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12월 2017-12-04   1746

[듣자] 디누 리파티가 연주한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

디누 리파티가 연주한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

 

글. 이채훈 MBC 해직PD, 클래식 해설가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추운 세밑의 거리에 들려오는 따뜻한 피아노 선율이다.

 

바흐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 / 피아노 디누 리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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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함께 밝았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MBC는 새 경영진 선임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KBS는 이인호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영방송은 ‘우리 모두의 방송’이란 뜻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이런 공영방송을 ‘권력이 장악한 관제방송’으로 전락시켰다. KBS와 MBC가 ‘감시견’ 노릇을 제대로 했다면 최순실 국정농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두 방송사가 보여준 행태가 실망스러웠고 그만큼 영향력도 줄었으므로 KBS와 MBC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물, 공기처럼 맑은 공영방송을 잃었을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KBS와 MBC 정상화는 방송인들뿐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 모두의 과제가 아닐까. 

 

연말,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사람도 있고 여전히 힘겹게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심히 살았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한 사람, 부득이 양심을 속이고 괴로워하는 사람, 거친 말과 행동으로 이웃에게 상처를 준 사람… 누구에게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왔다면 그냥 아름다운 한 해였다고 생각할 일이다. 마음이 추워도 바흐의 따뜻한 선율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피아노 선율이지만 원곡은 바흐의 칸타타(cantata)①  《마음과 입과 행동과 생명으로(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BWV147② 중 제6곡과 제10곡인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Jesus bleibt meine Freude)>이다.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 내 마음의 위안, 생명수 

내 고통에 맞서 주고 내 삶에 힘이 되는 예수 

내 눈의 즐거움과 태양, 내 마음의 보배, 환희 

내 가슴과 얼굴에서 당신을 놓치지 않으렵니다 

 

이 칸타타의 제목은 기독교도가 아니라도 기억할 만하다. 순수한 마음, 정직한 입, 용감한 행동, 그리고 생명을 바치는 헌신…. 이 땅의 언론인들이 늘 가슴에 새겨 둘 만한 덕목으로, ‘예수’는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노래한 ‘님’과 같은 존재, 언론인들이 주인으로 섬겨야 할 국민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젊은 바흐는 혈기 넘치고 타협을 몰랐다. 궁정악단을 지휘하던 중 성의 없이 연주하는 파곳 연주자를 모욕하여 결투를 벌인 적도 있고, 시원찮은 오르간 주자에게 가발을 벗어 던지며 “차라리 구두수선공이 돼라”고 소리친 기록도 있다. 20대에 작곡한 <토카타와 푸가 D단조>는 젊은 바흐의 열정을 짐작게 한다. 

 

바흐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565 / 오르간 헬무트 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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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음악가는 귀족과 성직자의 하인이었는데, 젊은 바흐에게 이러한 봉건적 위계는 견디기 힘든 속박이었다. 바흐는 몰래 쾨텐의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바이마르 영주 빌헬름 에른스트의 분노를 사서 ‘명령 불복종’ 죄로 한 달 동안 구류를 살기도 했다. 바흐는 감옥 안에서 6곡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스케치하며 자기 인생을 돌아보았다. 

 

바흐 6곡의 첼로 모음곡 / 첼로 파블로 카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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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교회의 권위를 뛰어넘을 수 없던 그 시절, 바흐는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 안에서 내면의 자유를 택하기로 결심했고, 이때부터 종교음악뿐 아니라 세속음악에도 악보마다 ‘S. G. D(Soli Gloria Deo, 오직 신의 영광)’이라고 써넣었다. 꼭 300년 전인 1717년 무렵 바흐 자신을 위로했던 음악은,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를 힘겹게 사는 우리들을 위로한다. 차가운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이 우리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온다.

 

바흐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악보에 늘 ‘S. G. D’라고 써넣었다

 

영국의 피아니스트 마이라 헤스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뒤 수많은 분들이 훌륭한 녹음을 남겼다. 루마니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Dinu Lipatti, 1917~1950)의 마지막 연주에 얽힌 가슴 아픈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임파선 악성종양으로 33세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50년 9월 스위스 브장송에서 열린 그의 연주회는 눈물로 뒤덮였다. 병마와의 싸움으로 지친 그는 예정된 쇼팽 왈츠를 다 연주하지 못한 채 무대에서 쓰러져 버렸다. 안간힘을 써서 일어난 그는 다시 무대에 나와 작별의 곡을 연주했다. 바로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이었다. 마지막 투혼을 살린 리파티의 연주, 죽음마저 위로하는 바흐의 위대한 선율….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아, 리파티를 생각하니 여전히 병마와 싸우고 있는 MBC의 이용마 기자가 떠오르는 걸 어쩔 수 없다.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 정직한 입, 용감한 행동, 그리고 생명을 바치는 헌신’으로 불의와 싸운 방송인 아닌가. 

 


① 칸타타는 ‘노래’란 뜻으로, 기악곡과 대비되는 성악 장르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② BWV는 ‘바흐 작품 번호’라는 뜻으로 ‘Bach Werke Verzeichnis의 약칭이다. 1950년 바흐 작품을 장르별, 연대별로 정리한 볼프강 슈미더가 붙인 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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