 성적 지향 이해하기

특집 2_다르거나 틀리거나

성적 지향 이해하기

 

 

글. 시우 문화연구자 

 

사람이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나가고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성장의 과정은 소중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여러 경험 중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것도 존재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진솔하게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성性적인 여정을 떠나서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여행자이자, 여행에서 경험한 신비롭고 가슴 뛰는 만남을 기록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성적 지향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성적 지향은 상대에 대한 애틋함과 설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열망, 신체적, 정신적 접촉에 대한 기대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① 딱히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는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는 것,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그 사람(혹은 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기쁨을 누리고 싶은 것, 그 특별한 존재를 만지고 느끼고 싶은 것 등이 성적 지향에 포함된다.

 

성적 지향에 정답과 오답은 없다 
흔히 성적 끌림의 방향이 배타적으로 다른 성별을 향해 있다고 여겨지곤 하지만, 인간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훨씬 개방적이고 다채롭다. 그동안 자연의 질서, 보편적 원리, 당연한 원칙이라고 여겨진 이성애가 실제로는 인간의 다양한 성적 지향 중에서 하나의 항목이라는 점이 알려진 것이다. 이성애는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성적 지향이지만, 그 자체로 유일하게 정상적인 성적 지향인 것도, 역사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인 성적 지향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모두 백인이지만, 가끔 흑인도 있고 아시아인도 있어’라는 표현이 문제적인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이성애자이지만, 가끔 동성애자도 있고 양성애자도 있고 무성애자도 있어’와 같은 인식도 적절하지는 않다.

성적 지향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성적 지향을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등으로 나열해서 설명할 수 있다. 이때의 성적 지향은 개인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의미한다. 한쪽에는 배타적인 이성애를, 다른 쪽에는 배타적인 동성애를 두고, 중간지대를 설정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다. 여기서 성적 지향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향해 있는 성적 스펙트럼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에 가깝다. 최근에는 자신과 상대의 성별을 여성이나 남성으로 전제하지 않고 성적 끌림을 설명하는 방식도 모색되고 있다. 예컨대 이성애를 ‘나와 반대의 성에 대한 끌림’이 아니라 ‘나와 다른 성별(혹은 성별들)에 대한 끌림’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6월(통권 246호)

성적 지향을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 내가 상대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삶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성적 지향을 이해하는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다르고,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성적 지향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정답과 오답을 가려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적 지향에 대해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점, 여러 경험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은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적 지향은 인간 생애 전반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미국심리학회APA를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 집단은 강제적이고 임의적인 조치로 인해서 성적 지향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을 꾸준히 밝히고 있다. 성적 지향을 특정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여러 가지 조치(소위 ‘전환 치료’)는 개인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고, 성적 지향을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2016년 ‘전환치료 근절운동 네트워크’가 결성되어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적 지향이 완전히 고정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상황에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탐색을 통해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가듯이, 성적 지향 또한 달라지기도 한다. 심리학, 정신의학, 생물학, 사회학, 인류학 등 성적 지향에 대한 여러 분야의 연구는 성적 지향에 선천적인 특징과 후천적인 특징이 모두 담겨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성적 지향은 인간의 생애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특성으로서 그 자체로 중립적인 속성을 띠기에, 어떤 성적 지향은 올바르고 어떤 성적 지향은 해롭다고 할 수 없다. 성적 경험의 유무가 성적 지향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삶의 어떤 시점의 성적 지향이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성적 지향이 어떠한지, 성적 지향은 바뀔 수 있는지, 성적 지향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등이 아니라 ‘나’가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을 통해서 행복한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용기 있는 선택, 그리고 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동료 집단과 사회 제도일 것이다.

 

다양성 존중이 민주주의를 만든다 
성적 지향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성적 지향이 젠더, 섹슈얼리티의 다른 요소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있다. 나 자신을 어떠한 성별로 정체화 하는지(성별 정체성), 자신의 성별을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내는지(성별 표현), 성적 관계의 경험이 어떠한지(성적 실천), 특별히 선호하거나 원하지 않는 성적 관계의 형태는 무엇인지(성적 취향) 등은 개인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끌림(성적 지향)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성적 끌림을 제외하고 성적 관계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낭만적 지향’이라는 표현이 제안되기도 하고, 무성애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성적 지향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성적 지향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역동적인 운동이 전개되는 것과는 달리, 한국 사회에는 이성애만을 유일하게 올바른 성적 지향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양성을 두려워하고 공존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과 폭력을 금지하는 정책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인 간 합의한 성적 관계에 대해서, 동성 간에 이루어진 관계라는 이유로 인해서, 당사자가 구속이 되고 검사가 징역 2년을 구형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이야기한 것처럼, 성적 지향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사회, 성적 지향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사회, 다채로운 성적 지향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야말로 민주주의 사회라고 불릴 수 있다.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자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높은 시점에서 우리는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성적 정의를 실현해나갈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5년이 민주주의 사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시간이길 기대해본다. 

 


①    자세한 설명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만든 ‘한국성적소수자사전’을 참조할 것. kscrc.org

 

 

특집. 다르거나 틀리거나 2017-6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왜, 지금‘성소수자’ 이슈인가?

2. 성적 지향 이해하기

3. 남자 며느리와 함께 살기

4. 동성혼, 결혼의 해방과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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