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7-08월 2018-07-02   2494

[특집] 이중적 국회의원의 역할, 이제는 균형이 필요하다

특집2_이게 국회냐!

이중적 국회의원의 역할,
이제는 균형이 필요하다

 

글.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국회의원은 취임과 함께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서 엄숙히 선서”한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이중적이다. ‘개별적·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의 의원’과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의원’이다. 두 역할은 상충한다. 

 

정당 조직원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우선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이 우선이다. 얼마 전 있었던 자유한국당 두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은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표결결과였다. 당시 113석의 자유한국당 의석수를 넘어서는 141표와 172표의 반대표가 나왔다.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최소 20표 이상의 ‘반란표’가 나오지 않고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여당 원내대표가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국회가 제 식구 감싸기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자가당착이며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했지만 그게 사실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동업자 의식’을 발휘한 셈이다. “이런 식이면 모든 국회의원이 조사대상”이라거나 “지역민원 때문에 고민하는 건 국회의원의 고통”이라는 당사자들의 호소가 동료의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당론투표로 대표되는 정당집단주의가 ‘독점과 배제의 정치’는 물론 ‘대립과 교착의 의회정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원인이라면, ‘권고’ 당론조차 따르지 않은 그들의 행동은 ‘헌법기관’으로서 바람직하다. 문제는 국민적 공감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느냐다. 국회의 자기 식구 지키기나 자정 노력 부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말 그래야 할 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제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당론에 충실한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역할을 우선했다. 이미 시한을 넘긴 후반기 국회 원 구성부터 그렇다. 9월 정기국회까지 국회 지도부 공백 상태가 우려된다. 5월 말까지 국회 의장단 구성을 완료하도록 한 걸 헌법기관으로서 지키지 못했지만 어느 누구도 걱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직무유기다. 현재 국회에 1만 여 건의 법안이 계류 중인 건 차치하더라도 청문회 없이 경찰총수가 바뀔 수도 있다. 

 

무릎

지난 6월 15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6.1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국민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유한국당

 

‘직무유기’와 ‘식물국회’의 일상화

대한민국 국회의 오래된 관행이 된 ‘합의 지향형 규정’ 때문이다. 원내 교섭단체와 원내대표로 불리는 정파 간 협의와 합의를 통해 법안처리 여부와 의사일정이 정해진다. 법적 강제규정이라도 여야 협의와 합의가 없으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만장일치형 국회운영’이지만, 여야합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다. 새로운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가장 빠른 개원”이니 “역대급 지연 개원”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건 개원조차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헌법기관이 헌법과 법률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의회’의 포기다. 책임의회는 ‘문제제기’의 국회가 아니라 ‘문제해결’의 국회다. 국민 삶의 문제해결을 위해 적절한 입법선택과 결정이 적절한 시점에 이뤄지려면 ‘당론투표의 최소화’와 ‘다수결 원칙의 존중’이 필요한데 우리 국회엔 이게 없다. 당파적 이익이 국민적 이익에 앞서는 거다.  

 

이번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이 작년 12월 13일, 완료되어야 했지만 올해 3월 초 예비후보 등록 때까지도 확정하지 못했다. 예비후보들은 자신의 지역구도 모른 채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광역의원 정수와 선거구 그리고 시도별 기초의원 총 정수를 국회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년 전 총선 때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 선거구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헌법기관으로서 정해진 걸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 오늘 우리 정치와 정치인의 수준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민주화 30년의 한국 정치가 청산해야 할 ‘적폐 1호’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는 출발점은 정해진 걸 제때 행하고 제대로 지키는 일이다. 정치는 곧 약속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액션의 정치개혁과 개헌

작년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그 후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도 논의를 거듭하는 모습만 ‘연출’했다.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건 광역의원 정수 때문인데 여야가 증원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몇 명을 늘릴지를 놓고 합의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방의원 총수를 유지하면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의 기능을 조정하는 방향은 고려하지도 못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선거제도가 되어야 하는지는 아니었다. 광역의원 선거제도를 놓고 대립하는 거대양당이 기존의 2인 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3~4인 선거구를 늘리는 기초의원 선거제도 개선안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같은 입장인 걸 보면, 결국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하냐가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헌정특위는 3월 말 청와대 개헌안 제출 이후 사실상 논의가 중단되었다가 4월 16일 제14차 전체회의가 마지막 회의였다. 사개특위 위원장조차 “개혁과제에 대해 제대로 논의조차 어려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사법과 정치개혁 과제가 지난 2년간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전망이 밝지 않다.  

 

국회의 개헌논의 실패는 ‘협상과 타협 그리고 제도설계능력의 부재’를 상징한다. 총론에 공감하면서도 구체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개헌안과 자유한국당 개헌안의 목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부터의 탈피다. 모두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권력집중에서 수평적 분권을 지향한다.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국회권한과 기능의 확대’가 핵심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역할과 이익을 우선한 게 실패에 결정적이었다. 

 

총리 추천제가 출발점일 수도

‘총리의 국회선출(변형된 의원내각제) vs. 총리의 국회동의 대통령 임명(제왕적 대통령제의 8년 연장)’의 대립은 두 개의 상충되는 국회의원의 역할 중 어떤 게 우선되었느냐를 보여준다. 한 쪽에서는 총리가 대통령의 정치적 보조 장치다. ‘현재권력’이자 미래권력으로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연한 정치적 선택이다. 다른 한쪽에서 총리는 독자성을 일부라도 갖는다. 

당분간 대선승리는 어렵지만 원내 1당 가능성을 가진 정파의 합리적 선택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 역할이 우선되었다면 ‘국민직선 대통령과 총리 추천제’는 개헌논의와 타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여야가 대통령 권력분산에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정도의 차이기 때문에 총리역할과 권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분권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통한 협치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가장 낮은 수준부터 출발한다면 ‘국회의 총리 복수추천과 대통령 지명 그리고 해임 건의권을 가진 총리’가 가능하기도 했다. 헌법기관이자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국회의원의 이중적 역할, 이제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 국회의원과 정당의 각성과 노력을 기대한다.   

 

 

 

특집. 이게 국회냐! 2018년 7-8월호 월간참여사회 

1. ‘국회 패싱’ 현상을 말하다   

2. 이중적 국회의원의 역할, 이제는 균형이 필요하다   

3. 바람직한 의회정치를 위하여  

4. 우리동네 국회의원 감시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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