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1-02월 2019-01-03   1987

[통인] 그래도 뉴스는 희망이다 – 김현정 CBS 앵커

그래도 뉴스는 희망이다 

김현정 CBS 앵커

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합본호(통권 262호)

©김현정 

 

세계 각국의 디지털 뉴스 생태계를 분석하는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지난 6월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한국은 조사대상 37개국 중 뉴스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반면 포털사이트 뉴스검색 비율과 팟캐스트 이용률은 가장 높았다. 가짜뉴스를 우려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61%나 됐다. 언론을 믿지 못하기에 스스로 믿을만한 정보를 찾는 한국 시민들의 미디어 이용 방식이 통계로 드러난 셈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저널리즘을 중심 삼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언론인들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10년째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이하 ‘뉴스쇼’) 제작과 진행을 맡고 있는 CBS 김현정 앵커도 그런 경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압력으로 <PD수첩>이 망가지고 <시사기획 창>이 무디어질 때, 뉴스쇼는 그 자리를 지켰다.  

 

뉴스가 요리라면 김현정식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재료다. 특정 사안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불러 이야기를 듣는다. 매일 아침 일터로 나가는 수만 명의 청취자가 그의 요리를 믿고 맛본다. 김 앵커는 최근 <시사저널>이 발표한 ‘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5위로 꼽히기도 했다. 10위권 내에 오른 이들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하면 이런 언론인을 더 가질 수 있을까. 지난 12월, 목동 CBS 본사 한 회의실에서 김 앵커와 마주했다. 그는 최근 뉴스쇼를 넘어 ‘댓꿀쇼’라는 유튜브 방송에 도전하고 있다. 좀 더 많은 청취자들과 친밀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그 소통의 끝에는 또다시 뉴스가 있다. 그는 “뉴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뉴스쇼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2018년을 짧게 정리해본다면. 

항상 그렇듯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데일리 뉴스 프로그램 하는 사람은 일주일이 한 덩어리로 붙어있다. 다른 것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태에서 올해는 800명 규모로 10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를 했다. 너무 좋았다. 

 

유명 MC도 아닌데 토크 콘서트 흥행이 됐나. 

사실 내부에서도 너무 큰 데 잡은 것 같다고 걱정이 많았다.(웃음) 무료니까 온다고 하고 안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A4 용지 가득 뭔가 쓰도록 신청을 받았는데 첫날 전석이 마감됐다.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누가 신청했나. 

10년 동안 우리 프로그램 들어준 열성 청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일 현장에서는 하나도 안 웃긴 얘긴데 열심히 웃어주시고.(웃음) 라디오 진행을 오래 했지만, 항상 누가 듣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얘기했었는데 그날은 좀 특별한 기분이었다.

 

한 달 뒤면 용산 참사 10주기다. 2009년 당시 뉴스쇼에서 관련 보도를 최초로 했다. 기억나나. 

그동안 1만 건 넘게 인터뷰를 했는데 모두 기억 못하지만 용산참사 때 인터뷰는 인상 깊었던 걸로 치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라디오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순발력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용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대략 알고 있었다. ‘용산에서 지금 무슨 일이 난 것 같다’는 전화 제보가 와서 스튜디오 밖에 있던 PD가 그 며칠 전에 인터뷰했던 철거연대 분에게 연락을 했는데 마침 그 분이 현장에 있었다. 통신사보다 우리 인터뷰가 더 빨리 나왔다. 

 

지난 10년간 1만 3천여 명 인터뷰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누구인가.  

노우빈 훈련병이라고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다가 죽은 병사가 있었다. 열이 나서 머리 아프다고 갔는데 군의관은 없고 의무병만 있었다. 의무병이 타이레놀 두 알 주고 돌려보냈는데 알고 보니 뇌수막염이었다.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을 접하고 ‘군 의료체계 문제는 왜 항상 문제점을 보도해도 변하지 않을까’, ‘우리가 좀 어렵더라도 감성 인터뷰를 해보자’고 결심 했다. 그래서 노우빈 훈련병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합본호(통권 262호)

최근 뉴스쇼가 새롭게 선보인 유튜브 방송 <댓꿀쇼>의 12월 19일자 방송 화면. 이날 이준석 바른미래당 서울특별시당 노원병 당협위원장과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출연해 ‘홍카콜라와 가짜뉴스’를 주제로 이야기 나눴다. ©CBS 

 

인터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단 욕부터 쏟아졌다. 그래서 “아버님 하실 말씀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뒤로 매일 안부전화도 드렸다. 2주 정도 지나니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인터뷰를 했는데 아버님 말씀이 너무 절절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애는 쓰러져있고. 우빈아, 엄마야 하니까. 의식을 잃은 애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뇌수막염은 의식을 잃기 전에 그렇게 고통스럽다던데 혼자 뒀구나.” 슬픈 인터뷰를 할 때는 팔뚝을 꼬집으면서 방송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은 정말 많이 꼬집었다.

 

그 인터뷰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저도 울고 다 울었다. 문자가 천여 개 쏟아지는데. 인터뷰 끝나고 포털에 실리고 반향이 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군에서 군 의료체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아버님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뉴스쇼의 매력이자 특징은 ‘당사사주의’다. 사안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당사자를 불러 이야기를 듣는다. 이게 다른 뉴스들과 차별점이 되리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뉴스쇼의 원칙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가장 쉽게. 날것 그대로 신선한 재료를 드리고 판단하게 하자는 거다. 정보의 홍수 시대라는데 사람들이 정보가 부족해서 판단을 못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재료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장 잘 아는 당사자를 통해서 들려주자. 거기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전문가가 뒤에 붙어서 설명을 해주자는 거였다. 

 

설명을 들으니 합리적인데, 당시 주류 언론에서는 아무도 안 하던 시도였다. 

제가 그때까지 들었던 시사 프로그램들은 많이 배운 중년의 남성 교수나 정치인들이 나와서 어려운 언어로 그들만의 얘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평범한 일반인 입장에서 궁금한 건 저런 게 아닌데. 그래서 청취자 눈높이에서 코가 간지러우면 볼이 아니라 코를 긁어주는 식으로 하자고 결론을 냈다. 어떤 분들은 질문을 옆집 아줌마처럼 하느냐고 하시는데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당사자 인터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사전에 대략적인 인터뷰 내용을 논의하기도 하나.  

그분들에게 질문지가 가긴 하지만 인터뷰가 그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저는 인터뷰를 할 때 맞춤형 인터뷰를 한다. 정치인은 껄끄러운 것은 빠져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날카롭게 질문을 가져가고 일반인들은 최대한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제가 인터뷰에서 하는 역할은 북 치는 고수다. 인터뷰이가 가장 신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떤 진행자는 자기가 자기 의견을 가지고. 재단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뉴스쇼를 들어보면 특정 사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낼 때가 많다. 언론으로서 부담되지 않나. 

훗날 봐도 명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하게 입장을 정해서 간다. 가령 국정농단, 사법농단 같은 문제들은 50년이 지나든 200년이 지나든 옳고 그름이 어느 정도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충분히 낸다. 그러나 10년, 20년 후에도 단언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양쪽을 다 들으려고 한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충분하게 근거를 드리는 게 저희의 일이다. 

 

평소 소외된 약자들에게 마이크를 주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해왔다. 사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런 역할 못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걸 굳이 지켜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대학교 다닐 때 아주 순수했는데(웃음) 그때 세뇌당한 게 ‘방송은 공공재고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냥 놔두면 마이크, 펜, 카메라는 힘 있는 사람들에게 몰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공공재처럼 쓰려면 소외된 약자들에게 의식적으로 가져다 줘야 한다. 

 

정부나 기타 권력자들에게 방송 내용에 대한 압박을 받은 적은 없나. 

뭘 빼라, 넣어라 하는 외압은 없었다. 다만 ‘방통위에서 너희를 집중 모니터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다. 회사 윗선을 통해서도 방송에 방해되는 어떤 요구도 들은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을 비판한 박창신 신부와 인터뷰를 했다고 방심위에서 중징계 결정이 났었다. 중징계라고 해봐야 재허가 받을 때 벌점 1점 정도라 우리는 ‘바쁘니까 그냥 가자’고 했었다. 그런데 위에서 데스크와 임원들이 ‘안 된다. 이건 부당하니 소송 가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다. 결국 대법원에서 부당 징계로 판결 나왔다. 이런 게 CBS 시사의 힘이자 뉴스쇼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장 큰 고민은 새로 시작한 유튜브 방송 ‘댓꿀쇼’다. 뉴스쇼 하면 보통 댓글이 2천 개씩 들어오는데 이걸 매일 버리자니 아까워서 시작했다. 라디오만 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매체를 너무 준비 없이 시작한 측면이 있다.(웃음) 

 

뉴스쇼 팀이 함께 준비하는 게 아닌가.

뉴스쇼 팀에서도 유튜브에 도전 해보고 싶은 사람 한두 명이 함께 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은 간접적으로 지원을 하긴 하되 일단 뉴스쇼 본방송이 흔들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힘을 분산해서 쓰고 있다. 댓꿀쇼는 대본없이 간다. 처음에는 안 되면 바로 접자고 하고 시작했던 것이 이제 한 달 정도 왔다. 주변에서는 왜 그 힘든 걸 자진해서 하느냐고 하는데, 제가 새로운 걸 즐기는 성격이라 역으로 요즘은 댓꿀쇼가 에너지가 되고 있다. 라디오가 진화하는 느낌이랄까.

 

어떤 측면에서의 진화를 말하는 것인가. 

방송은 아무래도 딱딱하기 마련인데 유튜브는 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지 않나. 그로 인해서 독자들과 더 친밀한 소통이 가능하더라. 오늘 아침에는 유튜브 방송 동시 접속자가 4천 5백 명까지 갔었다. 뉴스를 보고 관심 갖는 사람이 많아지면 뉴스가 세상을 바꿀 가능성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합본호(통권 262호)

“뉴스를 보고 관심 갖는 사람이 많아지면 뉴스가 세상을 바꿀 가능성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김현정 

 

2018년 한 해,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김현정의 발자국을 참고하는 후배 여성 언론들이 있을 것 같다. 그들이 꼭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저는 제가 첫 발자국을 찍는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봐, 여자는 안 돼.”라는 소리 듣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한 측면이 있다. 남성이 퇴근시간인 6시까지 일한다면 나는 그 두 배를 일한다는 식으로 했다. 우선 말하고 싶은 건 ‘좌절 금지’다. 나를 부당하게 가로막는 어떤 벽 같은 게 분명 나타날 텐데 좌절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벽은 부숴도 되고 옆으로 피해 가도 된다. 다만 뭘 하든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해야 한다. 

 

실행이 어려운 조언인 것 같다.(웃음)

여성들은 특히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힘든 게 두 배가 된다. 솔직히 아직은 개인기로 헤쳐 나가야 한다. 본인이 주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굽히지 말고 더 악착같이 일하시라. 그게 나중에는 더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잠을 자나. 

4~5시간 정도. 새벽 3시 반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난다. 원래 뉴스를 다 체크하고 잠들었는데 요즘은 엄마로서의 일이 더 많아져서 그걸 먼저 하고 일단 잔 후 새벽에 뉴스를 본다.

 

매일 그런 생활로는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평소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나. 

가장 중요한 게 목인데, 목은 좀 타고났다. 목 관리는 도라지 수세미 액을 시어머니가 보내주신다. 도움이 많이 된다. 정신적으로 방송을 좋아하는 것도 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이를 가졌을 때 중국집 간판만 봐도 토할 정도로 입덧이 심했는데, 막상 온에어 불이 들어오면 메스꺼움이 가시는 체질이다. 요즘은 정말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운동할 시간이 안 나서 고민이다. 

 

방송과 육아가 동시에 가능한가. 

하는 일이 방송하고 집안일 딱 두 개밖에 없다. 하고 싶은 건 많다. 학교도 다니고 싶고 사람들(취재원)도 만나고 싶고. 그런데 지금보다 더 욕심을 내는 순간 다 무너질 것 같아서 그렇게 못하고 있다. 여성 후배들에게도 그 밸런스를 잘 맞추라는 얘기를 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나 ‘멘붕’이 올 때 자신을 가다듬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10년 되니까 그런 건 없다. 초창기에는 악플 같은 걸 보면 상처받아서 끙끙 앓기도 하고, 인터뷰 하다가 정치인이 전화를 끊거나 욕을 하면 샤워하면서 그 생각에 넋을 놓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긴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청취자들이 저와 뉴스쇼를 믿어주시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9년 새해,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유튜브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구독자도 늘고. CBS 전체에서 이런 매체에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정받을 수 있는. 라디오 업계에서도. 주목할 수 있는 모델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여력이 된다면 대학원에 가서 미디어 저널리즘 공부를 해보고 싶다. 실전에서 10년 구르다보니 이론적인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다. CBS에 골든마우스는 없지만, 앞으로 20년 채울 생각이 있나. 

원래 말에 안대 채워놓은 것처럼 달렸었는데 중간에 1년 쉬면서 자세가 좀 바뀌었다. 지금은 좀 더 여유로워졌고, 장거리 마라톤 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백발이 성성한 여성 앵커가 되는 게 목표다. 내려와라 할 때까지 할 거다.(웃음)  

 


글. 김동환 참여사회 편집위원 

사진제공.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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