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4월 2018-04-01   928

[통인뉴스] 시민사회의 변화된 조건과 시민단체 역할론

시민사회의 변화된 조건과
시민단체 역할론

 

글.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포럼

 

시민사회는 흔히 정부나 국가기구, 제도적 장치의 잔여로 이해된다. 국가 ‘외부’로서 시민사회라는 인식은 역사와 장소에 따라 그 역할과 구성, 이념 등이 변해왔다. 동시에 시민사회를 이루고 있는 시민개념이나 시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민성 또는 시민윤리 또한, 역사특수적인 사회적 조건에 의해 연속·단절·변화를 거듭해왔다.

 

보통 시민사회는 무정형성, 이질성의 공간으로 설명되지만 일정한 호흡을 가져왔으며 많은 연구자들은 그 추세를 포착해왔다. 특히 최근 10년간 세계적으로 분출된 시민사회의 유형은 일찍이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을 따라 ‘네트워크 사회’로 설명되어왔고, 그러한 속성은 시민운동에도 곧바로 적용되어 ‘네트워크 사회운동’으로 분출되어 왔다. 이에 시민단체와 같은 매개자 즉, 정부와 개별자 시민을 잇는 조직들은 그러한 변화양상을 읽고 그에 맞춰 자기임무를 설정해왔다. 

 

이상의 일반적인 논의는 한국의 시민사회나 시민단체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럼에도 한국적 특수성이 교차하며 일반성과 예외성들이 형성되는데 이를 읽어내는 것이 시민단체가 요구받는 정세독해력일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는 지난 대규모 촛불저항의 분출로부터 발생한 균열을 이해하고 시민사회의 변화된 성격을 구명究明하기 위해 <참여사회포럼> ‘촛불 이후’를 개최했다.

 

네트워크 사회운동의 대두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신진욱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변화의 시간적 층위를 총 3개의 모멘트로 설명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이는 ‘1987년’, ‘2002년’, ‘2017년’의 각각의 계기의 특징이 시간 순으로 축적①되어왔다. 각 시기는 당시 제도정치의 능력, 시민사회 저변의 농도에 따라 일종의 전환점이 된다.

 

1987년은 잘 알다시피 제도적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역량이 부족한 정당을 대체해 시민단체가 준정당적 역할을 맡게 된 시기다. 2002년은 ‘효순이·미선이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촛불정치의 등장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정치참여가 폭발한 시점이다. 이는 민중운동이나 전통적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일정부분 탈각한 자생적인 대중운동의 발견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계기인 2017년은 지난 촛불광장에서 볼 수 있듯 국가와 정당을 압박하는 ‘다수’의 힘과 가능성이 입증된 동시에, 언론과 SNS의 중요성이 확대되거나 재확인된 순간이었다. 이는 제도정치의 강화, 즉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 저변의 확장이라는 두 줄기의 상호관계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 발생한 다수의 힘이 얼마나 큰 규모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운동의 성패가 갈릴 정도로 시민정치의 저변은 확대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민들은 조직된 단체의 깃발 아래 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의 사회운동이 통일성, 중심성, 공식성을 기반으로 ‘조직’되어 왔다면, 현 시점의 운동양식은 다양성, 탈중심성, 비위계성, 정보성, 분산성 등을 기반으로 ‘개방’되고 있다. 이른바 ‘네트워크 사회운동’이라 부르는 자생적 사회운동이 2002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2010년대 세계 각지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경향이기도 하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이 경향의 한 사례로서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반격’을 제시했다. 포데모스(Podemos)는 무정형의 네트워크 사회운동으로 출발한 진보좌파정당이다. 신생정당임에도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내며 스페인 내 제3당에 올라있다. 이들의 성공은 이른바 ‘좌익 포퓰리즘’이라는 현상에 기인한다.

 

TV스타 같은 외모의 젊은 지식인이 연단에 서 좌중을 압도하고 ‘사회주의’, ‘자본주의’, ‘좌파’, ‘계급’ 같은 단어 대신 계급개념이 희석된 ‘서민’, ‘카스트(귀족)’ 같은 용어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또한 이들은 기존의 정당처럼 대의원대회 등 위계적 장치를 활용하지 않고 수평적 토론에 집중한다. 전통적인 정당과는 다른 탈중심적 전략을 통해 대중의 힘을 흡수·확장하는 것이다. 

 

이중의 압박, 변화한 시민단체의 역할

하지만 포데모스 사례와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폭발적인 대중운동이 신생정당의 건설이나 진보정당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았고, 기존정당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기존정당은 집중된 자원을 토대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시민들은 정치참여 수단이 다양화됨에 따라 더 이상 정당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시민단체라는 매개를 활용하지 않는다. 시민단체는 이러한 이중의 압박에 처해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역할 축소라는 ‘위기설’에 대해 신 교수는 과거 정당과 제도, 시민의 미성숙이라는 구조적 공백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이례적으로 많은 역할을 자임해왔고, 현재의 상황은 입지의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환경, 즉 성숙도가 일정 수준 높아진 조건에서 시민단체는 다른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할 때만 움직이는 정당, 생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지속성 보단 휘발성을 띄는 시민들 사이에서 시민사회단체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민이 쥘 무기를 벼리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지속적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하며 해결을 위한 대안을 명료히 정식화함과 동시에 전문가 자원을 동원해 신뢰도 높은 지식과 정보 생산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통해 다중으로 흩어진 시민들이 어떤 의제로 뭉쳤을 때 그들의 손에 당장 사용가능한 무기를 쥐어줄 수 있어야 한다. 

 

흔히 혁명이나 그에 준하는 대규모 대중운동의 발생은 여러 조건들의 우연적 마주침의 결과로 설명된다. 사회경제적 모순이 점증하고,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다수의 항거는 다소 많았지만, 이것이 곧 거대한 변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시민단체는 항상 그 우발적인 상황에 앞서서 시민들이 내뱉을 말과 쥘 무기를 날카롭게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변화된 조건 속에서 시민단체가 요구받는 역할이다. 

 


계기적 특징이 강화될 수도 약화될 수도 있는 중첩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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