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5월 2018-05-02   1706

[통인] 죽음 같은 노동으로 빚어내는, 드라마 –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죽음 같은 노동으로 빚어내는, 드라마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수 있는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우리가 매일 보는 드라마 뒤에 방송노동자가 있다. 그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연출을 비롯해 작가, 촬영, 미술, 음향, 조명…. 오늘은 그들의 노동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인권센터’) 이한솔 이사는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활동하다 목숨을 던지며 처참한 방송노동 현실을 고발한 故 이한빛 PD의 동생이다. 입사 1년여 만에 벌어진 한빛 씨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방송노동, 특히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운동은 동생 한솔 씨가 여러 사회운동단체들의 도움으로 대책위를 꾸려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지난 1월 한빛인권센터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주 52시간 노동을 통해 노동자건강권을 이야기하는 시대, 장시간노동을 넘어 무제한노동에 시달리는 방송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왜 개선이 더딘지, 어떻게 해야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지, 이한솔 한빛인권센터 이사로부터 들어보았다. 

 

메인

 

한빛인권센터 일에, 민달팽이유니온 일에, 투잡 하신다고 들었다. 지금도 어디 다녀오시는가 보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 주거지원 사업을 하는 곳이어서,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입주예정지를 다녀오는 길이다. 천호역 인근인데, 지역주민들이 ‘혐오시설 입주 반대’라며 조직화된 반대를 하신다. 그게 아님을 알리고자 하는 건데, 거창한 건 아니고 워낙 젊은 친구들의 일이라 재미나게 UCC 영상 만들고 그런다.

 

방송노동자를 위한 한빛인권센터가 지난 1월에 출범했다던데?

서울시와 협약을 맺어 방송업계 노동자 쉼터의 운영권을 위탁받는 형식으로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상암동의 공간에 입주하려고 지금 인테리어 공사 중인데, 최근에도 드라마 <화요기> 제작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사고로 중상을 입는 등, 과도한 노동, 열악한 노동의 문제가 이어져서 일단 상암동에 임시사무실을 얻어 특별근로감독 신청, 미디어신문고 개설을 통한 현장 제보 받기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방송노동 개선 중에서도 주로 드라마 제작 쪽에 집중하는 건가?

그렇다. 드라마제작환경 개선이 센터의 주된 목표이다. <혼술남녀> 사태 이후 대책위 시절부터 꾸준히 관련된 일을 해왔고, 이젠 방송노동자들도 많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동안 드라마 외주제작의 문제점 얘기가 많았는데?

드라마제작환경은 건설업종과 매우 흡사하다. 일단 방송사가 원청업체로 제작사와 주로 턴키계약을 한다. 그럼 제작사가 촬영, 미술, 조명, 음향 등 개별업체와 다시 계약하고, 이들 팀이 마치 인력시장에서 건설노동자 조달하듯 각 분야 팀원을 모집해 일하는 식이다. 이처럼 직접고용이 아니다 보니, 일 터지면 원청인 방송사나 제작사는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턴키계약이다 보니 제작현장의 노동자들이 임금을 얼마나, 어떻게 받는지 알 길이 없다. 

 

방송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은 없는 건가?

건설업계 일용직 노동조합이 불가능에 가깝듯, 방송업계도 계약 특성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미디어 신문고를 언급하셨는데, 대표적인 현장 제보가 있었다면? 제일 끔찍했던 사례를 말해 달라.

지금 한창 인기몰이 중인 C드라마의 경우, 현장제보를 통해 초기 대응을 잘 해 해결 국면을 맞고 있다. 초창기엔 센터에서 태스크포스를 꾸려서 직접 현장에 찾아가 인터뷰도 하고 드라마 <미스티> 같은 경우를 특별근로감독 대상으로 신청하고 그랬다면, 이제는 센터 활동이 알려지면서 신문고로 제보가 들어온다. C드라마도 그런 경우다. 그런데 해결 국면이라는 게 좀 기가 차긴 하다. 6일 21시간 노동(하루 3시간 휴식… 이 경우 집에 갈 수가 없다. 근처 찜질방에서 잠깐 눈 붙이고 나와야 한다)에서 7일 18시간 노동(휴일은 없어졌지만, 그나마 집에 가서 몇 시간 자고 나올 수 있다)으로 조정한 거니까 말이다.

 

꼭 그렇게 엄청난 노동시간을 퍼부어서 제작해야만 하나?

<혼술남녀> 때부터 이미 대두된 흐름인데, 지상파 3사 및 JTBC, CJ 등 대부분의 드라마가 예전엔 60분짜리였다가, 80분~100분 편성으로 늘어났다. CJ가 100분 편성을 고집하는 이유는 중간광고 넣어서 광고수입 늘리려는 거다. 그런데 주 2회분, 즉 200분 분량을 채우려면…. 삐끗하면 죽음 같은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다. 앞서 말한 C드라마는 사전제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미투운동으로 하차한 배우의 분량 때문에 재촬영이 이뤄지면서 노동 강도가 극악해졌다. 모든 현장엔 이런 변수가 발생하지만, 문제는 변수 발생의 부담이 모두 촬영현장 종사자의 몫이라는 데 있다. 태스크포스에서 조사해보니 평균 주 6일 20시간 노동이었다. 

 

암담하다. 그런 비인간적 노동이 어떻게 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이뤄진단 말인가? 노동당국의 규제도 안 받나?

태스크포스에서 노동청에 특별근로감독 넣은 게 그런 이유에서다. 당시도 그랬지만, 결국은 미디어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이 관건이다. 턴키 계약, 프리랜서 노동 등이 통상적 고용계약에 따른 노동이 아니라고 고용노동부는 나 몰라라 해버린다. 30년 넘게 이어진 업계 관행에 대한 고발과 문제제기가 <혼술남녀> 사태로 봇물을 이뤘다. 다행히 조금씩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지금 특별근로감독, 근로자성 인정 문제가 지방청에서 본청으로 넘어가 있다. 이제 장관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한번 결정나면 주 100~120시간 노동이 단숨에 주 52시간으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역으로, 근로자성 인정 못 받으면 문제해결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왜 이런 끔찍한 현실이 그리 오래도록 공론화되지 못했을까?

방송가에 고질적인 문화가 있다. “너, 드라마 찍고 싶어 들어온 거 아냐?” 그러면서, 열정노동을 강요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말이 좋아 문화지, 문제제기 했다가는 업계에서 아예 매장당한다는 그런 협박의 분위기 같은 거다. 가령 어느 팀이 문제제기를 한다고 치자. 그런데 이 팀은 1년에 4~5개의 드라마를 찍어야 겨우 굴러가는 팀인데, 문제제기를 했다, 안 써주면? 그렇게 팀 전체가 제작사로부터 배제되어 버리는 실정이다 보니, 다들 견디며 온 거다. 너무 수틀리고 못 견디면 개인이 그냥 떠나는 분위기다. 

 

<혼술남녀> 사태로 문제제기가 촉발되고, 결국 발뺌하던 CJ도 사과하고 기금 조성을 통해 한빛인권센터 출범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무제한노동의 현실과 현장에서의 사고는 계속 재발하고 있다.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드라마 업계에서 직접 일해본 건 아니지만, <혼술남녀> 사태 이후 연구하고 분석한 바에 따르자면, 첫째, 최대촬영의 기준을 마련해 엄수하게 해야 한다. 상한선을 못 박아 두자는 거다. 그럼 사전제작기간 늘릴 거고, 쪽대본도 안 나올 거고, 결국 노동조건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둘째, 방송사의 편성 문제도 심각한 사안이다. 특히 방송3사의 합의가 중요하다. MBC 최승호 사장도 최근 그와 같은 개선책을 얘기했는데, 드라마는 60분 체제로 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돌발변수는 무조건 일어난다. 그에 따라 노동자에게 가중되는 부담을 완충하려면 편성 부담부터 줄여야 한다.

 

셋째는 도제식 문화, 너무나 명백한 갑을구조의 개선이다. 이 부분을 개선하려면 먼저 원청 쪽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이제는 (외주제작이 너무 보편화된 나머지) 직접제작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선 필요한 개선책이 원청의 책임을 높이는 방식이다. 외주제작이 불가피하다면, 외주제작 팀과 방송사가 직접 계약하는 식으로 가는 게 제일 좋다. 외주제작이라 해도 직접 계약이라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진다. 책임 소재 명확해지면, 방송사와 채널이 참으로 많은 요즘 상황에서 외주제작이 꼭 나쁜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서브

앞으로 한빛인권센터에서 할 일이 많아 보인다. 향후 센터의 주력이 될 사업을 꼽는다면?

일단은 방송노동자의 근로자로서의 지위 인정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제작환경이 급격히 변해 사전제작이 대세를 이룰 거고, 초과노동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 이처럼 커다란 분기점을 이룰 최대 화두이므로, 센터가 거의 ‘몰빵’ 수준으로 매달리고 있는 사안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방송사를 둘러싼 환경도 많이 바뀌고 사회환경 전반도 바뀌고 있다. 그런 방송환경 전반의 변화에 거는 기대는?

사실 드라마제작 현장 노동자들의 실태가 이렇게 심각해지기 이전에 언론노조 등에서 먼저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묵인, 방관의 단계를 넘어 갑질을 자행하고 일그러진 문화를 정착시킨 데에는 방송사의 실권자들 책임도 있다. 약자인 현장 노동자들의 착취를 용인한 방송국이 있었던 거다. 정권의 변화, 상층부의 변화뿐만 아니라 방송사 실권자 분들도 마인드를 바꿔 비정규직이나 약자들의 입장을 헤아려 먼저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열악한 도제식 문화의 전통을 깨뜨릴 수 있다.

 

KBS, MBC 신임사장들은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고, 정규직인 PD분들도 그런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저의 형도 마찬가지 고민을 했던 거다. 정규직으로 들어가 자신이 관리자로서 한 행동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비판해온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했고, 거기서 환멸을 느낀 거였다.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하지 않나. 이한빛 PD의 희생으로써 밝혀지기 시작한 방송노동의 현실을 두고, 이제 남은 사람들은 보다 나은 단계로 도약함으로써 그의 희생에 답해야 하겠다. 

지난 1년간 크게 안 바뀐다고 실망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앞서 말한 인기드라마 C드라마의 경우도 그렇듯 느리고 미약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이뤄나가자고 당부드리고 싶다. 

 

대책위 활동을 하고 인권센터를 만드는 동안 대학도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형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자 미디어노동환경의 변화를 불러오는 길, 돌아보면 어떤가?

당시로써는 그게 당장 해야 할, 너무나 명백한 일이었다. 부모님도 그런 저를 내심 안쓰러워 하셨을지 모르지만, 별말씀 없으셨고, 내겐 그저 명확한 일이었을 뿐이다. 친구들도 한창 사회로 진출하는 즈음이긴 한데, 우리 세대를 보면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꿈꾸는 시대는 이미 지나버린 게 아닌가 싶다. 꿈꾸던 직장에 들어가도 자아실현을 바랄 수는 없고, 오히려 실망만 많아지고 착취나 당할 뿐이다, 즉 노동은 노동일뿐이라는 풍조가 만연해진 거다. 자아실현은 노동이 아닌 곳에서 하는 거고, 노동은 그저 돈을 버는 일일 뿐이라는 거. 그런 점에서 내 일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기쁜 일이라서 좋다. 민달팽이유니온도 그렇고, 센터 일도 그렇고, 나는 내가 하는 일, 좋다. 잘 맞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웃음)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도 만날 텐데,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친구들의 회사 욕, 상사 욕 들어주고, 주거상담, 노동상담도 해준다.(웃음) 꿈꾸던 회사에 들어가 꿈과 희망을 잃어가는 이야기, 그런데 그런 세상을 바꾸려는 친구가 옆에 있어 너무 좋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실컷 들어주고 후원하라고 들이민다.(웃음)

 

대학에 다니면서 ‘주거권’을 얘기한 민달팽이유니온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전교조 창립멤버인 아버지를 보며 자라 사회를 바꾸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고, 굉장히 비정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대학 학내에서도 자연스레 그런 활동판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사회운동 단체로 이끌고 나오는 일도 하게 되었고. 

 

특정 세대의 주거권을 다루는 데서 오는 한계도 있을 법한데?

한국의 주거빈곤층은 대개 청년층과 노년층에 포진한다. 20~30대 청년, 60대 이후 노년층의 40% 정도가 주거 빈곤 상태인 거다. 청년들에게 집을 달라는 운동이 아니라, 주거약자를 보호하라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으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운동이다. 청년 세대 주거문제, 청년 노동 문제 등 세대별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냐는 우려의 시선이 여전히 크다는 것도 잘 안다. 어떤 세대가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노동문제, 주거문제를 볼 때는 기존의 감수성의 틀에서와는 또 다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세대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세대가 보는 주거문제는 다를 수 있다. 그렇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세대의 외침, 당사자의 외침으로서 청년주거, 청년노동의 문제를 봐주시면 좋겠다. 

 

 

‘이런 청년의 기운이라면, 이런 청년의 패러다임이라면, 거기에 기대 세상의 변화를 기대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인터뷰 말미,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복잡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고 했던가. 결국은 우리 삶의 기본인 노동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노동을 하며 살고 있건, 대한민국의 일상적인 노동의 터전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저 대기업들을 보라. 직원을 종 다루듯 하는 오너가 있는가 하면, 노조 파괴를 위해 온갖 비열한 술책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초일류기업도 있다. 우리는 그런 노동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다. 그렇게, 그렇게, 일그러진 노동 문화는 지긋지긋 이어져 별 힘 없는 개인을 집어삼킨다. 

 

그렇지만, 개인은 대개 무력하지만, 뭉친 개인들은 훌쩍 강해진다. 쌓인 불만과 부조리가 봇물처럼 터질 때, 서로의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노동인권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건강과 존엄을 위해서는, 터지는 봇물을 잘 활용해야 한다. 드라마 너머, 카메라 너머, 거기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뜻을 모으는 방송노동자들이 있음을, 형을 대신해 그들을 위해 동분서주 중인 청년 활동가가 있음을, 드라마를 물리며 문득 떠올려 마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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