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국회 패싱’ 현상을 말하다

속표지

 

특집1_이게 국회냐!

‘국회 패싱’ 현상을 말하다

 

글.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말했던 그 광장에서 시민들이 나눈 고민은 새 정부 출범 이후 현실의 다양한 공적 실천으로 나타났다. 공영 방송사 사장이 바뀌었고, 세월호가 세워졌고, 묻혀 있던 진실에 대한 규명작업과 억울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공공기관과 민간영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17년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고 걸림돌도 많아 보인다. 그중 국회는 단연 톱으로 꼽힌다.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 눈에 국회는, ‘발목 잡고, 미적거리고, 시민들이 시키는 일은 안 하면서 지들 좋은 일은 번개같이 하’는 밉상 중 밉상이다. 앞서 말한 새 정부 출범 이후 공적 실천들은 대개 대통령이나 행정부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더 대비가 되어 보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을 하면 대답이라도 나오는데 국회는 답이 없다. 한다는 건지, 안 한다는 건지,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한다는 건지…. 대안을 말하기 이전에,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촛불 이후 국회가 더 갑갑하게 느껴지는 이유

많은 시민들은 그때 그 광장에서, 그리고 이후의 일상에서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이 더 온전히 현실의 규범이 될 수 있기를 바랐고, 선거제도를 바꾸어 다시는 저런 대통령과 집권당이 나오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청소년과 청년의 현실이 바뀌려면 교육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공감했다. 노조결성을 했다는 이유로 탄압받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바꿔야겠다, 언론이 다시는 시민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국회의 입법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우린 많은 가시적 변화를 체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와 그가 통솔하는 관료조직만으로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촛불 이후 국회를 더 갑갑하게 느끼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국회 패싱’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는 비약적으로 커졌지만 국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맴돌고 있는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분노와 냉소가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그럼 촛불과 탄핵이 지났음에도 국회가 지금 저러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듯이 우리가 2017년 5월에 한 선거는 대통령 선거였고 2018년 6월에 한 선거는 지방선거였으며 국회를 새로 구성하는 총선은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촛불 전 구성된 국회가 촛불 이후 정책요구를 받아들이는데 지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회해산과 조기총선을 말하기도 한다. 물론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나니까 하는 말일 터다. 

 

다음 총선까지 2년여의 시간은 길어 보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유익한 시간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촛불광장에서 앞으로의 사회변화에 합의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말했고 들었지만 어느 한 방향으로 합의해낸 건 별로 없다. 권력형 비리를 뿌리 뽑기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교육개혁을 말하지만 어떻게? 재벌개혁은 대체 어떤 방향으로? 노동이 존중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되긴 해야 하는데, 대체 무엇부터? 

 

이 모든 걸 ‘이니’한테 맡겨 두면 잘 해결될까?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래서도 안 된다. 지도자가 아무리 도덕적이고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에게 정치공동체의 운명을 위탁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또 견제받지 않고 모든 걸 떠맡은 지도자는 과부하에 걸릴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하더라도 앞으로 2년 동안 우리 사회 핵심의제들에 대해 어떤 방향을 설정해 나가야 할지 정당들에 답을 요구하고 시민들 사이에 공론화 과정도 거쳐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만들어야 할 변화는 훨씬 더 긴 시간 우리의 삶과 우리 자녀세대의 삶을 결정할 중대하고 근본적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년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이 시간을 우리가 서로에게 유익하게 활용해나갈 수 있다면 21대 국회는 좀 더 숙고된 정책 방향을 추진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국회와 대통령의 결정적인 차이 

지금 국회가 갑갑해 보이는 두 번째 이유는, 정당체제 재편기라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촛불 이후 보수정당의 분화와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지자걸음이 국회 전체의 원활한 운영을 가로막고 있다.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현재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한 축은 지난 30년 한국 정당체제의 중심축이었다. 촛불 이후 한국 보수는 변화된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해 자기 변화를 꾀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지만, 현재 보듯이 그 일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또 당연하기도 하다. 수십 년간 기대온 반공주의도 버리고 재벌 대기업 중심 성장주의도 버려야 하는데, 그것 없이는 생존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의 자기 변화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생존 모색의 시간을 거쳐 2020년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앞으로의 2년은 지나온 시간 동안 그 당을 원내 제1당, 집권당으로 만들어온 유권자들이 치러야 하는 정치비용인 셈이다. 그 당의 성장과 집권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는 젊은 세대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국회가 답답해 보이는 세 번째 이유는, 사실 국회 자체의 속성과 관련이 깊다. 현재의 국회는 시민들의 높아진 기대 때문에 더 갑갑해 보이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전에도 국회의 행보는 늘 대통령에 비해 뒤처졌던 게 사실이다. 왜 그럴까? 헌법이 부여한 두 기관의 속성 자체가 근본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국회 모두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긴 하지만, 국회는 서로 다른 이익과 의견을 대표하는 300명이 모여 심의하고 협의해서 규범과 제도를 바꾸는 게 임무이고, 대통령은 이미 정해진 법률에 따라 관료조직을 통솔해 집행하는 게 임무다. 국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가 대표되어 지속 가능한 입법을 하는 게 직업윤리이므로 효율성이 우선할 수 없는 반면, 집행기관인 행정부는 관료조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당장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 대통령은 1인 기관이기 때문에 빨리 결정할 수 있지만 국회는 300명의 결정이니만큼 속도가 느리다. 

 

앞으로 남은 2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물론 이런 일반론을 다 감안하더라도 지금 국회의 모습은 여전히 갑갑하다. 다수와 소수의 여론이 분명한 많은 의제에 대해서조차도 진전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 그 당을 지지하는 20% 내외의 유권자들 역시 국회에서 대표될 권한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결정으로 움직이지만, 결정에 이르기까지는 단 1%의 소수도 존중을 받아야 하는 체제이기도 하니까. 20% 내외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국회 전체의 운영을 좌우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다음 대표를 뽑기까지 나타나는 시간 지체조차도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속성이니 어쩌겠는가. 

 

어차피 ‘국회 패싱’이 불가능하다면,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앞으로 2년 동안 부단히 우리 사회의 중심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당과 정치인에게 말하고 압박하는 노력을 해보자. 이런 노력 자체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민의 힘을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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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게 국회냐! 2018년 7-8월호 월간참여사회 

1. ‘국회 패싱’ 현상을 말하다   

2. 이중적 국회의원의 역할, 이제는 균형이 필요하다   

3. 바람직한 의회정치를 위하여  

4. 우리동네 국회의원 감시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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