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9월 2017-08-28   2236

[통인] 남겨진  ‘옥자’들을 위하여 – 영화감독 봉준호

남겨진 ‘옥자’들을 위하여

영화감독 봉준호

 

글.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 현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기자 겸 CEO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박영록

 

봉준호 (2)

 

영화 <옥자>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 봉준호 감독과 같은 장소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였다. 

 

봉 감독은 아이패드와 노트, 펜 하나를 들고 카페 구석에 앉아 작업을 했다. 테이블 한쪽에는 초코바 여러 개가 있었다. 세계적인 거장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팬심 가득한 눈으로 슬쩍슬쩍 봉 감독을 살폈다. 

 

그는 가끔씩 두 손으로 긴 머리를 쥐어뜯으며, ‘옥자’의 숨소리 같은 큰 한숨을 쉬었다. 봉 감독은 웬만해선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내가 점심을 먹고 카페로 돌아왔을 때도 봉 감독은 그 자리에 있었다. 초코바로 식사를 대신했는지, 초코바 비닐 포장지가 테이블 위에 수북했다. 

고백하자면, 봉 감독이 화장실에 갈 때 나는 그를 따라갔다. 봉 감독이 내 얼굴을 보고 이런 말을 걸어 주길 기대했다. 
“자네… 지금까지 어디서 무얼 하다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나? 내 영화에 엑스트라로 한 번 출연할 생각은 없나?”

분명히 두 번 눈을 마주쳤는데, 봉 감독은 내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는 볼일에만 충실했다. 테이블에 앉은 뒤에는 본업에 몰입했다. 작업을 세밀하고 치밀하게 한다고 붙여진 별명 봉테일, 천만 감독, 거장…. 이런 수식어는 괜히 생긴 게 아닌 듯했다. 그날 그 카페에서 누구보다 오래 자리를 지킨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옥자>가 세상에 나온 뒤, 봉 감독을 다시 만났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2층에서 봉 감독과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도 “나 좀 엑스트라로…”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1년 전 홍익대학교 근처 카페에서 본 적 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더라. 
시나리오 작성이나 콘티 작업을 카페에서 많이 하는데, 해당 영화가 개봉하면 그 카페는 없어지더라. 내가 조용한 곳에서 작업을 하는데, 조용한 곳은 손님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페 사장이 내가 나타나면 ‘아, 이건 곧 망한다는 신고인가?’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초코바 먹으며 종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영화 촬영 전에 체중이 120kg까지 나갔다. <옥자> 촬영 당시 모습을 보면 거의 만삭 임신부처럼 보인다. 지금은 17~18kg 정도 빠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엄마(김혜자)는 진짜 범인인 아들(원빈) 대신 감옥에 들어간 장애인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너, 엄마 없니?”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사회적 약자들이 살인 누명을 쓴 사건을 취재하면서 저 대사가 자주 생각났었다. ‘재심 시리즈 3부작’의 주인공 무기수 김신혜,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삼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 엄마가 없었다. 엄마가 있다 해도 살인 누명을 쓴 자식을 도울 처지가 못 됐다. “너, 엄마 없니?”라는 대사는 봉 감독의 디테일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누명 사건을 취재해 보니 <마더>의 그 대사는 ‘봉테일’의 상징인 것 같더라.
내가 만든 대사가 아니다. 박은교 작가가 쓴 시나리오 버전에 그 대사가 있었다. 정말 폐부를 찌르는 대사다.

 

이런저런 일로 교도소에 가는 사회적 약자에겐 정말 엄마가 없더라. 
<마더> 만들 때, 서울 관악구 봉천동 ‘여관 살인사건’을 취재했다. 순경이 여관을 떠난 뒤 강도가 들어 살인사건이 났는데, 순경이 누명을 썼다. 그때 여러 자료를 조사해 누명을 벗긴 인물은 바로 순경의 엄마였다. 엄마 한 명이 법조계와 ‘맞장’을 뜬 거다.

 

<옥자> 개봉 한 달이 지났는데. (인터뷰는 7월 말에 진행했다)
한 달에 관객 30만 명, 하루 만 명이 영화를 본 셈이다.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인데, 극장까지 온 사람들이다. 온 동네에서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이전의 300만보다 더 소중한 30만이다.

 

‘천만 감독’에서 독립영화 감독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 것 같다.
내가 천만 감독이긴 하지만, 십만 감독이기도 하다. 2000년 개봉한 <플란다스의 개>는 서울 4만, 지방 6만, 전국에서 총 10만 명이 봤다.

 

그건 오래전 일이지 않나. 
그때도 성공 기준은 약 ‘100만 명’이었으니, 심하게 망한 영화였다. 거기에 비하면 <옥자>는 인터넷에서 스트리밍이 되는데도 그때의 세 배 관객이 봤다. 포만감을 느낀다. 체감온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체감관객’으로 따지면 엄청난 포만감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옥자>를 받지 않을 것이란 예측은 못 했나?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옥자>가 극장에 걸리도록 유연하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대신 ‘우리는 회원들의 회비로 회사 운영하고 <옥자>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찍었는데, 극장에서 먼저 개봉하면 회원들에게 기다리라고 해야 한다, 회사 방침 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넷플릭스 측은 다른 부분을 많이 양보했다. 극장 수도 제한하지 않았고, 개봉 기간 제한도 없었고… 대신 <옥자> 오픈하는 날짜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멀티플렉스의 입장도 이해한다. 관객이 극장으로 와야만 볼 수 있는 그 기간을 원한 거였다. 그게 극장의 기득권도 아니고, 그런 기간은 감독 입장에서도 좋다. 어쨌든 양쪽의 협상은 결렬됐다. 

이런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각오는 하고 있었다. 총 100여 개 극장에서 <옥자>를 개봉했는데, 거기에 만족한다. 관객과의 대화를 많이 여는 등 내가 몸으로 많이 뛰었다.

 

봉준호 (1)

 

<옥자>에 너무 예쁜 장면이 많아서 극장에서 보고 싶긴 하더라. 
넷플릭스는 모바일을 중시 여기지만, 나와 다리우스 촬영 감독은 그들의 권유를 무시하고 작은 화면으로 볼수록 관객들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엄청 큰 롱샷에서 숲을 뛰어가는 미자가 거의 보일 듯 말 듯 점처럼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 건 TV 시리즈 같은 걸 찍는 분들이 피하는 화면이다. 가정에서 TV로 보면 잘 안 보이니까.

특히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을 보면 미자가 안 보일 거다. 나와 다리우스 감독은 일부러 그런 걸 많이 넣었다. 모바일로 보면 좌절하게 하려고. 극장으로 가거나 최소한 대형 TV로 보도록 유도하자고 했다. 그런 류의 화면이 <옥자>에 꽤 있다. 우린 큰 스크린 중심으로 작업했던 사람이니까, 평소대로 하는 게 원칙이었다. 

 

말대로 스크린 중심으로 일했는데, <옥자>를 만들면서 감정이 많이 불편했을 것 같다. 
화면 사이즈도 사이즈지만,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좋은 점이 바로 ‘상영을 중지할 수 없다’는 거다. 수백 명이 같이 웃고 울면서 보는 집단관람 체험도 중요하지만, 한두 명이 텅 빈 극장에서 영화를 보더라도 결코 개인이 상영을 콘트롤 할 수 없다. 집에서 보면 빔프로젝터건, 대형 TV건, 아이패드건 전화가 오면 ‘스톱’ 할 수밖에 없다. 화장실도 가야 하고. 극장에서 보면 자기 자신이 영화를 콘트롤 할 수 없기에 집중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극장에서만 상영되는 기간이 있는 게 감독 입장에서는 좋다. 참여연대 인터뷰가 번역돼서 미국 쪽에 나가진 않겠지?(웃음) 

 

넷플릭스 덕분에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고 영화를 무사히 찍었으니까 최소한의 예를 지키고 싶은데, 솔직히 감독의 입장에서 말하면 그런 게 있다. <옥자> 제작비가 600억 원이 넘는다. 넷플리스 덕분에 <옥자>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최종 편집권까지 보장 받았다. 여전히 그 점에서는 감사하다. 영화를 만드는 측면만 보면 넷플릭스는 파트너로서 최고다. 한국에서 100여 개 극장 개봉은 내 입장에서는 적지만, 넷플릭스 영화 중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극장에서 상영한 거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만족한다.”

 

<옥자>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돼지 ‘옥자’를 살린 게 의외였다. 봉 감독의 기존 영화는 좀 어둡고, 음울한 게 있지 않나. 
시나리오 쓸 때부터 옥자가 죽냐, 사느냐를 두고 고민한 적은 없다. 옥자는 구출되지만, 옥자 아닌 수천수만 마리의 다른 옥자는 죽음의 행렬에 서 있지 않나. 그걸 대비시키고 싶었다. 옥자가 구출돼도 도저히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강아지를 사랑하지만,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기도 한다. ‘얘는 가족, 얘는 음식’ 이렇게 임의적으로 분리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애초에 식탁에 오른 애나, 사랑받는 애나 다 같은 동물이다. 

 

<옥자>에서는 그 경계선을 허물려 했다. 가족이자 반려동물인 옥자는 구출되지만, 옥자와 똑같이 생긴 다른 애들은 고기로 분해되기 위해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걸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옥자는 살아도 그 죽음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는 결론을 처음부터 생각했다. 옥자를 죽이는 생각은 안 해봤다. 

 

이전 작품과 달리 <옥자>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전 작품들은 대체로 어두웠는데.
<옥자>가 밝은 영화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시작부터 다국적 대기업의 낸시(틸다 스윈튼)가 하얀 화장을 하고 나오는데, 뭔가 섬뜩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동화적이라고 느끼는 건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에서 노는 미자와 옥자의 평화로운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옥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대사는 미자의 할아버지(변희봉)가 말하는 “(옥자를) 그냥 산에 풀어놓고 키웠다”가 아닌가 싶다.
그다음의 변희봉 선생님 애드리브가 정말 재밌었는데, 내가 그걸 왜 편집했는지 후회된다. (웃음) 

 

어떤 애드리브였나?
옥자가 산에서 먹고 다니는 걸 막 나열하셨다. ‘뱀도 먹고, 쥐도 먹고, 거미도 먹고…’ 현장에선 재밌어서 막 웃었다. 편집에서 모두 잘랐다. 옥자가 뭘 먹는지 영화에는 묘사가 별로 없다.

 

 

이후 봉 감독은 <옥자>에서 미자 할아버지가 말한 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 했다. 

 

 

그럼 <옥자>는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는 영화인가?
할아버지가 말하는 ‘자연 속에 풀어놓은 상태’… 물론 인간은 원시 상태로 돌아갈 순 없다. 그런 이상향적인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현대의 어마어마한 공장식 축산은 한 번 돌아봐야 한다. 이건 비즈니스의 문제다. 대규모 이윤이 나오니까 사업하는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이다.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어마어마한 도축장을 종일 본 적 있다. 사진 촬영은 못 하게 했지만, 공장 쪽이 모든 단계를 다 보여줬다. 이전에 도살장 관련 사진과 다큐멘터리를 봤지만, 거기 가면 정말 압도적인 게 냄새다. 피, 분비물, 살… 이런 모든 것들이 뒤섞였고, 그걸 또 가공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냄새가 주차장 100미터 전부터 덮쳐오는데 정말 강렬했다. 

효율적으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분해하는 모든 단계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기계가 못 하는 일은 멕시코 등 남미 쪽에서 온 노동자들이 한다. 공장 벽의 표지판도 다 스페인어로 돼 있다. 이건 정말 엄청난 비즈니스의 문제고, (오늘날의 육식 문화는) 공급이 수요를 만든 것이란 걸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역사는 최근 몇십 년에 불과하다. 

100% 자연으로 돌아가 화살만을 이용해 동물을 잡아먹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공장식 축산은 역사가 짧고 최근에 등장한 비즈니스일 뿐이다. 이거 없이도 우린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인구가 증가해 식량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공장식 축산은 인간도 비참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그렇고, 공장이 사용하는 물의 양이나 사료, 소와 돼지의 방귀까지. 공장식 축산에서 소가 뿜어내는 메탄가스가 만드는 공해는 웬만한 북미 대도시의 자동차 배기가스 공기오염 지수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공장식 축산을 빨리 줄이지 않으면, 환경적 재앙은 계속 이어질 거다.

 

통인-교체 
통인

영화 <옥자>의 한 장면(위). 최근 문제가 된 ‘살충제 계란’ 역시 양계장의 공장식 축산이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평소 고기를 먹나?
안 먹은 지 꽤 됐다. 약 5년 전에는 혼자 고깃집에 가서 2인분 먹고 온 적도 있다. 요즘은 계란하고 해산물 정도만 먹는다. 고기는 한두 달에 한두 번 정도? 샐러드에 들어간 닭고기나 찌개에 들어간 돼지고기 같은 것만 먹는다. 식당도 바쁜데, 일일이 ‘고기 빼 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최근 서울 모처에 ‘옥자 순대국’이 생겼다고 트위터에 사진이 돌았다. 간판 글자와 디자인이 <옥자> 포스터와 비슷하다. 넷플릭스에서 저작권 침해로 소송 걸면 그 사장님 어쩌나 걱정이다. (웃음)

 

사회적 약자, 혹은 밑바닥 인생이 쓰는 입말이 잘 살아 있는 게 봉 감독 영화의 장점 중 하나였다. 대표적으로 <살인의 추억>의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 “밥은 먹고 다니냐?” “나는 고등학교 4년 다녔는데…” 등등이 있다. 하지만 <설국열차> 이후 영화에서 이런 걸 보기 어렵다. 
미국 뉴욕, LA에서 영화 행사를 할 때 보면 현지인들이 ‘꺄르르’ 웃는 상황이 많다. <설국열차>, <옥자>는 대사가 거의 영어라서, 그들은 말의 뉘앙스를 즐기더라. 가령 <설국열차>에서 틸다 스윈튼이 구사하는 영어는 영국 요크셔 지방의 사투리다. 그 사투리는 특정한 뉘앙스를 풍긴다. 마가렛 대처가 영국의 공업도시 요크셔 출신이다. <설국열차>에서 신분이 높은(?) 틸다 스윈튼이 털 코트를 입고 요크셔 언어를 쓰니까, 거기서 오는 복합적인 유머나 특유의 뉘앙스가 있다. 영어권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다음 작품 <기생충>은 100% 한국어 대사 영화다. 거기에서도 정말 이상한 가족들이 나오는데, 어쨌든 나는 돌아갈 거다.

 

찌질한 인물들이 살아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영화로 돌아오는 건가?
<기생충>에는 상층, 하층 사람 다 뒤엉켜 나오는데, 어쨌든 ‘그런 대사’가 난무할 거다.

 

<옥자>에서 함께 작업한 다리우스 촬영감독이 봉 감독에 대해서 극찬을 했더라.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많이 배려하고 존중한다고. 
왜 그런 말씀을… 왜곡과 미화가 많다.(웃음) 그분의 말을 믿고, 나의 실제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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