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자] 2017 ‘올해의 음반’과 음악에 가까이 가는 방법

2017 올해의 음반과
음악에 가까이 가는 방법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민중의소리’와 ‘재즈피플’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 연출뿐만 아니라 정책연구 등 음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 등의 책을 함께 썼는데, 감동받은 음악만큼 감동을 주는 글을 쓰려고 궁리 중이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매년 연말이면 그해 특히 좋았던 음반들을 추려보곤 한다. 올해도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발표한 음반 가운데 특히 좋았던 음반들을 추려보았다. 예술적 완성도와 작가의식, 시대정신 가운데 어느 쪽에든 도달한 음반이라고 생각하는 음반 수는 52장. 리듬앤블루스, 일렉트로닉, 재즈, 크로스오버, 팝, 포크, 하드코어, 헤비메탈,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들여다보다 너무 많은 것 같아 조금 더 깐깐하게 줄여본다. 이제 23장의 음반이 남는다. 

 

듣자

 

이렇게 23장으로 줄였는데도 여전히 많아 보인다. 다시 줄여본다. 강태구 [Bleu], 검정치마 [Team Baby], 라드 뮤지엄 [Scene], 로다운30 [B], 새소년 [여름깃], 소마 [The Letter], 송은지 [Songs For An Afterlife], 아도이 [Catnip], 차붐 [Sour], 혁오 [23], 화나 [Fanaconda], 황호규 [Straight, No Chaser]까지 12장이 남는다.

 

이 음반들을 장르로 나눠보면 록, 리듬앤블루스, 재즈, 포크, 힙합으로 묶을 수 있다. 우리가 각각의 장르를 알고 있을 때 우리가 이미 예상하는 사운드와 방법론이 있다. 포크 음악은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될 것이고, 록은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강렬한 소리를 만들어낼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각각의 음반들은 어떻게 차이를 만들어내고, 개성에 이르고, 완성도를 높였을까. 

 

좋은 음악의 조건

그 차이는 음악 안에 담은 소리의 분출과 연결, 균형과 공백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어떤 생각이든, 어떤 감정이든 음악은 결국 소리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음악이 사용하는 소리는 비트와 멜로디, 화음, 톤과 사운드로 귀결된다. 멜로디로 대표되는 선율이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대변해야 하고, 비트가 그 감정과 생각의 범위 안에서 조화롭게 펼쳐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톤으로 일체화된 소리의 구조를 만들어낼 때 음악은 완성된다. 

 

그러나 좋은 음악은 이렇게 기본적인 역할을 다하는 것만으로 개성과 완성도에 이르지는 못한다. 금세 지나가버리고 사라져버리는 소리들을 이어 소리의 공간을 만들고, 소리의 공간으로 음악에 담긴 이야기를 구현해 내야 한다. 그리고 듣는 이들이 소리의 공간 안에서 거닐고 뛰놀고 꿈꿀 수 있어야 한다.

 

한 곡의 음악 안에서 주인공은 뮤지션이지만 뮤지션이 음악 안에 듣는 이들이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듣는 이들이 음악 안에 깃들 수 있다. 그 공간은 뮤지션의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는 공간으로 흡인력과 여백을 동시에 품고 있어야 한다. 소리 공간의 흡인력은 얼마나 밀도 높게 감정을 재현하느냐에 따라 갈리는데, 이 안에서 듣는 이들이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야 한다. 그 여백에는 기존의 어법과 관성이 아닌 소리의 전복과 탈주가 이어져야 한다. 이야기의 중심을 향해 쌓아가는 집중력과 동시에 새로운 어법으로 인한 해체가 얼마나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지에 따라 음악의 생명력이 결정된다. 

 

흡인력과 여백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생명력

가령 강태구의 음반 [Bleu]의 경우 익숙한 어쿠스틱 악기와 보컬의 연주임에도 단순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음반에 담긴 소리는 영원에 가까운 여백을 만들어내고, 그 여백의 무한으로 빨려들게 만든다.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줄 수 없지만 우리 모두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원을 간직하고 있다. 강태구는 바로 그 영원을 남다르지 않은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칠 때마다 응시하면서 소리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멜로디의 아름다움도 매력이지만 보컬에서부터 숨겨지지 않는 허허로움은 삶의 본질이 그렇게 없는 것, 사라지는 것, 붙잡지 못하는 것, 그리고 언제나 그렇게 존재하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강태구가 비움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만든다면 어떤 뮤지션들은 멜로디의 밀도를 높이거나 음악의 농도를 낮춤으로써 혹은 장르의 방법론을 뒤섞음으로써 음악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강태구혁오

강태구 [Bleu], 혁오 [23]

 

혁오의 [23]의 경우 기본적으로 명징한 구조 안에서 선명하고 강력한 멜로디를 구사하는데, 그 멜로디의 기승전결이 노래의 서사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감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혁오는 록에 국한하지 않는 장르의 방법론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음악의 서사를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음악을 듣는 쾌감을 극대화하고, 서사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래로 좋은 곡은 밴드의 음악이자, 혁오의 음악으로 차별화된다. 나에게 와서 오래 머문 음반들, 혹은 다른 이들에게 와서 머문 음반들 역시 이렇게 분석해보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구조와 관계를 헤아리며 들을수록 음악은 더 많은 울림을 준다. 음악은 늘 햇살처럼 울림을 터트리고 있다. 이제 그 울림 아래서 좀 더 자주 눈을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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