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3월 2019-03-01   1204

[통인뉴스] 28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끝이 아닌 시작

28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끝이 아닌 시작 

개정된 법만으로는 또 다른 산재사망 발생 막기 어려워

 

글. 송은희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소위원장 임이자(이하 ‘임’) : 그러면 지금 현행법 가지고 도급인인 태안 화력발전소를 처벌할 수 있나요, 없나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박영만(이하 ‘박’) : 지금 현재의 법만 가지고는 컨베이어 벨트가 22개 위험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 처벌하기는 힘듭니다. 저희들이 여러 가지 조항을 찾아서 안전조치 위반이라든가 교육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찾고는 있습니다마는 22개 위험장소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지금 법으로서는 저희들이 확실하게 처벌이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임 : 22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다 빠져 나간다 이거지요?

박 : 예. 

임 : 그러면 법이 개정되면 어떻게 처벌됩니까? 

박 : 도급인의 사업장 내에서 수급인 근로자의 안전조치, 안전교육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출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2018.12.26.) 회의록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내용

2018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하 ‘개정 산안법’)이 통과되었다. 28년 만의 전부개정이었다. 위 대화에서 고용노동부가 말한 바와 같이 개정 산안법2020.01.16. 시행에 따라 도급인, 즉 원청의 산업재해 예방책임이 현행법보다 강화되었다. 개정 산안법 제63조에 따르면 ‘도급인’은 ‘관계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개정 산안법이 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책임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도급의 범위가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으로 넓어졌다는 점  ▲관계수급인(도급이 여러 단계에 걸쳐 체결된 경우에 단계별로 도급받은 사업주 전부) 개념을 도입하여 다단계 하청까지 원청의 책임이 강화되었다는 점 ▲현행법이 임이자 의원과 고용노동부 국장의 대화에서처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한정된 장소에 대해서 도급인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면, 개정 산안법은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경우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로 넓혔다는 점 ▲원청의 의무 위반으로 하청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원청에 대해 사망책임을 묻도록 하는 규정 등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위와 같은 원청의 책임 강화에 더해 개정 산안법은 ▲유해·위험한 작업의 도급 금지 ▲노동자의 건강장해(健康障害)를 유발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국가의 관리 강화 ▲특수고용노동자와 배달종사자 등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명확화 등을 규정하였다. 

 

개정 산안법은 2018년 12월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던 고 김용균 님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지 16일 만에 통과되었다. 과연 국회가 발 빠른 대응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16년 5월 구의역 정비노동자가 사망한 후 이미 수차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2년이 지난 후였으며, 더 나아가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지난 17년간 연평균 2,15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뒤에야 국회가 움직인 것이다. 

 

개정 산안법만으로 제2의 김용균 발생을 막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다 두텁게 보호할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법 개정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매년 2천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미흡하다. 특히 도급금지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노동시민사회계의 주장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였다. 

 

개정 산안법은 ▲도금작업 ▲수은, 납 또는 카드뮴을 제련, 주입, 가공 및 가열하는 작업 ▲유해·위험물질로서 정부가 정한 허가대상물질을 제조하거나 사용하는 작업 등에만 도급을 금지하였다. 이러한 개정 산안법에 따른다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님의 업무는 도급금지 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번 개정 산안법에서 원청의 책임을 현행법보다 강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 처벌하는 규정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해 법원이 주로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를 내리는 상황에서 처벌규정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개정 산안법이 통과되던 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한정애 의원은 현행법에 따라서도 노동자 사망시 처벌기준이 7년 이하 징역, 1억 원 이하의 벌금, 법인에 대한 1억 원의 벌금이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 법인이 받는 벌금은 200~500만 원 정도이며 대법원은 1년 정도를 양형기준으로 하고 있다며 양형기준 현실화에 대해 정부가 대법원과 논의할 것을 요청하였다. 

 

노동시민사회계는 이러한 법원의 낮은 형량 선고의 문제, 원청의 경영자 처벌 등의 한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영자 처벌, 법인에 대한 실효적 처벌 가능성을 높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안한 바 있다.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이 법안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청의 사업에 필수적인 업무라도 하청을 주면 그만인 상황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2017년 국정과제로 “비정규직 감축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 종합적 해소 추진”을 제시했고 여기에 ▲사용사유제한 제도 도입 추진 ▲비정규직 사용부담 강화 방안 마련 ▲파견·도급 구별기준 재정립 등을 세부 과제로 제시하였다.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정부의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고 김용균 부모님의 헌신과 노력, 산업재해 사망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번 법 개정은 산업재해 사망 감소를 위한 논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국 중 압도적인 산업재해 사망율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국회, 정부, 법원의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